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품질 전략’이 자동차에 이어 전동차 시장에서도 빛을 발하며 해외에서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2일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로템이 발표한 인도 델리 지하철공사로부터의 1조원 규모 ‘델리 메트로 3기 전동차 사업’ 수주가 대표적이다.
델리 메트로 3기 전동차 사업은 오는 2017년까지 인도 델리 메트로 신규 7, 8호선에 투입될 전동차 636량을 납품하는 프로젝트다.
인도 단일 전동차 발주건 중 공급량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현대로템을 비롯해 캐나다 봄바르디에, 프랑스 알스톰, 독일 지멘스 등 세계 전동차 ‘빅3’와 스페인 카프, 일본 가와사키중공업 등 글로벌 주요 업체들이 모두 참여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업계에서는 현지 생산시설을 갖추고 인도 전동차 시장을 주도해 온 봄바르디에와 알스톰 등의 수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전동차 기술력을 평가하는 핵심 잣대 중 하나인 전력소비효율 등에서 참가업체 중 최고점을 받은 현대로템이 경쟁업체를 따돌리고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현대로템의 품질 및 기술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했다는 점이 확인된 것.
이번 수주 성공으로 지난 2001년 델리 메트로 전동차 280량을 수주하며 인도 시장에 첫 발을 내디딘 현대로템은 10여 년 만에 전체 수주량을 1283량으로 늘렸다. 또 발주량 기준 점유율 60%를 달성하면서 봄바르디에를 제치고 인도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이에 고무된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로템의 철도차량 세계시장 점유율을 오는 2017년까지 ‘글로벌 빅5’ 진입이 가능한 5%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세계 시장 규모가 70조원에 달하는 철도차량 시장에서 현대로템의 철도사업을 현대·기아차처럼 글로벌 규모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세계 전동차 시장에서 현대로템은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에 속한다. 하지만 작년 12월 홍콩과 이집트에서도 모두 92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수주 실적을 올리는 등 글로벌 시장 내 위상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처럼 현대로템이 글로벌 업체들을 제치고 대형 해외 전동차 프로젝트를 잇달아 수주할 수 있었던 데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품질혁신 주문 이후 이뤄진 체계적인 품질 및 기술력 향상 노력이 배경이 됐다.
지난 2011년 말 정 회장이 “제품 품질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이라”고 지시한 이후 현대로템은 품질담당 인력을 대폭 늘렸고 현대차그룹의 연구개발 및 품질관리 인재풀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해외에서도 현대로템의 철도차량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근 현대로템 미국 필라델피아 공장에서 열린 미국 남동교통국(SEPTA) 전동차 출고식 행사에서 ABC뉴스 등 현지언론은 “현대로템이 품질이 우수한 전동차를 생산해 납품함으로써 현대로템과 필라델피아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대로템은 미국 필라델피아, 덴버, LA, 보스톤 등 4개 지역에 전동차와 객차 등 1조원 규모 철도차량을 생산, 납품중이다.
현대로템의 기술력 및 품질에 대한 우호적 평가는 전동차를 중심으로 한 전체 철도사업 수주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홍콩, 인도, 튀니지, 이집트 등 해외 전동차 수주를 포함해 철도사업에서만 국내외에서 2조5000억원을 웃도는 수주 실적을 올렸다. 이는 지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동안 현대로템이 기록한 1조원 안팎의 연평균 수주액의 2배를 넘는 수준이다.
현대로템은 또 철도차량, 플랜트, 중기 등 3개 사업군에서 지난해 달성한 전체 수주액 3조여원 중 3분의 2 가량인 2조원 이상을 해외에서 올렸다.
특히 작년 해외 수주 규모는 직전연도에 비해 6배 이상 늘어난 것이어서 2011년 이후 진행돼 온 전 부문에 걸친 품질혁신 노력이 본궤도에 올라섰음을 보여줬다.
현대로템은 최근 시속 400㎞급 차세대 고속철 ‘해무’ 개발에 참여해 성공적으로 시운전까지 마무리함에 따라 다양한 차종의 고속철 수출준비도 갖춰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로템은 중남미, 유럽 등 신시장을 적극 개척함으로써 새로운 전동차 수요를 창출할 계획이다. 또 대규모 해외 고속철 사업 수주에 나서는 동시에 현재 시험운행중인 트램, 자기부상열차 등의 수출에도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철도 시스템 사업경험을 토대로 그룹사인 현대건설과 철도 토목건설 분야를 결합해 해외철도 턴키 사업 발굴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품질 및 기술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현대·기아차의 인지도를 활용해 시너지를 창출한다면 해외 신규 시장 개척 가능성은 충분하다”면서 “성장성이 뛰어난 신흥시장은 물론 진입장벽이 높은 선진시장까지 진출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철도차량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