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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지역 경제 중심지인 다롄시 전경. 최근 STX다롄 사태로 실직자가 속출하는 등 악화된 경제상황을 반영하듯 시내 전체에 안개가 짙게 껴 있다. |
아주경제(다롄) 이재호 기자= 중국 동북지역의 '홍콩'이라 불리는 경제 중심지 다롄. 지난해 총생산(GDP)은 7000억 위안(128조원)으로 랴오닝성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1인당 소득은 7만3000위안(1330만원)으로 베이징을 앞질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지역 내 최대 기업 중 한 곳인 STX다롄이 극심한 경영난을 겪으면서 지역경제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STX다롄과의 거래에 매출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한국 협력업체들도 수익성 악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STX 때문에 못살겠다'…한국 기업·교민 '아우성'
지난 15일 저우수이즈 국제공항을 빠져나와 처음 접한 다롄의 하늘은 청명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해풍은 다롄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도시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줬다.
그러나 산뜻한 기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탄 후 행선지를 말하자 서툰 중국어 때문인지 기사는 외국인이냐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금세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최근 STX다롄 때문에 졸지에 실업자가 된 사람들이 많아서 한국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다롄에서 머무는 동안 만난 한국 기업인들은 STX에 관한 얘기를 꺼낼 때마다 손사레를 쳤다.
STX다롄에 부품을 제공하는 A업체 대표는 "조선소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접어들면서 신규 거래는 물론 기존 매출채권 대금을 회수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며 "일부 업체는 100억원 이상의 거금을 받지 못한 채 도산 위기에 몰려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자기판을 제조하는 B업체 대표는 "우리는 STX다롄과 거래 관계가 없는데도 한국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바이어들과 만날 때마다 경영에 문제가 없느냐는 지적을 받는다"며 "기업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짜증스러운 상황"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STX다롄 사태는 현지 교민 사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STX다롄이 중국 직원들에게 두 달째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으며 조만간 무더기 해고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등 각종 루머가 횡행하면서 한국 교민들에 대한 현지인들의 인식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출장 기간 중 가이드를 자처한 한 교민은 "다롄은 일본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해 한국인보다 일본인에게 더 우호적인 편이었는데 최근 STX다롄 사태로 실직자가 속출하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며 "일부 실직자들은 노골적으로 한국인들을 위협하는 상황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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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다롄에 부품을 납품하는 한 협력업체 공장 내부. 최근 STX다롄의 경영난으로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공장이 활기를 잃었다. |
◆STX다롄 조선소는 무법천지
STX다롄의 중국인 직원 수는 2만5000명 수준으로 정규직이 1만명, 계약직이 1만5000명이다. 이 가운데 계약직은 대부분 해고를 당했으며 정규직도 임금 지급이 원활치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200여개 협력업체 직원들까지 합치면 STX다롄 사태로 실직 위기에 처한 사람들만 10만명, 그들의 가족까지 더하면 수십만명이 직·간접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STX다롄 사업장은 시위하는 사람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미 정상적인 조업이 불가능한 상황. 임원실을 비롯해 사무동 전체가 시위대에 점거당하면서 임원들은 시내 호텔을 전전하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현지 경찰들도 성난 민심에 부담감을 느낀 듯 적극적인 진압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다롄시 정부 관계자는 "수십만명이 고용불안에 떨고 있는 만큼 사태가 쉽사리 해결되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다른 기업이 인수하도록 돕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이번 일이 한국 기업들의 다롄 진출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