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불신의 경계-
박기태 (경주대학교 교수)
지난주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2009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했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정부는 시장이 불안에서 벗어날 때까지 선제적이고 충분하며 확실하게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26분간 연설하는 동안 아홉 차례의 박수를 받았고 기립박수를 받으며 퇴장하였다. 위기에 처한 국민의 불안감을 걷어내고 자신감을 심어주기위한 국정최고 책임자로서의 책무와 고뇌를 동시에 피력하는 더 없이 진솔하고 엄숙한 선언을 하는 듯한 인상도 받았다.
곧이어 터져 나온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소식에 주가와 환율이 오르락내리락 급 파도를 탔지만, 급격한 안정조짐을 보이고 있다. 스와프 협정이란 외환위기가 오면 이른바 ‘달러 파병’을 하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곧 한국에서 달러를 찍는 효과이다.
또 한편은 비록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우리 돈이 결제통화의 자격을 갖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U중앙은행을 포함하여 9개국이 맺고 있는 이 협정은 급박한 외환위기의 숨통을 틀 수 있는 수단인데 오랜만에 강만수 경제팀이 보인 호재인 셈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그 정점에 있으면서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정치의 마당에 들어가서 보면 기류는 딴판이다. 다 같이 나라 경영의 책임을 진다는 정치가들이건만 여야의 입장은 그 거리가 너무 멀다.
대통령의 연설에 아홉 번의 박수를 보낸 쪽은 한나라당 그들만의 환호였고 민주당은 무덤덤에 딴전을 피우는 가하면, 급기야 민주노동당 5명의 의원은 중간에 퇴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야당의 생각은 한마디로 ‘납득할 수 없다’ 즉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며, 그 바탕에는 ‘진솔한 자기반성과 해명, 사과 없다. 그러니 결국은 그야말로 위기를 넘기고 시간 벌기 위한 속임수’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국민은 누구를 믿을 것인가.
바로 이쯤에서 우리는 믿음과 불신 사이의 보이지 않는 막을 걷어내는 마술 같은 진실인 ‘소통’의 힘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세계가 보는 만큼 심각한 위기가 아니고, 그 저력도 크다는 정부의 생각에 상당부분 생각을 같이한다. 그러나 세계의 영향력 있는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계속 위기라고 잘못알고 있으며, 그렇게 보도하고 진단한다는 정부의 주장에는 동의 할 수 없다.
바로 이 부분이 소통 경화증을 앓고 있는 현 정부의 큰 병통이다. 대통령의 연설은 국민에 대한 부동의 약속이며, 가장 무거운 책무를 스스로 진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믿음과 불신의 경계는 대창같이 얇은 막인지라 잘못 다루면 쉽게 찢어져 버린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도 “한국 경제 결코 나쁘지 않다. 이유 없는 불안감을 버려라”라는 세계 석학들의 권고나 조언을 수없이 듣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석학들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이 나라 지도자들의 태도에서는 어디에서도 믿을 만한 구석이 없다. 국민은 늘 믿음과 불신의 경계선에 서 있다.
한 발짝만 잘못 딛으면 불신의 늪에 빠져 헤어나기 어렵다. 국민의 믿음을 탓하기에 앞서, 먼저 정치지도자들이 서로 이해하고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위기의 강을 함께 건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