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0만원짜리 고액권 화폐 발행을 무기한 보류키로 하고 조만간 이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한국은행에 통보.설명할 계획이다.
현 단계에서 `무기한 보류'는 사실상 `취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국회 재정위는 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법률로 발행을 강제하는 것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도 고액권 화폐발행을 보류하려면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그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정부 "10만원짜리 발행 안한다"
고액권 화폐 발행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확정됐다. 5만원권은 계획대로 내년 상반기중에 발행하고 10만원권은 무기한 보류한다는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16일 "조만간 정부의 입장을 확정해 공표할 계획"이라면서 "강만수 재정부 장관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밝혔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지난 10월 23일 국정감사에서 "아직 공식적으로 이야기할 상황은 아니지만 5만원권, 10만원권 발행과 관련해 10만원권은 여건상 시급하지 않은 것 같다"며 "경제사정이 어려운 데다 사실상 5만원권을 발행하면 거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데 10만원권까지 발행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강 장관의 이 발언은 10만원권을 사실상 무기한 보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은 관계자도 "강 장관 발언 이후 정부로부터 공식 입장을 통보받지 않았지만 무기한 보류 또는 취소중 하나가 선택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한은은 작년 5월에 고액권 발행계획을 발표했고 화폐도안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작년말에 최종 도안을 확정했다.
10만원권 앞면에는 김구 선생의 초상화를, 뒷면에는 대동여지도의 목판본을 넣기로 했다. 하지만 목판본에 독도 표시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 필사본을 바탕으로 독도를 그려 넣기로 했으나 정부의 요청에 의해 중단된 상태다. 5만원권은 당초 계획대로 내년 상반기에 발행된다.
◇ 정치권은 "원래 방침대로 해야"
정치권은 10만원권 발행 보류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서병수 국회 재정위원장(한나라당)은 "10만원권 발행 중단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재정위 의원들의 대체적인 의견으로 판단되면 다시 발행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전하고 "필요하면 법률안 개정 등의 조치를 통해 원래 방침이 유지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재정위 간사인 최경환 의원도 "고액권 발행은 17대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의원 촉구결의안 에 따라 이뤄졌다"면서 "결의안은 법률적 효력을 갖는데, 정부가 납득할만한 이유없이 고액권 발행을 보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17대 국회에서 고액권 발행을 담은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정부가 발행키로 결정함에 따라 철회했다"면서 "따라서 정부가 발행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법률을 통해 강제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한은 "난감한 상황"
한은 금통위는 더욱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정부의 승인하에 내년 상반기까지 10만원짜리를 발행한다고 의결을 해놨다가 별다른 이유없이 이를 철회하는 의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 문제는 한은이 아직도 무기한 보류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정부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기 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한은 관계자는 "고액권 발행을 보류.취소할 경우에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 재정부와 실무협의를 한 적은 있지만 보류하는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 들은 바는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한은이 납득할만한 이유없이 발행보류를 의결한다면 그동안 중시했던 `독립성'을 스스로 무너트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승인을 취소했는데도 중앙은행이 발행을 강행하는 것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금통위가 10만원권 고액권 발행의 보류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10만원권 왜 보류하나
재정부가 그동안 10만원권 발행 중단의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뒷면에 들어가는 대동여지도 목판본에 독도가 없다는 점이다.
또 ▲신용카드를 비롯한 전자화폐가 활성화된 상황에서 고액권이 필요하지 않고 ▲물가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며 ▲고액권이 부정부패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은 고액권 발행을 결정하기 전에 많은 논란을 거쳐 일단락된 문제들이다.
일각에서는 인물초상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보조 도안(대동여지도) 때문이라기 보다는 앞면 도안에 김구의 초상이 선정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부 보수층에서는 고액권 인물로 김구가 아닌 박정희 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넣자는 주장을 해왔는데, 이런 의견이 이번 결정에 작용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