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18일 내놓은 내년 업무계획은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의 파도를 넘기 위한 은행과 기업에 대한 전방위 지원책을 담고 있다.
정부는 한국은행과 힘을 합해 은행들의 부실채권 10조원 어치를 사주고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20조원의 자본확충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실물경제가 급속히 얼어붙고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기 부진→기업 경영 악화, 가계 부실→금융사 건전성 악화→대출 축소, 내수 위축→경기 침체 가속화의 악순환을 차단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의 자본 확충과 기업 구조조정을 병행해 현재 가장 큰 어려움에 부닥친 중소기업과 가계를 최대한 지원하고 가능한 모든 자금을 동원해 경기를 떠받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 은행 자본확충..경기진작
정부는 `돈맥경화' 현상 해소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신용경색이 심화하고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한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면서 시중에 돈이 돌지 않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의 중소기업대출 증가액은 9월 2조4천억 원, 10월 3조4천억 원, 11월 4조3천억 원으로 늘었지만 작년 월평균 5조7천억 원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증시 침체와 금리 상승으로 기업공개나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은행의 지원을 받아 20조 원에 이르는 은행 자본확충 펀드를 서둘러 조성하는 것은 은행들의 대출 여력을 키워 시중의 꽉 막힌 자금줄을 풀자는 목적이다.
이는 정부가 자본확충의 대가로 중소기업 지원을 단 것이 보여준다. 정부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 국책 금융기관에 애초 계획보다 1조4천억 원 많은 5조6천억 원을 출자하는 것도 같은 뜻이다.
주택금융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채권과 부실채권 10조 원어치를 사들이는 계획 역시 은행의 자산 건전성을 높여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자금이 원활히 흐르면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고 실물경기를 북돋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기업 자금난 해소 총력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여신 규모를 올해 54조 원에서 내년 68조 원으로 늘리고 보증기관이 내년에 신규 보증 규모를 11조7천억 원 확대하면 기업들의 자금난에는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이중 중소기업에 대한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의 신규 자금 공급 목표는 50조 원에 달한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의 회사채와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등을 사들이는 채권시장안정펀드의 규모는 정부가 애초 계획한 10조 원보다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이 펀드의 투자대상인 채권의 만기물량이 내년 상반기에만 18조 원에 달하고 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어음(CP)과 달리 양도 등이 가능한 단기사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초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의 채권이나 CP 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기업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정부는 기업 퍼주기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실기업에 대해서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내년 초까지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회를 확대 개편하고 은행별로 구조조정 전담조직을 만들어 일시적 유동성 부족 기업은 충분한 자금을 수혈하고 부실 징후 기업은 구조조정, 회생 불가 기업은 퇴출하기로 했다.
은행권의 내년 중소기업 지원액 50조 원 가운데 상반기에 30조 원을 집중적으로 풀고 그 이후부터는 줄이기로 했다. 이는 앞으로 6개월간 기업에 살아날 기회를 주되 회생이 어려운 곳은 과감히 정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은행들의 중소기업 신속 지원프로그램을 내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가계 부실 막아라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부동산, 주식 등 자산가치가 하락하고 실질소득이 감소해 가계 부실의 가능성이 커지자 이를 막는 방안도 정부 대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서민.중산층인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은행 주택담보대출의 만기 연장 보증이 대표적이다.
지난 9월 말 현재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34조6천억 원으로 이중 40%가량을 차지하는 일시 상환 대출의 만기가 내년에 40조~50조 원 돌아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담보로 잡힌 집값이 내려가 기존 대출금 그대로 만기 연장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주택금융공사가 만기 연장을 보증하고 은행들은 가계 대출의 만기를 최장 30~35년, 거치기간은 최장 5~10년 늘려줘 빚 상환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신용회복기금의 지원을 받아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대상을 현재 채무액 1천만 원 이하에서 내년에 3천만 원 이하로 넓히고 소액서민금융재단의 복지사업 규모를 내년에 400억 원 늘리는 것은 경기에 가장 민감한 저신용자를 위한 지원책이다.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가 연체한 대학생들도 정부 지원을 받게 된다. 졸업 후 1년간 금융채무 불이행자 등록이 유예되고 신용회복 프로그램에 가입하면 취업 때까지는 빚 상환 부담이 없어진다. 신용불량자라는 딱지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낙오하는 사회 초년생을 구제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