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이 평소 "그의 말은 한 번도 제 생각과 다른 적이 없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박심(朴心)은 이정현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여전히 청와대에서도 통하고 있다.
청와대 기자들은 가장 소통이 잘되는 인사로 이 수석을 첫손에 꼽는다.
청와대의 대언론 소통이 홍보라인이 아닌 정무라인에서 더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기자들은 이 수석의 거침없는 언변과 친화력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 '의리와 뚝심의 사나이'라는 별칭도 붙여줬다.
이 수석은 '호남의 노무현'으로 빗대어진다. 새누리당 불모지 광주에서만 1995년 시의원, 17·19대 총선에 출마해 세 번 모두 고배를 마셨다.
2004년 17대 총선 때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어려운 곳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며 전화로 격려했다. 총선 직후 오찬 자리에서 "한나라당의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해 달라"며 열변을 토하는 이 수석에게 박 대통령은 "어쩌면 그렇게 말씀을 잘하느냐"며 며칠 뒤 당 수석부대변인에 앉혔다. 그때부터 이 수석은 박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 됐다.
박 대통령이 대선 경선 패배 후 비주류로 있던 2008~2010년 이 수석은 박 대통령의 비공식 대변인 역할을 했다. 박 대통령의 의중과 행보는 대부분 그를 통해 외부에 전달됐다.
전 언론을 홀로 상대했던 이 수석은 하루에 200여통의 전화를 받기 위해 휴대전화 배터리를 12개씩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대선캠프 공보단장으로 대야공세의 선두에 나서면서 대선을 승리로 이끈 공신이 됐다. 그리고 예정된 수순대로 당선인 정무팀장을 거쳐 청와대 정무수석에 기용됐다.
그는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정치권과의 소통과 국회 협력을 이끌어내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이 수석은 "정무수석은 소통수석이 되어야 한다"며 "'집사광익'이라는 단어가 있다, 많은 지혜와 의견을 모으고, 겸손하게 의견을 듣고 도움을 요청하게 되면 더 큰 이익을 얻는다는 말"이라며 자신의 역할을 규정했다.
전남 곡성 출신인 이 수석이 박근혜 정부와 호남을 잇는 창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수석이 청와대와 정부 내 소수인 호남 인맥을 심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 광주살레시오고 9년 선후배 사이인 이남기 홍보수석이 깜짝 발탁된 데는 이 수석의 힘이 컸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수석은 또 김종효 광주시 창조기획관(49)을 정무수석실 행정관으로 기용했다. 지자체 공무원이 청와대로 입성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약속한 국민통합과 대탕평, 그리고 소통을 위해 이 수석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