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에 따른 고물가 안정을 최우선 정책으로 설정한 경제부처야 그렇다 치더라도 일부 외교·안보와 사회부처 장관들의 재래시장 방문은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게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장관들의 잇단 재래시장 방문이 전시행정에 치우쳤다는 비판이 있었던데다 장관이 시장에 들르면 의전 때문에 오히려 영업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상인들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소외된 이웃이 재래시장 상인 뿐이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외교통상부 장관이나 여성부 장관 등은 재래시장보다는 다문화 가정이나 부녀자 세대주 등 고유업무 관련 현장 파악이나 소외된 이웃을 방문하는 게 타당하다는 지적도 많다.
◆정부 수장들 잇단 재래시장행
지난 27일 지경부 장관에 취임한 최중경 장관은 이날 오후 수원시 팔달구 소재 지동시장을 찾아 상인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최 장관은 "설 차례상을 차리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평균 24.8% 저렴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시장을 찾은 소비자들에게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 안정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지난달 25일에는 윤증현 재정부 장관이 서울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에 들러 채소류와 생선 등을 직접 구입하며 한파와 물가급등으로 인한 매출감소 등에 관해 상인들과 대화를 나눴다.
구제역 사태로 돼지고기 가격이 불안정한 것과 관련해 그는 즉석에서 국내산 육우와 돼지고기 삼겹살 8만원 어치를 전통시장 전용 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으로 구입하는 성의를 보였다.
물가관리기관임을 선언한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도 지난달 20일 서울 관악구 신원시장을 찾아 재래시장의 가격추이를 살펴보았다.
이처럼 경제부처 수장들의 잇단 재래시장 행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동대문구 신당동에 위치한 한 재래시장을 찾아 소상공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한 뒤 부쩍 늘고 있다.
친서민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 대통령의 재래시장 행이 환영할만한 일이기는 하나 취재진을 비롯한 대규모 경호인단의 출현으로 영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동대문구 한 재래시장 상인은 "대통령의 재래시장을 찾은 성의는 감사하지만 언론에 다 알려진 뒤에는 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영업에 부담이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비경제부처장 재래시장 방문 '글쎄'…
이 같은 말이 나오는 배경은 명절 때만 되면 얼굴을 내비쳐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아오던 터에 범정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번 재래시장 방문이 그간의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는 데 있다.
더욱이 일부 외교·안보 및 사회부처 장관들의 재래시장 행에 대해서는 부처 업무의 성격을 도외시한 채 진행돼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측면도 있다.
백희영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중부시장을 방문해 설 명절전 물가 동향을 점검하고 설 성수품을 구매했다.
소상공인들의 사기진작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라고는 하지만 어색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는 게 시장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난달 31일 김교식 여성가족부 차관이 서울 소재 한 이주여성쉼터를 방문해 입소자들과 종사자를 격려했다는 게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평을 듣고 있다.
같은 날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서울 망원동 월드컵시장 내 전통시장을 찾은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외교업무를 맡고 있는 김 장관이 재래시장을 찾은 배경과 진정성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