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은 비핵화 2단계와 3단계에 걸쳐 매우 오랜 시간에 시행되는 과정이다."
6자회담 한국측 수석대표인 김 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6자 수석대표회담 개막 하루전인 7일 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그의 이 언급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어 보인다. 검증(verification)이 비핵화 2단계에 속하느냐, 3단계에 속하느냐를 놓고 그동안 북한과 나머지 나라들은 서로 다른 얘기를 해왔다.
미국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 등은 북한이 신고한 내용을 검증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수반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비핵화 2단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은 6자회담 합의에 따라 불능화와 신고까지를 2단계로 규정하면서 검증은 3단계에 가서나 논의할 수 있다는 논리로 맞섰다.
어찌보면 단순한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핵폐기로 가는 과정을 놓고 서로 질 수 없는 기싸움이 펼쳐지면서 6자회담은 교착국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한국 등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과거 핵활동을 제대로 파악해 핵폐기로 이끌기 위해서는 비핵화와 연계하지 않는 새로운 개념으로 검증을 규정하는 것이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새롭게 규정된 검증은 크게봐서 ▲행정적 기획단계 ▲현장방문 등 이행단계 ▲그 결과를 분석하는 단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단계로 구분된다.
이 논리가 성립하면 북한에 제시할 새로운 카드도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각 단계별로 이행계획서를 마련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많은 주요 쟁점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또 실질적인 검증을 실천하다 보면 비핵화 2단계를 넘어 3단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도 있다.
현재의 국면은 물론 검증의정서의 원칙을 담는 단계, 즉 이행계획서를 만들어야 하는 행정적 기획단계에 해당된다. 당연히 전체 검증과정을 염두에 두고 기획을 하자면 향후 검증에 착수했을 때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를 상정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 원칙에는 검증의 방법과 주체, 이행계획서 작성을 위한 기본적인 내용이 담겨야 한다. 검증의 주체 등에 대해서는 지난 7월에 열린 6자회담에서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주체에 대해서는 '6자회담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전문가들로 구성되며 필요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자문과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환영'하도록 했다.
방법은 '시설 방문, 문서 검토, 기술인력 인터뷰 및 6자가 만장일치로 합의한 기타조치를 포함'하도록 했다.
이 내용들은 북한도 동의한 것이다. 따라서 기획 단계를 규정하는 이행계획서를 작성할 때 당시의 합의에 ▲주체에서는 IAEA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문제 ▲방법에서는 시료채취를 규정하는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남아있다.
미국 등은 바로 이 대목에서 비공개 양해각서 카드를 사용하려는 듯하다. 두 사안에 대해 분명하게 문서로 규정하되 형식은 공개하지 않는 비밀문서에 담자는 것이다.
어차피 공개하지 않는 양해각서라고 하더라도 언론이나 각국의 의회에 설명하는 과정에서 알려질 것이고, 6자회담에서 합의된 문서 형태로 남아있을 경우 향후 검증활동에 착수하더라도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 소식통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북한이 이런 논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절충안에 동의하느냐 여부다. 현재 북한은 미국의 제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진실의 문 앞까지 다가선 6자회담이 그 문을 열고 북한의 과거 핵활동을 규명해낼지, 아니면 끝내 검증고비를 넘지 못하고 새로운 양상으로 비화될 지 결정 날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