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기업에 있어 노사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함께 나아가야 할 동반자다.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노사 관계가 원만한 기업은 반드시 회생의 기회를 엿볼 수 있다.
조선업과 철강업은 대규모 장치산업이자 인력비가 높은 산업이라 1980~1990년대 한국에서 대대적으로 불어닥친 노사분규의 핵심 사업장이었다. 현대중공업과 동국제강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서로가 큰 상처를 입었으나, 당시가 전화위복이 돼 지금은 노사가 힘을 합쳐 키워낸 최고의 기업이 됐다.
적대적 관계가 지속되던 현대중공업 노사 관계에 전환점이 된 것은 1994년 63일간의 총파업이었다. 이 노사분규로 인해 회사는 처음으로 매출 손실이 발생했으며, 노동자들도 ‘회사가 정말 망할 수 있겠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강성노조에 대한 지지도가 낮아졌고, 실제 노조를 탈퇴하는 조합원들도 생겨났다.
1995년 첫 무분규 타협에 성공한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해까지 19년 연속 임단협 무분규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강성 성향의 조합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음에도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은 1994년 이후 계속된 회사의 성장과 사측이 고용안정과 양호한 근로조건을 보장해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최고 경영자부터 ‘노사관계는 기업경영의 모든 것’이라는 뚜렷한 인식을 갖고 적정수준의 노조활동을 보장하고, 노조의 합리적인 요구를 적극 수용하면서도 노조의 경영권 침해와 불법행동에 대해서는 원칙을 갖고 대응했다.
노조도 수 차례 바뀌었지만 파업은 자제하되 고용안정과 근로복지에서는 양보하지 않았고, 사측이 고용안정에 대해 협력하면 생산성과 경영혁신에 대해 노조가 100% 협력을 보장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노사 협력은 1983년 세계 1위에 오른 현대중공업이 30년 넘게 최고 조선업체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원동력이 됐다.
동국제강도 노사 공동 무분규 선언 20주년이라는 금자탑을 쌓아올리기 위한 커다란 아픔이 있었다. 1980년 동국제강의 주력 공장인 부산 공장에서 노조가 전면 파업을 벌여 가동 중단은 물론 설비 손실까지도 발생했다. 당시 현장을 지켜보던 장상태 동국제강 회장이 눈물을 흘리며 피땀으로 일군 공장의 파업 현장을 바라보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1987년 9월 노조 설립 이후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던 동국제강 노사는 1991년 7월, 10일간의 준법 파업이 벌어지며 또 한 번의 고비를 맞았다. 이는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는 동국제강 역사에 있어 두 번째이자 마지막 파업이었다.
당시 파업이 강성 노조의 투쟁 노선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을 알고 있었던 회사는 이에 맞선 대립보다는 어떻게 하면 조합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느냐에 주력했다. 10일간 이어졌던 파업으로 생산 차질을 남겼지만, 동국제강의 노사관계는 오히려 더욱 돈독해지는 계기가 됐다. 파업이 끝나고 노사는 공동 선언문을 채택했으며, 3년여의 준비와 신뢰쌓기 기간을 거쳐 1994년 동국제강 노조는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항구적 무파업 선언으로 힘을 보태준 구성원에게 회사에서는 사원아파트를 건립해 입주시키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원 복지 향상 및 지원으로 화답했다.
이후 동국제강은 매월 임원단 회의인 ‘책임경영회의’에 노조위원장을 참여시키고 회사의 주요 경영 안건에 노조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매월 각 사업장의 부서장급 회의에도 노조가 적극 참여하면서 각종 경영 현안을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는 전통을 세웠다.
더불어 성과에 대한 배분을 투명하고 철저히 하면서 신뢰를 돈독히 하고 있다. CEO가 포항, 인천, 당진, 부산의 지역 사업장을 방문할 때는 맨 먼저 노조사무실을 들리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동국제강은 1990년대 중후반 부산공장을 폐쇄하고 포항제강소로 주력공장을 옮기는 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로 했는데, 이 때 찾아온 것이 IMF 국제금융위기였다.
부산공장을 폐쇄는 인적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야기했다. 하지만 장상태 회장은 인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노사 합의를 지키기 위해 부산에 별도 사업장을 운영하기로 했다. 창립 이래 최대 규모의 사업 구조조정이었음에도 정리해고 등과 같은 인적 구조조정을 피하고 고용 안정을 이뤄냈고, 노조는 자발적인 임금 동결, 증산 운동 등으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실어줬다.
이러한 노사 신뢰는 지금도 이어져 당진 신후판 공장의 성공적인 완공과 브라질 고로 건설이라는 결실을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