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요구에 한은 '사면초가'

2008-04-2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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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까지 가세해 금리인하 촉구 곤혹스런 한은, 반발 조짐 보여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에 이어 금융위원회까지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한국은행을 궁지로 몰고 있다.

그러나 국제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등 물가 상승 압력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 쉽사리 금리를 인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24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미간 정책금리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며 한은을 압박했다.

강 장관은 이날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강연자로 나서 "우리나라 정책금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을 뿐 아니라 (한미간) 정책금리 격차도 2.75%까지 벌어졌다"며 "일어날 수 있는 구체적 상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은이 이른 시일 내에 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으면 경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앞서 전날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물가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급격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서는 금리는 낮추는게 낫다"며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정부 입장에 지지를 표했다.

전 위원장은 "경기의 급속한 침체는 몸으로 치면 출혈이며 물가가 좀 오르는 것은 혈압이 오르는 것"이라면서 "몸에 주는 폐해를 생각하면 혈압이 좀 올라가더라도 출혈의 피해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융감독당국 수뇌부가 이처럼 직설적으로 정책금리 인하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경제 운용 방향을 물가안정에서 경기부양으로 선회한 가운데 재정부와 금융위의 주요 당국자들이 잇따라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자 한은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국내외 시장여건이 금리 인하에 우호적이지 않은데도 주요 당국자들이 한은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오히려 금융통화위원회를 위축시켜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시장여건은 한은 금통위가 금리 인하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제 유가는 이번주 들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도 1000원선을 넘나들며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3월 생산자물가와 수입물가는 각각 8%와 28% 급등하며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금과 2년 미만의 예적금을 포함하는 광의통화(M2)가 전년 동월 대비 13.4% 증가하는 등 유동성도 급증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리를 내릴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주요 당국자들이 한은 금통위를 몰아붙일 경우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금통위가 보수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금통위에는 친 정부 성향의 신임 금통위원 3명이 새로 참석하는데다 경기도 침체 양상을 보이고 있어 어느 때 보다도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는 한은을 자극하는 언행을 삼가고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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