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4일 채권시장 안정 펀드(약칭 채안펀드)에 최대 5조원을 수혈하기로 함에 따라 채안펀드 조성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연기금, 은행, 보험사 등의 출자를 받아 펀드를 조성한 뒤 이르면 다음 달 중 본격적으로 펀드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은은 출자하는 금융기관들에게 출자금액의 50%를 공급해주는 방식으로 펀드를 지원한다.
전문가들은 채안펀드가 조성돼 회사채 등을 사들이면 관련 채권 금리가 하락하고 그동안 자금 조달 줄이 꽉 막힌 종소기업과 금융권의 자금난을 더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평가했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와 경기둔화 여파로 채권시장이 사실상 마비되고, 은행들이 돈줄을 죄면서 중소기업과 은행들은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 지원금액 최대 5조원..그 이유는
한은이 채안펀드에 지원키로 한 최대 5조 원은 시장의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다. 그동안 한은은 전체 10조 원 가운데 절반을 넘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보여왔다. 중앙은행이 전체 액수의 절반 이상을 지원하면 펀드라기 보다는 한은의 `금고'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금융위원회는 한은의 지원 금액이 많을수록 좋다는 의견이었다. 연기금이나 은행·보험으로부터 자금을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은 부총재보는 "최대 5조원은 민간 투자방식이라는 펀드의 의미를 살리면서 시장 안정에 대한 중앙은행의 의지를 나타내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지원은 해당 펀드에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각 금융기관이 출자하는 금액의 50%에 대해 국고채 직매입, 통안증권 중도환매 방식으로 이뤄진다. 예컨대 A은행이 1조 원을 출자하면 이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국고채를 사들이거나 통안증권을 중도환매하는 방식으로 출자 금액의 50%인 5천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 부총재보는 "만약에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이 2조 원을 출자하면 한은은 나머지 8조 원의 절반인 4조 원에 대해 유동성을 공급하게 된다"면서 "따라서 전체 지원금액은 5조원보다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환매조건부채권(RP) 방식보다는 상대매매 방식으로 금융기관에 자금을 공급키로 했다. RP방식으로 공급하면 입찰에 다양한 금융기관들이 참여할 수 있어 해당 기관에 유동성이 곧바로 투입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 펀드, 언제부터 운영되나
금융당국은 한은의 유동성 지원에다 연기금, 은행, 보험, 증권사 등의 출자를 받아 이르면 12월부터 채권안정펀드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 펀드의 투자 대상은 회사채, 은행채, 할부금융채, 카드채,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보증권(CBO) 등으로 출자회사로 구성된 펀드운용위원회의 위탁을 받은 자산운용사가 자금을 집행하게 된다.
금융위는 이 펀드를 통해 신용등급 BBB+ 이상의 우량 채권뿐 아니라 그 이하 등급의 채권, 건설사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도 선별적으로 사들일 예정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은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의 보증을 붙여 BBB+ 이상으로 등급을 끌어올린 뒤 매입해 기업과 금융회사의 자금경색을 풀어줄 방침이다. 일부 BBB+ 이상의 채권에도 보증기관의 보증을 통해 신용등급을 높여 금융권의 펀드 출자 위험을 덜어주고 수익률도 높이기로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채안펀드의 매입 대상에는 ABCP는 물론 국고채도 포함될 수 있다"며 "이 펀드는 일시적 유동성 문제를 겪는 기업과 금융회사의 막힌 자금줄을 풀어주기 위한 것으로 투자 대상을 다양하게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펀드운용자금 중 한은의 유동성 지원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는 연기금과 금융회사로부터 조달해야 하는데 얼마나 빨리 자금을 모으냐에 따라 펀드의 출범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금융위는 유동성 부족이 시달리는 금융회사보다는 회사채 투자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연기금에 기대를 걸고 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펀드 조성금액의 상당 부분을 연기금이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시장 안정에 도움 줄까
전문가들은 이 펀드가 조성돼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시장 안정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SK증권 양진모 애널리스트는 "당장 회사채 금리를 낮추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특히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부실이 다른 기업까지 전염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펀드의 `실탄'이 떨어지게 되면 추가 유동성 공급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전체 펀드 조성 규모인 10조원은 시장을 안정시키는데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현대증권 신동준 채권분석팀장은 "당장은 긍정적 효과를 주겠지만, 이 정도 규모의 조치에 대한 효과는 시장에 상당 부분 미리 반영이 돼 있다"며 "한은이 유동성을 더 공급하겠다는 시그널을 준다면 더 긍정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경제연구소 전효찬 수석연구원도 "신용 경색을 일부 완화할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로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좀 더 넉넉하고 충분한 수준의 유동성 공급이 추가로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이 부총재보 그러나 "그동안 신용위험 경계감이 커지면서 회사채, CP 시장 등 직접 금융시장이 위축됐지만 채안펀드 자금이 조성돼 회사채 등을 매입하게 되면 자금흐름이 원활히 되고 금리도 안정을 찾을 것"이라면서 "아직 펀드가 조성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추가적인 공급을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