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눈뜨고 코벼가는 세상'

2008-12-2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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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속담에 눈뜨고 코 벼간다는 말이 있다.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이같은 속담도 옛말이 돼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현대판 눈뜨고 코벼가는 세상이 다시 도지고 있다.  도시 정비사업의 허술한 공람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한강이 바라다보이는 서울 동부 이촌동은 탁 틔인 조망권 때문에 유명 연예인들이 살만큼 주거지역으로서는 서울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좋은 곳이다.  

이곳에는 준공(‘74년)된 지 30년이 넘은 대한의사협회의 7층짜리 건물도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 ‘96년 이 지역을 상점이나 체육시설들만 들어설 수 있는 2종 주거지역으로 도시정비사업 계획을 고시했다.

의사협회로서는 건물의 재산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전국 8만 의사들은 일제히 협회 집행부에 분개했다.

회원들의 공동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협회 건물의 재산가치가 절대적으로 떨어질때까지 협회가 뭘 하고 있었느냐는 게 질타의 요지였다.

지난 8월 서울시는 과거부터 부자 동네로 유명했고, 외국 대사관들이 밀집해 있는 종로구 성북구 일대의 낙후지역을 도시재개발지구로 지정, 고시했다.

이 지역은 서울성곽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적들과 외국 대사관들이 밀집해 있어 몇 차례 재개발 추진이 시도됐다가 무산된 적도 있는 지역이다.

부모 세대부터 이곳에서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살아왔다는 민모(58, 남)씨는 “그동안 재개발 추진이 안된다고 해서 그런줄만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재개발)고시가 떨어졌다”며 관할구청의 업무 방식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재개발사업은 해당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과 직결되는 문제 일 뿐아니라, 재산권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에 따라 재개발사업이 추진되면 해당 주민들 사이에는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주민들이 항상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만큼 중차대한 사업이란 얘기다. 특히 개인재산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란 점을 감안, 행정관청은 사업과정을 주민들에게 낱낱이 알려서 주민들의 합의를 전제로 추진해 나가는 게 마땅한 이치다.
 
그러나 앞서 밝힌 두 가지 사례의 경우 주민들에 대한 통지나 합의과정에서 관할관청이 너무 소홀했다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다.

특히 재개발 추진 단계에는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공람기간이 있다. 보통 공람의 공고는 동사무소 게시판, 재개발조합설립추진위원회 사무실, 구청 홈페이지의 구보(區報) 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휴직자 또는 구청직원이 아닌 이상 구청게시판을 보러 가거나 재개발조합설립추진위원회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공람기간이 언제인 지 챙길만큼 한가한 입주민들은 많지 않다.

더구나 혼자사는 노인들의 경우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구보(區報)를 통해 공람기간을 확인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재 도정법(도시및 주거환경정비법)에는 지자체의 경우 공람기간을 공보에 공고하도록 명시돼 있고,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규정은 없다. 도시 정비사업 공람방법에 대한 제도적 보완조치가 하루빨리 필요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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