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구제금융 무엇이 문제인가?

2008-09-24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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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안 의회 통과 난항 대안 없고 미 재정 부담 너무 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사태로 치닫고 있는 신용위기 사태 해결을 위한 미국 정부의 행보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미국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안을 내놓았지만 금융시장의 반응이 냉담한데다 구제금융안 시행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 의회조차 신중론을 내세우며 비협조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금융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구제금융이 최선이라는 조지 부시 행정부와 구제금융안에 대한 부담을 지적하며 보다 확실한 대책을 요구하는 의회의 세력 다툼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금융시장 반응 싸늘...美증시 이틀 낙폭, 6년래 최악=먼저 금융시장의 반응이 싸늘하다. 23일(현지시간) 뉴욕증시는 장초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 채 약세를 지속했다.

다우지수는 1.47% 하락해 1만854.17을 기록했고 S&P500지수와 나스닥 역시 각각 1.56%와 1.18%의 낙폭으로 장을 마감했다.

전일 급락까지 감안할 경우 다우지수가 530포인트 이상 급락하는 등 미국증시 주요 지수는 지난 2002년 이후 이틀 동안 가장 큰 낙폭을 기록한 셈이 됐다. 

   
 
최근 1년간 다우지수 추이 (출처: 야후파이낸스)

당국의 구제금융안 통과를 위해 미국의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발벗고 나섰지만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지는 못했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의회가 70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을 경우 금융시장과 경제에 위협이 될 것"이라면서 "조속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폴슨 장관 역시 "경제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금융기관 파산과 신용경색을 막기 위해 구제금융 계획을 신속히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美 의회, 신중론 확산..."근본 대책 아니다"=의회 지도자들의 입장은 정부의 구제금융안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민주당 소속의 크리스 도드 상원 금융위원장은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속도가 중요하다"면서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구제금융안이 성공할 지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며 만약 실패할 경우 대안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여당 역시 신중론을 제기하고 있다. 상원 금융위원회의 공화당 리처드 셸비 의원은 "재무부의 구제금융안은 막대한 공적자금의 투입을 담보로 하고 있지만 원활한 작동 여부는 불확실하다"면서 "조급하게 마련된 계획에 엄청난 세금을 허비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미국의 주요 정책 당국자들이 상원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헨리 폴슨 재무장관, 벤 버냉키 연준 의장, 크리스토퍼 콕스 SEC 의장, 제임스 록하트 연방주택금융지원국(FHFA) 국장.

미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구제금융안은 무엇이 문제일까. 신중론자들은 과도한 공적자금이 투입된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는 재정적자 확대로 이어지고 결국 달러 약세를 이끄는 등 자본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전일 국제유가가 사상 최대폭으로 상승하는 등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 계획이 금융위기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를 장기불황으로 이끄는 악수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백악관의 경제자문을 역임한 스티브 행키 존스홉킨스대 이코노미스트는 "월가의 혼란이 실물경제에 2차적 혼란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고 "미국이 과거 일본의 경제침체와 유사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구제금융이 시행되더라도 부동산시장과 실물경제의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앞으로 최대 5년 동안 성장이 멈출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막대한 구제금융 계획이 실물경제에 직접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에만 집중되면서 금융업계의 모럴헤저드를 키울뿐 아니라 형평성 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日 '잃어버린 10년' 교훈 삼아야...최악의 경우 美 경제 파산할 수도=지난 90년대초 일본이 세금환급과 저금리 정책 등 부적절한 시장개입을 통해 경제를 오히려 악화시켰다는 점도 미국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의 초저금리 정책이 도마 위에 오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막대한 규모의 구제금융으로 인해 미국 정부의 살림살이가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구제금융 실시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미국의 공공부문 부채는 올해 5조4000억달러에서 10년 뒤에는 7조9000억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정부의 구제금융 실시로 부채가 최소 1조8000억달러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미 재무부는 구제금융을 위한 자금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국채발행 한도를 6.6% 상향 조정해 11조3150억달러로 늘릴 것을 요구했다.

재무부가 발표한 2008회계연도에 미국의 재정적자는 3894억달러로 추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는 이미 전년 대비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내년 적자는 4820억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칫 신용위기를 억제하려다 최악의 경우 미국 정부가 파산 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은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스코티아 캐피탈의 세이커 티하니 외환 투자전략가는 "부실자산 정리 비용이 늘어날 경우 정부 재정은 물론 납세자 부담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이는 달러 자산에 대한 국제 수요를 줄이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 실시를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오는 4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나타낼 것이 확실시되고 있고 세금환급의 효과 역시 큰 기대를 하기 힘들다는 사실도 경제의 불활식성을 키울 수 있는 요인이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재정적자가 불가피한 감세 공약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구제금융이 미칠 파장이 더욱 커지게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구제금융안이 실패할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7000억달러를 쏟아붓더라도 상황이 개선된다는 보장이 없는데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부실채권을 계속해서 사들이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 연준 고위 관계자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구제금융안이 실패할 경우 금융시장은 패닉 상태에 빠질 것"이라면서 "만약 이같은 사태가 벌어진다면 미국 정부가 은행시스템 전부를 국유화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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