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와 '박세리 키즈'

2008-10-2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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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의 앞 물결이 뒤 물결을 밀어낸다더니…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다.

지난 주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하이트컵챔피언십대회는 참 볼만했다.

한국 골프의 새 시대를 연 박세리와 그를 우상으로 여기는 ‘박세리 키즈’의 대결.

결과는 ‘박세리 키즈’ 신지애의 우승으로 끝났다.

리더 보드 뒷자리로 물러나 후배의 우승을 축하하며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박세리.

그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고 있는 10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98년 6월 마지막 날 아침.

IMF 경제위기의 고통에 시름하던 온 국민은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 앉았다.

아시아 사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흑인에 가까울 정도의 검은 피부와 아름다움 보다는 다부진 얼굴에 작은 키, 굳게 다문 입과 곱지 않은 눈매에는 오직 승부의지 밖에 다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는 박세리의 모습이 있었다.

잠시 후 박세리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인 채 골프채를 들고 워터해저드로 성큼 들어갔다.

햇빛에 그을린 검은 다리와 양말을 벗은 맨발의 뽀얀 피부, 그 순간 골프는 더 이상 고급 스포츠도, 귀족들의 호사스런 놀이도 아니었다. 스포츠의 냉엄하고 비정한 승부의 세계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감격적인 우승을 거머쥐는 장면이었다.

이른바 ‘맨발의 투혼’으로 불리는 이 장면은 세계에 한국여자골프의 근성을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고, 경제위기의 고통에 시름하는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대한민국이 IMF위기를 슬기롭게 넘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은 글로벌 신용위기 여파로 흔들리고 있다. 10년 전 그 당시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달라진 것은 박세리 대신 ‘맨발투혼’을 보고 골프채를 잡았던 신지애, 이선화, 박인비 등 ‘박세리 키즈’들이 LPGA무대를 휩쓸기 시작한 것이다. 올 시즌 한국 여자선수들이 LPGA무대에서 거둔 7승 모두 ‘박세리 키즈’들이 이루어 냈다.

우리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10년이란 시간이 저절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엄청난 노력과 피와 땀을 바치지 않고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 인고의 시간을 편하게 ‘10년 세월’이라고 단정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로 태산을 옮기고 바다를 뭍으로 만드는 작업을 한 것이다. 오로지 골프에만 매달린 ‘박세리 키즈’들이 엄청난 훈련과 고통의 시간들을 참고 이겨냈기 때문에 오늘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IMF위기를 극복한 우리 경제의 10년 노력도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다. 험난한 국제 환경속에서도 당당하게 일어선 대한민국이 지금은 글로벌 신용위기 여파로 잠시 힘들어 하지만 곧 극복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이제 LPGA투어 무대는 ‘박세리 키즈’들의 세상이다.

내년에도 그들의 멋진 승리가 다시금 경제위기에 지친 국민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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