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피탈사들이 신차를 할부로 구매하는 고객에게 신용등급에 관계없이 동일한 금리를 적용해 신용등급이 높은 고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업계는 자동차 할부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와 현대캐피탈이 금리 산정 체계를 변경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15일 캐피탈 업계에 따르면 현대캐피탈, 우리파이낸셜, 우리캐피탈 등 대부분의 캐피탈사들이 신차 할부 금리에 신용등급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차종과 선수금, 할부기간 등이 동일하다면 고신용자와 저신용자가 똑같은 이자를 내야 한다.
금리에는 연체 리스크에 대한 비용이 포함되기 때문에 고신용자가 저신용자의 리스크 비용까지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신차 할부 금리에 고객 신용등급이 반영되지 않는 이유는 완성차 업체가 사실상 할부 금리를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캐피탈사 관계자는 "명목상으로는 완성차 업체와 캐피탈사가 금리 수준을 협의하고 있지만 사실상 완성차 업체가 주도권을 쥐고 할부 금리를 가격 정책과 연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 대리점에서 고객의 신용등급을 실시간으로 조회하기 어려운 것도 금리에 신용등급을 반영하지 않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업계는 할부 금리 체계가 현대·기아차와 현대캐피탈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내수 시장 점유율은 85%, 현대캐티팔의 신차 할부 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현대·기아차를 구매할 때 현대캐피탈을 이용하는 비율은 94% 수준이다.
두 업체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보니 다른 완성차 업체와 캐피탈사는 현대·기아차와 현대캐피탈의 할부 금리에 맞출 수 밖에 없다.
캐피탈 업계 관계자는 "리스크를 짊어 진 캐피탈사가 아닌 완성차 업체가 할부 금리를 결정하는 것은 문제"라며 "자동차 판매 추이에 따라 완성차 업체가 금리를 조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완성차 업체가 개입하지 않는 중고차 시장에서는 고객의 신용등급에 따라 금리가 차등 적용된다.
이에 대해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현대캐피탈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진 것은 상반기 중 다른 캐피탈사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영업을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캐피탈사 간의 금리 인하 경쟁은 현대캐피탈과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할부 금리를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고객 뿐 아니라 중소형 캐피탈사의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정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대캐피탈의 경우 그룹 차원에서 손익이 조정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자금 조달이 어려운 중소형 캐피탈사들이 할부 금리에 대한 결정권까지 잃어버리면 시장 변동에 따라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연구원은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를 변경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지는 것처럼 신차 할부 금리도 획일성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시중은행의 여신부문 담당자는 "신용등급이 다른 고객에게 같은 금리를 적용하는 것은 원가가 다른 상품을 같은 가격에 파는 것"이라며 "고객 입장에서는 신용등급을 관리할 필요가 없어져 모럴 헤저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아주경제= 고득관 기자 dk@aj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