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칼럼] 미국이 보여준 풀뿌리 민주주의의 힘

2008-11-0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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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의 '수퍼파워' 미국이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신용위기 사태로 글로벌 경제를 위기에 빠지게 하더니 이번에는 '신의 은총'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흑인 남자가 미국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중산층과 서민의 붕괴로 절망에 빠진 미국인들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 흑색 혁명을 몰고 온 것이다. 

특히 최근 미국의 흐름은 한국의 과거를 뒤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용위기 사태의 근원지로써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을 결정한 것은 지난 1990년대말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에 몰아친 IMF 사태를 목도하는 듯 했으며 이번 대선은 지난 2002년 치러진 한국 대선을 생각나게 했다.

2002년 한국과 현재 미국에서 무능력한 정부에 실망한 국민들이 변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것을 비롯해 젊은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와 인터넷을 통한 자발적인 선거자금 모금 등이 판박이처럼 닮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지난 2001년 뉴욕 무역센터에 떨어진 비행기가 부시 행정부의 대테러 전쟁의 시발점이 됐다는 점과 2008년 월가의 중심에서 터진 핵폭탄이 미국 대선을 좌우하는 변수가 됐다는 사실도 아이러니하다.

외부로부터의 테러가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도록 오만하게 만들었다면 내부에서의 폭탄은 정권 교체를 위한 배경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념과 당파를 떠나 2008년 미국 대선 결과가 감동스러운 것은 민주주의의 리더를 자부하는 미국이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상 최고의 유권자등록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수백만의 지지자들이 한푼두푼 모은 정치자금이 1000억원에 달했다는 사실과 조기투표에 참여 하기 위해 한 시간이 넘게 줄을 선 행렬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오바마의 당선이 확실해지자 미국인들은 밤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뛰쳐 나와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외쳤다. 일반적으로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미국인들이 이처럼 선거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낸 것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초강대국의 지도자가 누가 되고 그에 따른 실리를 따지기 위한 관심의 대상이었다면 2008년 미국 대선은 전세계인의 가슴을 울린 한편의 드라마였다.


오바마 당선 결정 이후 뉴욕의 한 시민이 "오늘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미국인이다.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확인했다. 가슴이 벅차다"라면서 울먹인 것은 생면부지인 타국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오바마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변화는 위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변화는 움직이는 풀뿌리로부터 시작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의미를 잊지 않고 자신의 공약처럼 95%의 미국인들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인지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의 한걸음, 한걸음에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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