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지도자 대해부> 상하이방 핵심 장더장, 권력균형추 역할 전망 (3)

2013-05-01 11:07
  • 글자크기 설정



아주경제 김근정 기자 = 지난해 11월 15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 약 400여명의 내외신 기자가 모인 가운데 새로운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서열대로 천천히 걸어나오자 카메라플래시가 일제히 터져나왔다. 시진핑(習近平), 리커창(李克强)에 이어 걸어나온 인물은 장더장(張德江)이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는 되지 않았지만 이는 장더장이 차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에 내정됐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우리나라의 국회격으로 입법권이 있어서 수많은 경제, 사회 관련 법안을 심사한다. 이 밖에 국가주석 임명권, 국무원 총리 임명권,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부주석 임명권, 법원장 임명권, 검찰장 임명권 등을 지니고 있다. 공산당 서열 3위라는 위상에 더해 전인대의 수장이라는 정치적 중량감은 장더장을 중국의 핵심지도자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에 더해 장더장이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최측근인사라는 점은 그의 무게감을 더해주고 있다.

향후 중국의 5년간은 '태자당 시진핑 - 공청단파 리커창'의 쌍두마차체제로 지휘될 것이라는 평이 많다. 하지만 상하이방 핵심인 장더장의 정치적 영향력이 만만치 않아 삼각체제로 권력의 균형이 맞춰질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시진핑과 리커창이 갈등과 대립구조를 보이는 사안이 발생한다면 장더장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권력의 균형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1946년 랴오닝 (遼寧)성 타이안(臺安)에서 태어난 장더장은 문화대혁명 기간 홍위병으로 활동하다 옌볜(延邊) 조선족 자치주 왕칭(汪淸)현의 농장으로 하방됐다. 당시 왕칭현 상무위원이었던 조선족 출신 이덕수의 신임을 얻어 공직생활에 들어선 장더장은 한국어(북한말)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북한통으로 유명하다. 옌볜대 조선어과에서 공부하다 교환 학생으로 북한에 가 김일성 종합대에서 2년간 경제학을 공부했다. 당시의 인연으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방중을 수행하기도 했다.

특유의 친화력과 유려한 언변, 그리고 테너와 바리톤을 넘나드는 노래실력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북한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을 우려해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지린성 국경지대 시찰에 나서자 장더장은 이내 장쩌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상하이에서 근무한 적이 없는 그였지만 장 전 주석의 신임으로 일거에 상하이방 핵심에 진입했다. 이후 저장(浙江)성과 광둥(廣東)성 서기직을 지내며 정치스타로 떠올랐다. 광둥성 서기시절 싸스(SARS) 등 사건으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정면대응으로 슬기롭게 극복했다.

2007년 광둥성 서기에서 국무원 부총리로 영전했다. 2010년 3월 산시(山西)성 왕자링(王家岭) 탄광 사고 당시에도 장더장이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방안을 모색하고 성공적으로 115명의 근로자를 구출했다. 또한 2011년 7월 23일 39명의 목숨을 앗아간 원저우(溫州) 고속철사고 발생 시에도 가장 먼저 나서 조난자에게 구조의 손길을 내밀었다. 2011년 2월 리비아 사태 당시 중국 인민의 안전을 위해 중국 중앙 정부, 국무원 등 각계 부처의 협력과 재빠른 대화를 유도했던 핵심인물도 바로 장더장이다. 12일 동안 총 3만5860명의 중국 인민을 안전하게 중국으로 대피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보시라이 낙마로 혼란에 빠진 충칭시의 서기를 겸임했다.

장더장은 과거 저장성 당서기 시절 시진핑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勳) 자서전의 서문을 쓰는 등 시진핑 총서기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또한 민간경제 활성화를 주장하고 있어 국유기업 개혁이라는 과제를 짊어진 신 지도부의 정책향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그는 “민간자본은 물이며 실물경제는 밭”이라며 “지하에서 흐르는 물은 의미가 없다, 우물을 파 물이 밭에 공급되도록 하는 것이 낫다” 며 민간자본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장더장의 부인 신수썬(辛樹森)은 고급경제사로 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이며 둘 사이에는 1녀가 있다.

◆주요약력 ▲1946년 11월 랴오닝성 타이안 출생 ▲ 1968~1970년 지리성 왕칭현 하방 ▲ 1972~1975년 옌볜대 조선어과 ▲ 1978~1980년 북한 김일성종합대 경제학부 수료 ▲ 1990~1995년 지린성 부서기 겸 옌볜주 서기 ▲ 1995~1998년 지린성서기 ▲ 1998~2002년 저장성 서기 ▲ 2002 광둥성서기 ▲2008 국무원 부총리 ▲ 2012 충칭시 서기 겸임 ▲2012년 정치국 상무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