아주경제 채명석ㆍ이혜림 기자 =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이미지는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정적이고,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그런 구 회장이 올해부터 달라졌다. 언론을 통해 그의 말이 자주 보도되고 있다.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믿고 일을 맡기던 그가 직접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구 회장 스스로 2014년에는 목표를 이뤄야 한다는 다급함이 배어있다.
그렇다면 20년이 지난 구 회장의 LG는 어떤 모습일까? LG는 강한 회사로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일등 기업이라는 목표에는 완벽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긴장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구 회장은 2014년 신년사에서 ‘위기’를 화두로 꺼냈다. 그가 신년사에서 ‘위기’라는 부정적 키워드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 많은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도 구 회장이 지난 기간 신년사에 단골로 등장했던 키워드는 ‘변화’, ‘일등 LG’였다. 더불어 ‘차별화’, ‘내실’, ‘발상의 전환’, ‘강한 기업체질’, ‘비상경영체재’, ‘수익창출’, ‘제2의 혁신’ 등을 사용했다.
지난해 양호한 경영실적을 거둬들였고, 올해도 순항이 예고되는 시점에 ‘위기’를 이야기 한 것은 어떤 주문을 해도 뭔가 변하지 않는 LG그룹의 문화를 확 바꿔버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구 회장 스스로 직접 행동에 나서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지난 12일 대전 LG화학 기술연구원에서 열린 연구개발성과 보고회에 참석한 구 회장은 'LG연구개발상' 수상자 8명을 포함해 46명을 임원급 연구위원 및 전문위원으로 승진 발령했다.
이날 구 회장은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 내려면 독창적인 핵심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연구원들이 시장 선도의 출발점이라는 자부심으로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또 “기술·산업 간 융복합으로 계열사는 물론 외부와 함께 기술을 개발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중요해질 것”이라며 “보다 넓은 시야로 열린 사고를 해달라”고 말했다.
이 말은 구 회장이 각종 연설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했던 내용의 연장선상이다. 지난 2012년 고객가치를 충족시키는 ‘시장선도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2013년에는 이 단어 옆에 ‘반드시’라는 수식어를 달았고, 올해는 ‘고객이 선택하고 시장에서 인정받는’이라는 말로 시장선도상품의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일등 LG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시장을 선도하는 ‘일등 상품’이어야 하며, 일등 상품이라는 단어에는 연구개발, 투자는 물론, 마케팅, 인재, 발상의 전환 등 모든 것이 일등이 돼야 한다는 구 회장의 뜻이 담겨있다.
지난 기간을 되돌아 보면 ‘구 회장의 LG’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LG그룹 창업의 뼈대를 이뤘던 허씨 가문(GS그룹)을 비롯해, 범 구씨 일가인 LS그룹, LIG 그룹 등 친인척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실현해 재계에 모범 사례를 남겼다. 지주회사 체제 도입 등 경영혁신은 구 회장의 추진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좋은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회장 취임 직후 터진 ‘LG카드 사태’, IMF 외환위기이후 정부가 추진한 산업 구조조정, 이른바 ‘빅딜’ 과정에서 LG반도체를 현대반도체(현 하이닉스 반도체)에 빼앗겼다. LG반도체 매각으로 구 회장은 전자 부문에 있어 규모의 사업 확장을 포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삼성전자와 치열하게 경쟁했던 양강 구도도 이를 계기로 급속히 삼성쪽으로 기울어지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이후 구 회장은 고객가치 제고를 추구하는 '질(質) 경영'에 많은 역량을 쏟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모든 역경을 딛고 LG그룹은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구 회장 자신이 정한 ‘일등 LG’ 목표에 아직은 미흡하다고 여긴 까닭에 올해 안으로 어느 정도 수준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행동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올해 LG그룹이 역동적인 변화를 추구할 것임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