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정부소장미술품의 중요성과 재평가 필요성

2011-08-3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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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섭 (미술평론가.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며칠 전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다녀왔다. 새로 마련하는 등기국 신청사에 들어갈 미술품 선정을 위해서였다. 

보통 연면적 1만㎡ 이상의 건축물을 지을 때 건축 비용의 1% 이하를 미술장식에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 도시경관을 개선하고 시민들에게 미술작품 향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등기국 신청사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았다. 온전히 방문객과 직원들의 문화적 감성충족 증대를 위해 예산을 최대한 아껴서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진성 법원장을 비롯해 여러 간부들이 한데 모여, 최근 시대적 트렌드와 청사 분위기를 고려해 더 좋은 작품선정을 위한 진지한 토론장면은 신선한 감동이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처럼 미술품을 통한 대국민 서비스는 시대변화에 부흥하는 모범사례로 꼽힐 만하다. 하지만 모든 정부기관이 미술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정부기관에 소장된 미술작품은 무려 1만7천점이 넘는다고 한다. 

물론 국립미술관처럼 국공립 전문기관의 소장품은 제외한 것이다. 정말 대단한 수량이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수량에 비해 관리 실태는 아주 미흡한 상태이다. 

지난 3월 미래희망연대 김 정 의원은 「국가미술품 관리현황과 개선방안」이란 주제의 세미나를 통해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우리시대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인 정부미술품들이 매입에서 관리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통합관리 시스템조차 구축되지 않았다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그런데 더욱 애석한 일은 최근 미술품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편법적 재산 증여, 비자금 축적 등의 부정적인 사건의 이면에 단골로 미술품이 등장하다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어떤 대상이든 쓰임의 용도에 따라 값어치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같은 칼이 일급 주방장을 길러낼 수도 있고, 폐륜의 범법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죄는 미워하되, 도구로 쓰인 미술품을 욕되게 보지 말아야겠다. 다시 정부소장미술품 얘기를 해보자. 좋은 의미에서 정부의 어마어마한 소장 미술품을 잘만 활용하면 사회적으로 널리 퍼진 미술품에 대한 불신을 걷어내는데 효과적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정부소장미술품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몇 가지 선결과제가 남아 있다. 우선 관리시스템과 관련 법안의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지금은 정부소장미술품 관리는 조달청에서 맡고 있다. 조달청은 군수품을 제외한 정부가 행하는 모든 소모성 물자의 구매·공급·관리업무를 관장하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미술품 역시 일반 소모품 기준으로 분류 관리되는 불합리한 일이 지속되고 있다. 일반물품이 아닌 문화적 자산가치가 있는 ‘특수물품’ 혹은 ‘미술품’으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다음으론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현재 1만7천여 점 중에 제대로 된 미술작품으로 꼽을 만한 경우는 의외로 적다. 정상적인 감정이나 평가절차 없이 무작위로 기증 받은 장식용 상업회화나 인쇄물까지 버젓이 정부미술품 행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소장미술품의 관리주체를 강화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관리를 맡고 있는 조달청이 주도하되, 업무의 특성을 고려해 각계 전문가들을 위촉한 독립된 별도 특별 기관 운영방식은 어떨까.
 
전국의 정부기관 및 부처에 산재된 방대한 수량의 정부소장미술품을 일반 단체나 기관에서 관할하긴 결코 쉽지 않다. 성공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각 부처들과의 긴밀한 협조가 절실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조달청의 현재 조직력을 최대한 활용한 특별기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 산하에 운영위원회와 수집보존위원회, 가격평가위원회, 대외 협력부, 홍보부 등 세분화된 부설기구를 둔다면 업무수행의 효율성을 높여줄 것이다.

물론 별도의 특별기관 설립에 따른 장단점은 미리 살펴야 한다. 먼저 장점은 업무의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 정부미술품의 특수성을 고려한 ‘맞춤형 관리시스템’ 구축, 기존의 조달청의 관리체계의 연장선이므로 최소한의 투자로 최적의 성과 등을 기대할 만하다. 

반대로 단점은 준비기간이 길다는 점과 문화부와의 업무 중복성이 우려된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 기존의 미술품과 정부미술품이 엄연히 다른 성격이란 인식을 전제할 때, 별도의 특별기관 설립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문화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문화적 국가자산을 제대로 챙겨야 할 시점이다. 무방비로 널려 있는 정부소장미술품으로부터 그 과제를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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