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호 국토연구원장 |
(아주경제 김영배 기자) "국토 전반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과개발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적 권고를 한 것은 시의 적절했다. 아울러 이를 계기로 백년대계 차원의 국토개발정책과 지역개발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박양호 국토연구원장은 아주경제가 진행한 '국토 대해부…과개발에 신음하는 한반도' 기획보도와 관련해 이 같이 평하고, 글로벌 시대를 맞아 세계적 메가트렌드를 고려한 국토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원장과의 일문일답.
-이번에 아주경제가 과개발 즉, 과도한 지역개발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적 권고를 한 것은 시의 적절했다. 현재 국토종합계획과 하위 지역 및 도시계획의 근간은 국토기본법이다. 국토기본법은 국토균형발전과 국토경쟁력 강화, 친환경적 국토관리를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다. 이에 맞춰 세부기준을 정하고 국토공간개발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국토공간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과도한 개발은 지양하고 적시의 필수적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물론 국토의 과개발은 지역 이기주의와 칸막이 행정의 원인이 되는 부처 이기주의, 중복적 사업추진, 다른지역 따라하기식의 사업과 소모적 지역간 경쟁 등 복합적 요인이 얽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광역개발권역, 개발촉진지구, 신발전지역 등 각종 지역·지구 지정이 너무 많다. 담당 공무원 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내용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그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현재 7개 중앙부처와 1개청, 38개 법률에 근거해 지역지구로 지정된 것이 1556개에 이른다. 면적으로는 1200㎢로 남한면적을 오히려 초과(1.2배)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내용은 비슷한데 명칭만 다른 유사한 지역·지구가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사업과 제도를 제대로 알기도 힘든 실정이다. 기존의 지역·지구가 존재하는데도 칸막이 행정 때문에 자기 고유 업역을 유지하기 위해 유사한 이름의 지역·지구를 만들어 추진되는 경우도 있다. 지역·지구제도를 재검토하고 새로운 통합적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지구지정을 통폐합 하거나 조정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 개정 등이 선행돼야 하는데 이에 따른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처마다 각각의 특성을 반영한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법률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통폐합하거나 조정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각 부처별로 유사한 지역·지구와 법률을 통합, 조정하는 작업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국토해양부에서 지역개발관련 법률인 '지역균형 및 지방중소기업육성에 관한 법률'이나 '신발전지역 육성을 위한 투자촉진 특별법', '동서남해안 및 내륙권 발전 특별법' 등을 통합해 ‘지역개발의 종합지원에 관한 법률(가칭)’를 제정할 필요가 있다. 다행이 국토부가 이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나서 국무총리실이나 지역발전위원회에서 부처간의 유사 지역·지구나 법을 통합해 지역개발기본법이나 지역개발 기본절차법을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사실 지구지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특성에 맞게 어떻게 개발하느냐 하는 원칙과 방법론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사실 과개발 문제는 과도한 계획과 중복적인 지역·지구로 인해 나타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계획만 있고 사업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지만 지역 이기주의와 한탕주의식 개발이 무질서하게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광역경제권 단위에서 개발사업을 조정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대규모 사업은 중앙정부에서 조정하는 '선 광역경제권, 후 중앙정부의 조정' 시스템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지역간 경쟁 및 사업성 검증을 사업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약을 체결해 예산지원이나 제도개선 등 맞춤형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Plan-Contractor' 제도를 도입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지역개발사업을 공유하고 있다. 지차체고 몇 개의 시와 군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광역권 개발전략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개발에서 소외되는 지역에서는 불만이 많을 텐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국토종합계획의 틀 속에서 예산과 사업 선정을 지자체의 자율성에 맡기고, 광역경제권 차원에서 일차적 조정이 이뤄진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지역개발사업을 어떻게 조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겠지만 기준을 만들고 제대로 지키면 된다. 사업의 타당성이나 시기의 적절성, 규모의 합당성, 사업효과, 재원조달 등이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보건복지, 교육, 기반시설, 환경·경관, 문화·여가 등은 국가적 기준을 정하고 최소 기준 이상을 중앙정부가 보장해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농촌서비스표준시책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다수가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연하다. 계획이나 사업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는 납득할 만한 근거나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ERRC가 하나의 원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RRC는 Eraser(지우개) Reduce(축소) Raiser(강화) Creation(창조)의 첫 글자를 딴 것으로 말 그대로 폐지할 것은 폐지하는 등 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가지로 계량화할 필요가 있다. ERRC의 큰 틀에서 각 부처별로 조정안을 만들고, 부처에서 만들어진 조정안은 다시 컨트롤타워에서 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된다.
아울러 유사·중복된 국토·지역계획의 통폐합과 함께 지역·지구가 공간적으로 중첩되거나 사업 내용이 유사한 지역개발사업은 우선적으로 구조조정해야 한다. 또 정책·지침적 성격을 갖는 국토 관련 중장기 계획을 수립할 때도 국토기본법상 국토관리의 기본이념에 부합하는지 사전에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국토계획평가제도를 도입하고 사후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국토는 개발도 필요하지만 후손에게 넘겨줘야 할 유산이다. 그래서 경제논리와 미래지향적인 장기 비전을 담은 철학 공유도 필요해 보인다. 이에 대한 고견은?
-맞다. 국토는 현 세대만을 위한 개발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백년대계의 장기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물론 지금도 보존할 지역과 개발할 지역을 구분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앞으로는 국토의 개발용량과 환경용량에 근거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문제는 이러한 과개발을 어떻게 정비하고 스마트하게 이끌어 가느냐 하는 것이다. 좋은 방법이 없나?
-현재의 지역지구와 개발계획, 사업의 구조조정은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사정이 다르고 추진 중인 사업을 일시에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우선 각 부처별로 유사 계획이나 사업을 통폐합하고,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한 계획이나 사업은 과감히 통합하거나 폐지하는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부처간 유사 사업이나 계획을 통합 조정하는 작업은 범 부처적인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토론과 합의를 통해 정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된다.
△국토 개발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컨트롤타워를 통해 문제가 되고 있는 정부 부처 간 힘겨루기도 조율하고, 정책의 일관성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다. 어떻게 생각하나.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국토종합게획이 국토공간계획의 콘트롤타워적 기능을 하는 최상위 국가계획이다. 국토종합계획을 심의, 조정, 모니터링하고 보완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무총리 또는 대통령이 의장이 되는 국토종합계획심의회 같은 것이 필요하다. 다만 과거와 같은 형식적이어서는 안되고 실질적 중심기구가 돼야 한다. 프랑스가 도입하고 있는 DATAR(국토정비 및 발전 범부처 장관회의) 시스템을 참고할만 하다. 총리가 주재하는 CIAT(국토개발심의위원회)가 지역개발사업 계획을 심의·확정하는 최고 정책결정기관으로 관련 예산을 통합·조정하고 있다. 여기서 결정된 계획과 사업은 DATAR에서 집행하게 된다.
또 컨트롤타워가 만들어지고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범부처를 상대할 수 있는 위상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컨트롤타워가 각종 계획이나 사업을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조정, 심사할 수 있다. 그리고 컨트롤타워가 책임감을 갖기 위해 정책실명제 도입과 이에 대한 책임도 부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사업시행에 따른 리스크 관리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토 개발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국토개발 비전에 대해 한 마디 한다면.
-무엇보다 적시(適時)의 선택적 국토개발이 매우 중요하다. 또 세계적 메가트렌드를 고려한 국토개발도 필요하다. 2020년까지 중요한 국토개발사업은 일차적으로 완료돼야 한다. 왜냐하면 2020년이 세계경제의 중요 변곡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후변화와 녹색성장을 고려한 국토개발도 필요하다. 국토전체와 개별지역의 환경용량을 함께 고려하고 지속가능성과 경제성장, 저탄소 녹색사회 패러다임을 융합한 국토개발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G20시대와 선진국에 걸맞는 한국형 국토품격을 창조해야한다. 이러한 미래 국토발전 패러다임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무질서한 과도한 지역개발을 지양하고 적시(適時)의 선택적 국토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백년대계 차원의 새로운 지역개발 정책과 제도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 박양호 그는 누구인가.
박양호 원장은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고와 서울대를 거쳐 미국 버클리대에서 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0년 국토연구원에 입사, 국토계획연구실장과 기획조정실장, 부원장을 거쳐 지난 2008년 6월 원장에 취임했다. 청와대 지역균형발전기획단 전문위원, 대통령자문 농어촌발전위원회 전문위원, 한국지역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