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간 국내 은행들은 정책 당국에 건의했던 요구사항을 대부분 관철시키며 실속을 챙긴 반면 정부는 실효성 없는 자구책을 이끌어낸 건 외에 특별히 얻은 게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오히려 정부는 은행에 대한 지원에 나선 대가로 관치금융 논란과 함께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에 직면하게 됐다.
28일 은행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정부는 유동성 추가 공급과 대외채무에 대한 지급보증 등 국내 은행에 대한 지원책을 쏟아냈다. 이미 지원에 나섰거나 향후 지원하기로 한 금액만 무려 160조원 이상이다.
이달 초 은행들이 금융위기 여파로 해외 차입에 어려움을 겪자 정부는 150억달러 규모의 외화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이어 지난 19일에는 은행들의 대외채무에 대해 3년간 1000억달러 한도로 지급보증을 해주기로 하고 300억달러의 외화 유동성도 추가로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은행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한은은 지난 한 달간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하했다. 특히 27일 개최된 임시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0.75%포인트 인하를 결의하는 한편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될 경우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서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은행권의 원화 유동성 부족 현상을 완화해주기 위해 최고 10조원 규모의 은행채를 환매조건부채권(RP) 방식으로 매입하기로 했다.
은행들이 요구하고 있는 추가적인 조치들도 대부분 관철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원회는 원화 유동성 비율 완화를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며 은행들의 요청으로 외화 유동성 비율 개선도 검토 중이다.
또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및 지급준비율 완화의 경우 현재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시장의 불안심리가 해소되지 않으면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예금보장 한도 확대는 기획재정부가 비상 대책(컨틴전시 플랜)에 포함시켜 놓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정부에 요구한 정책 제안들은 대부분 관철되고 있다"며 "경영난 해소를 위한 추가 조치들도 계속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원에 대한 대가로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은행권에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촉구했지만 은행들이 내놓은 대책은 초라했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27일 은행을 압박해 받아 낸 지급보증 양해각서(MOU)를 공개하고 은행권의 건전성 제고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까지 은행들이 발표한 임원 임금 삭감 규모는 66억원 가량에 그쳤다. 중앙 부서 및 지점 통폐합 방안은 구체적인 추진 일정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정부가 일년 예산에 맞먹는 규모의 지원을 해주면서도 은행권으로부터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했다"며 "은행들의 모럴 헤저드를 방치하는 것 아니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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