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갤러리에서 17일부터 '서울연가'전을 여는 화가 사석원./사진=박현주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기자= "700여년전 고려말에 중국에서 들어온 사씨는 오로지 서울에서만 살고 있는 서울사람들입니다."
53년간 서울 토박이로 살아온 그는 "뼛속까지 서울 남자"임을 자랑했다.
"서울을 생각하면 황홀하다"는 그가 대놓고 '서울 연가(戀歌)'를 펼쳐 주목받고있다.
17일부터 서울 곳곳의 풍경과 추억의 장소를 기록한 글과 그림을 모은 '사석원의 서울연가’ 를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12층 롯데갤러리 본점에서 연다.
이번 전시는 지난 1년간 18회에 걸쳐 일간지에 연재한 ‘서울 연가’를 풍속화로 그려낸 그림 40여점을 선보인다.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는 서울거리는 왁자하고 신명이 넘친다. 유일하게 뽀뽀가 허락됐던 남산벤치,생선이 펄떡이는 노량진시장, 술집에서 불콰해진 사람들이 왕년의 한가락했던 시절로 떠들썩하다.
추억은 늙지를 않는다. 70년대와 8년대의 서울풍경을 자세하게 담아낸 기억력 대단하다고 하자 그는 "일기를 써본적도 없는데 이상하게 옛날일은 각인된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며 "눈앞의 풍경을 그림으로 옮기듯 종이에 먹과 붓으로 술술 담아냈다"고 했다.
전시에 맞춰 그림과 글을 모은 에세이집‘사석원의 서울 연가’(샘터)도 펴냈다. '서울의 맛’, ‘서울의 멋’, ‘서울의 색’으로 나눠 쓴 각 6편의 '서울 연가'는 '흘러간 가요'처럼 진한 추억을 재생한다.
유년기를 보낸 홍제동, 성장소설을 연상시키는 청량리와 명동의 유흥가, 푸짐했던 광장시장과 을지로 맛집등의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맞아, 그땐 그랬지"라고 반길만큼 생생한 필력이 돋보인다.서울시의 모든 것을 담은 '타임캡술'같다.
서울 곳곳은 사람에 대한 추억과 그리운 청춘이 묻혀있다. 하루라도 술을 먹지 않는 날이 없는 '술꾼'이 된 그는 국보급 식당들이 즐비한 을지로에서 풍류와 인생을 배웠다. 낭만과 절망사이에서 방황했던 장충동과 아현동은 그의 '검디검은 시절의 청춘'이 새겨져있다.
청량리 588.한지에 수묵. |
일곱살이 되서야 말문이 텄던 그는 애당초 공부엔 관심이 없어 초등학교 내내 숙제를 해간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저 고흐의 풍경화를 따라 그리는 것을 일상의 낙으로 여기고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며 다니기를 좋아했다. 가문에 없는 화가가 된 이유기도 하다. 본 것을 그대로 그리고 표현하는 관찰력은 탁월했다.
먹고 놀고 마시고 취했던 그에게 서울은 '희로애락의 칵테일'이다. 짧은 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모범생같은 지금의 모습과 달리 청춘때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온 장발에 하루에 세갑씩 담배를 피우며 술을 좋아한 염세적인 청년이었다. 또 까까머리 철없던 시절부터 '어울리지않는 곳에 출입'하며 봐온 후미진 풍경은 그림을 그리는 밑천이 됐다.
에세이집 표지로 쓴 그림 '누드 여인'은 '청량리 588'에서 본 여자다. 중학생때 친구들과 함께 '청량리 588' 좁은 골목길로 불쑥 들어선 이후 '유곽 기행'이 시작됐다. 그림을 배우러 화실을 다니던 고교시절엔 광화문 일대 술집을 섭렵했고, 대학시절 화실이 있던 아현동에선 '싸구려 싸롱' 아가씨들의 형부이기도 했다.
"지금은 아현동 고개에 웨딩업체들이 빼곡히 들어서있지만 그땐 맥주를 팔며 아가씨가 접대하는 싸롱들이 쾌 큰 규모로 군락을 형성하고 있었죠. 나이와 상관없이 거의 유일한 일반인이었기 때문에, 또 미술학도란 내 직함이 그녀들의 낭만적 호기심을 자극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에서 난 형부로 불렸어요."
집세가 싸서 얻었던 아현동 화실의 밤은 선과 악, 천국과 지옥이 교차하는 기묘한 동네였다. 하지만 아가씨들은 그에게 '순정소녀'로 보이기만 했다. 끼니를 거르는 아가씨들에게 잡채며 빈대떡을 사줬다. 누구는 과실주를 담가주고 누군가는 털실로 조끼를 떠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화실에 불이났고 겁에 질려 어쩔줄 몰라했을때 그를 도운건 아가씨들이었다.
"아현동 고개의 수많은 처제들이 형부 화실에 불났다며 속옷 차림으로 저마다 양동이며 연탄재를 들고 줄지어 불속에 뛰어들어 불을 꺼주던 장면을 지금도 잊을수 없어요."
그래서일까. 노란꽃을 단 '아현동 소녀'는 볼이 노을빛으로 물든 새침한 아가씨로 화폭에 남았다.
사석원은 '부엉이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
서울에 깃든 낭만 향수 정감을 글과 그림으로 버무려 '진짜 서울의 속살'을 보여준 그는 "칼바람이 불때는 단골이 있는 종로 5가 광장시장의 좌판주막에 가고싶다"고 했다. 사람냄새 물씬나는 광장시장에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머리고기와 막걸리를 마신적도 있고 왕년의 대배우 '문희'와 오색나물에 빈대떡으로 진하게 한잔하기도 했다.
'서울 연가'에는 그가 온몸으로 체험해 알아낸 '사석원 서울 스타일' 단골 맛집 10곳도 자신있게 써있다.
신당동에서 태어나 홍제동 면목동 휘경동 망우리 자양동 불광동 종암동 장안동 동교동 논현동 지금의 방배동까지 서울 이곳 저곳을 누비며 서울의 눈도장을 찍어온 작가는 "내게 서울은 엄마"라며 "서울서 산 것만으로도 인생의 프리미엄"이라고 했다.
"비록 서울이 잘리고 덧붙여지고 새로 칠해져 자랄적 그 모습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서울은 내게 여전히 따스하고 추억 그득한 보물창고다. 서울을 떠난 내 삶은 상상할수 없다. 서울서 살수 있기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전시는 28일까지.(02)726-4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