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6000억 달러어치의 국채를 매입하는 2차 양적완화 프로그램(QE2)을 예정대로 오는 6월 중단한다고 확인했고, 아직은 정책기조를 긴축으로 선회할 때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도 이날 같은 이유로 기준금리를 0~0.25%로 동결했다.
이미 예상된 결과지만, 투자자들은 버냉키의 말에서 연준의 다음 행보를 점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버냉키가 통화부양 지속 방침을 시사한 것이 달러 약세와 인플레이션 압력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만기 채권 재투자, 사실상 'QE3'…"환경 최적"
시장에서 가장 주목하는 건 버냉키가 오는 6월 QE2를 종료하더라도, 보유 채권 가운데 만기 도래분을 채권시장에 재투자하겠다고 밝힌 대목이다. 그는 6월 이후에도 보유 중인 국채와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채권(MBS)의 만기 도래분을 채권시장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연준의 자산 규모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연준은 금융위기 이후 국채와 MBS를 대거 매입하며 자산 규모를 3조 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불렸다. 이 자금이 한꺼번에 풀리면 채권 금리가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은 충격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버냉키는 당분간 연준의 자산을 늘리거나 줄이지 않겠다며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는 본격적인 긴축에 나서더라도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경제 전문 채널 CNBC는 버냉키의 이같은 발언은 또 한 차례의 양적완화 프로그램(QE3)을 시행하겠다는 얘기와 다를 게 없다고 풀이했다. 연준은 이날 FOMC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전망치를 높임으로써 QE3를 시행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도 조성했다는 설명이다.
관건은 양적완화 방식인데, 시장에서는 연준이 전례 대로 달러화를 찍어내 채권을 추가 매입하는 방식은 취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연준 자산 가운데 부실채권을 팔아 그 수익으로 국채를 추가 매입하는 방안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약달러·인플레 심화…달러화 16개월 최저치
전문가들은 연준의 추가 부양의지는 투자심리를 북돋을 뿐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달러화 약세를 부추기는 직접적인 재료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날 버냉키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면서 뉴욕증시의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3년, 10년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문제는 증시 활황이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부추겨 안전자산인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면 상품시장 랠리로 인플레 압력도 높아진다.
이날 오후 2시 20분 현재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유로·달러 환율은 1.4862 달러로 전날에 비해 1.46% 올랐다. 전날 뉴욕 외환시장에서는 2009년 12월 이후 최고치인 1.4882 달러까지 급등했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도 같은 시간 72.96으로 전날보다 0.77% 급락했다. 이로써 달러인덱스는 2009년 3월 이후 최장 기간인 8거래일째 하락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최근 긴축기조가 확산되면서 미국의 금리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면, 달러 캐리 트레이드 수요가 늘어나 약달러 기조가 더 강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구마다 미키오 LGT캐피털매니지먼트 외환 투자전략가는 "미국의 통화정책은 여전히 너무 느슨하다"며 "단기적으로는 달러화의 약세 기조를 흔들 수 있는 재료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