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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연구원
김광석 연구원 gsk@hanyang.ac.kr
  • - 한양대 겸임교수
    - 前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 前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 혼돈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45년 만의 비상계엄 사태는 온 국민을 불안으로 내몰았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밤 내려진 비상계엄령과 2시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 해제 조치, 7일 저녁의 탄핵안 표결 무산이라는 일련의 긴박한 일들이 역사로 남겠지만, 국민의 마음엔 상처로 남을 것이다. 미국은 ‘더 위대하게’를 외치는데, 한국은 ‘더 위험하게’ 내몰리고 있다. 트럼프 2.0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밀려오고 있는데,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그 소용돌이를 잘 우회할지를 고민할 겨를도 없이 스스로 난파하는 듯한 모습이다. 정치적 리스크가 장기화함에 따라 한국 경제에는 어떤 파장이 있을지 진단해 보고, 추가적인 위험이 전이되지 않도록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원화 가치의 급락 한 나라의 통화 가치는 물건을 구매하는 사용 가치 그 이상을 의미한다. 비상계엄을 선언한 이후 원화 가치는 급락하기 시작하여, 2024년 12월 4일 새벽 약 0시 26분께 1446.5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던 2009년 2월 이래, 약 15년 만에 벌어진 이례적인 외환시장의 모습이었다. 마치 전쟁이 발생할 때처럼, 원화 가치가 급락한 것이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도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고, 세계 금융시장은 안전자산인 달러화를 쟁취하기 위해 내달린 바 있다. 정치적 불안이 장기화함에 따라, 원화는 평가절하되고, 달러 보유 성향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강달러가 아무리 뉴노멀(new normal)이라지만, 1400원대의 환율이 지속될 경우 수입 물가를 자극하고, 내수경기 부진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등의 통화정책 의사결정에 걸림돌이 된다. 외국인 자금 유출과 외환 건전성 악화 등에 대한 우려도 경제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한국 주식을 떠나는 외국인 주식 가치는 기업의 성과에 대한 기대를 뜻한다. 정치적 혼란은 기업의 성과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만든다. 비상계엄령 폭풍이 증권시장에도 불었고, 외국인은 주식을 내던지고 급속히 빠져나갔다. 외국인은 비상계엄을 선언한 다음 날(4일) 4000억원, 그 다음 날(5일)에도 3000억원 넘게 순매도했다. 한국 주식시장은 2024년 유독 조정을 많이 받았고, 유독 외국인의 순매도 기조가 강하게 이어진 터였는데, 정치적 대치 상태가 장기화할수록 다시 돌아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주식시장의 조정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후퇴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이 조정받는 사이, 정치 테마주 투기 움직임으로 개인의 매수세가 뒷받침된 것도 주식시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긴급하게 금융안정화 조치로 대응해서 그 여파가 덜했을 뿐이지, 한국 주식시장은 출렁였다. 한국은행이 파국을 막기 위해 진행한 비정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규모가 하루 10조원을 넘어섰고, 금융위원회의 증시안정펀드, 채권시장안정펀드 등으로 유동성을 퍼부었다. 혼돈의 정치가 장기화할 경우, 더 큰 규모의 유동성이 투입될 것이다. 쓰지 않아도 될 유동성이 쓰였다는 면에서도 탄식할 일이지만, 유동성을 퍼부어도 금융시장이 불안정할 경우 대응 수단마저 사라지게 되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질까 두렵기도 하다. 바닥에 떨어진 국가 신인도, 신용등급 강등될까? 한강의 기적을 일궈온 경제적·정치적 국가의 위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세계 모든 국가의 주요 언론 1면에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가 다뤄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윤 대통령, 야당과 거의 지속적으로 정치적인 대치 상태”라고 보도했다. 군사·안보 동맹국인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사전에) 보고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영국 외무부 등 세계 주요국들이 한국 여행 경보를 발령했고, 주한 대사관들은 자국민 보호조치를 내렸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만한 일인가?’ 하며, 세계 70억 인구가 놀랐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국민의 것이 되었다. 국가 신용등급 강등될까? S&P와 무디스는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현재로서는 실질적 영향이 없다고 평가했으나, 정치 불안이 장기화한다면 신용도에 부정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무산됨에 따라, 비상계엄 사태의 법적·정치적 책임을 묻고, 제2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표결하는 등 향후 정치적 불안이 쟁점이 될 것이다.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될 경우,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이 투자 적격한 국가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한국 유가증권시장으로부터 자금의 이탈이 더 크게 일어나고, 원화 가치는 더 급락할 수 있다. 사상 초유의 예산안 지연 국회가 멈춰 섰다. 수많은 국회의 기능들이 있다면, 탄핵정국하에 다른 사안을 논의할 수 없는 시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할까? 2025년 예산안 국회 심의마저 지연될 수밖에 없다. 헌법 제54조 제2항에 따르면,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즉 12월 2일까지 예산안 심의·확정 및 이송해야 한다. 매년 예산안 국회 심의가 지연되었다고 하지만, 올해는 특히 심각한 지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예산 확정이 지연되면, 중앙관서별 예산의 배정과 집행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물론, 연말까지 예산이 확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려할 만한 초유의 사태에 놓이지는 않는다. 준예산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즉, 예산이 성립되지 못할 경우, 정부 기능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전년도 예산에 준하여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경기부양책이나, 2025년 트럼프 2.0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공급망 및 통상정책 등과 같은 2025년 새롭게 추진을 계획했던 사업이나 긴급 정책과제들을 착수하지 못할 수 있다. 예산 심의 지연을 떠나서도, 고위공직자들의 공백과 정치적 혼란은 대내외 리스크에 상시 대응 능력이 약화할 우려가 있다. 심각한 경기침체를 마주한 한국 문제는 한국 경제의 체력이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비상계엄 사태 이전부터 이미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2025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해 왔다. 한국은행도 11월 말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2%에서 1.9%로 하향조정했다. 이후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정국이 가져올 실물경제적 영향을 반영하여, 세계 주요 투자은행(IB, Investment Bank)들은 속속 2025년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2024년 12월 이후 세계 어느 기관도 2025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2% 이상으로 전망하지 않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1주일도 안 된 상태이며, 탄핵정국이 장기화할수록 추가 조정이 불가피하다. 해외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길 것이고, 정부와 기업들의 연말·연초 축제성 행사가 줄줄이 취소될 전망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거리에 징글벨 소리가 덜 울릴 것이고, 트리 장식과 불빛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연말 특수를 노리고, 바겐세일 이벤트를 준비했던 유통사들은 조용한 연말을 준비하게 된다. 국내외 투자자금을 유치해 왔던 투자운용사들은 국내 유망 기업에 투자할 기회를 피력해 왔지만,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어려워진다. 가계의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기업의 투자심리도 위축된다. 혼돈의 경제, 시스템적 대응 혼돈의 정치가 혼돈의 경제를 불러온다. 정치적 리스크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정치 공백과 정책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치가 흔들릴지라도, 가계-기업-정부 3대 경제주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시스템적으로 경제가 운용될 수 있도록 각 조직과 부문의 리더들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거대한 물음표가 놓였다. 정국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물음표를 경제학에서는 불확실성이라 한다.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불확실성이다. 외환시장이나 주식시장에서 변동성이 심화할 수 있다. 채권시장이 불안해지면,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실물경제에도 상당한 부담을 줄 것이다. 금융·통화정책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주요 기축통화국들과 통화 스와프를 마련하거나, 유동성 공급책을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외환 및 금융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운용되고, 관리되고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노력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대외적으로 몰아닥치고 있는 소용돌이를 우회하는 노력도 뒤로 미룰 수 없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 HBM 반도체를 공급하지 말 것을 선언한 상태고, 2025년 트럼프 행정부는 더 강한 무역전쟁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으로부터 경제보복이 단행될 수 있다. 반도체를 제공하지 않는 나라에, 요소 공급 차단에만 머무를까? 반도체, 자동차, IT기기 등에 들어가는 리튬, 니켈, 게르마늄 등 핵심 소재들을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공급망 안정화를 꾀하고, 사전에 대응 전략들을 강구해 놓아야 한다. 정치가 흔들려도 경제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시스템적 대응이 필요하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 산업환경 : 산업 생태계 변혁 셋째, 탈탄소화와 에너지 전환의 시계가 되감길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했던 첫 번째 일이 파리 기후협약 탈퇴였고, 바이든이 취임하자마자 했던 첫 번째 일이 파리 기후협약 재가입이었다. 그만큼 ‘기후’라는 영역에서 바이든과 트럼프는 관점과 철학이 다르다. 이는 산업 생태계에도 그대로 묻어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는 탄소중립을 의제로 선언하고, 동맹국들을 기후변화 대응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2020년대 기업들의 경영철학은 ESG가 되었고, 주력산업은 풍력, 태양광 등과 같은 재생에너지와 전기차와 이차전지 산업이었다. 산업 전반에 걸쳐 탄소 저감 노력이 집중되었고, 화석 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대전환이 이루어졌던 시기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되면, 저탄소·온실가스 감축을 목적으로 한 녹색산업이 사양산업으로 저물게 될 것이다. 셰일가스 개발과 석유화학발전을 장려하고, 미국을 원유 및 석유화학제품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하고자 구상하고 있다. 이미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구상도 아니다.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몇몇 산업들이 기회를 얻게 될 수 있다. 전쟁이 종식된다면, 장기간 치러져 왔던 전쟁지역을 중심으로 재건 사업이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몇몇 건자재, 인프라, 건설업들에 기회로 작용될 수 있다. IRA와 칩스법을 재조정하면서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반도체와 배터리 등의 영역에서도 단기적 기회가 있을 수 있다. 변혁에 대한 대응 준비하지 않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과 같다. 트럼프 2.0 시대는 변혁 그 자체다. 거대한 변화가 몰려온다. 트럼프 2.0 시나리오가 위에 기술된 그대로 전개될 거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사회과학적 현상이 수학처럼 딱 떨어지게 결과가 도출될 리 없다. 그러나 예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나리오들을 구상해 놓고, 플랜 A, 플랜 B를 마련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정부, 기업, 가계는 각자의 위치에서 변혁에 대응해야 한다. 정부는 단기적으로 유연한 대응과 장기적으로 구조적 대응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관세전쟁의 압력과 그 파장에 대응하기 위한 고민을 선제적으로 해야 한다. 한·미 FTA 재협상도 피해 가지 못할 수 있다. 한국이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과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을 추산하는 아픈 계산을 사전에 해봐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에 대해 전적으로 수출을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상이 필요하다. 5~7%로 성장하는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 같은 주요국들과 교역을 확대함으로써 교역구조를 분산시킬 수 있다. 기업들은 미국의 정책 기조와 산업의 변혁에 대응해야 한다. 바이든식 IRA와 칩스법에 맞추어 제조기지를 미국에 이동시켜왔던 행보에도 차질이 일 수 있다. 관세 혹은 비관세장벽을 활용한 통상정책이 어떻게 변화할지, 에너지 및 환경정책 등의 변화를 모니터링하는 기능은 특히 중요할 것이다. 미·중 간의 무역 긴장감이 고조되는 국면에서 새우등 터지지 않는 방법은 신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늘려나가는 일이다. 정부의 교역구조 재편 정책을 활용해 기업들이 신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한편, 관세전쟁이 본격화할 것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효율화, 기술 고도화, 현지 생산 등 관세장벽을 이겨낼 수 있는 돌파구들을 마련해야 한다. 가계도 실물경제의 변화와 자산시장의 움직임을 포착해야 한다. 통화정책의 기조는 자산시장의 운명을 갈라놓는다. 비트코인의 제도권 진입과 산업의 흥망성쇠는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트럼프 2.0 시대의 변혁은 시가총액 상위기업의 순위를 바꾸어 놓을 것이고, 부의 흐름을 송두리째 뒤집을 것이다. ‘준비된 나’가 되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 영원한 것은 없는가 보다. 유럽이 가난해지고 있다. 세계 제패의 꿈을 꾸었던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통용되었던 이탈리아도,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건설한 대영제국이었던 영국도 세계 경제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세계 자동차 산업을 장악하고 제조업을 호령했던 독일도 이제 흔들리고 있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유럽 유로존(Euro Zone)이 2023~2024년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경험하고 있다. 2년 연속 제로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을 대표하는 독일 경제의 부진은 더 심각하다. 독일은 2023년에도 –0.3%로 역성장했고, 2024년에도 0.0%로 매우 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을 채 마무리하지 않은 상황인데, 자칫 안 좋게 흘러가면 독일 경제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하게 되는 꼴이다. 엄청난 오명이 아닐 수 없다. 일시적인 상처가 아니라 만성질환 같은 고질병이 되었다. 유럽 경제가 좋지 않은 것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고 구조적 과제가 되었다. 장기적으로도 유럽이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IMF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2029년까지 각각 0.74%, 0.70%에 수렴할 것으로 전망한다. 프랑스나 영국과 같은 유럽 주요국들도 2029년 약 1.3% 경제성장률에 수렴할 것으로 보인다. 저성장 고착화라는 험난한 여정에 진입한 것이다. ‘생활비 위기’에 직면한 유럽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41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이 세계 경제에 충격을 주었을 때 가장 취약했던 지역도 유럽이었다. 당시 러시아에 대해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천연가스 등 자원의존도가 높았던 유럽은 유독 극도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았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주요국들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를 웃돌았다. 예를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정점이 2022년 10월 이탈리아 11.8%, 영국 11.1%, 유로존 10.6%를 기록했다. 2022년 6월 주요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정점이 미국 9.1%, 캐나다 8.1%, 한국 6.3%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 더 심각했다. 고물가는 국민을 가난으로 몰았다. 물가 상승률보다 임금 상승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즉, 실질임금이 감소해 서민의 삶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전 상황인 2019년 4분기 당시 실질임금을 100이라고 했을 때 유로존은 2024년 2분기까지도 99.4 수준에 달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못 돌아가고 있다. 유럽 주요 강대국인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는 더 심각한 수준의 실질임금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필수적 지출 항목의 물가 상승은 서민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겨울철 가스비를 절약하기 위해 추위에 떨어야 하며, 치솟는 식료품 가격에 먹고 싶은 것을 외면해야 했다. 극심한 에너지 위기(Energy Crisis)와 생활비 위기(Cost-of-Living Crisis)를 겪으면서 민생경제가 피폐해졌다. 특히 식료품 가격 상승률은 임금 상승률을 크게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4분기~2024년 2분기 동안 임금 상승률 대비 식료품 가격 상승률이 독일 16.4%포인트, 스페인 13.9%포인트, 이탈리아 13.4%포인트, 프랑스 11.7%포인트, 영국 8.9%포인트 등으로 나타나 서민의 생활비 부담이 크게 가중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최근 물가 상승률이 2% 수준으로 떨어지고는 있지만 물가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치솟은 물건 가격에서 또 2%가 오르고 있는 것이니 물가 부담은 해소되었다고 할 수 없다. 서둘러 금리 인하 단행하는 유럽 2024년 하반기 세계는 피벗의 시대에 진입했다. 피벗(Pivot)은 ‘방향 전환’을 뜻하는 용어다.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로 전환(혹은 그 반대)하는 것을 피벗이라고 한다. 필자는 저서 '피벗의 시대 2025년 경제전망'을 통해 2025년까지 세계 주요국들의 피벗 행보가 진전될 것으로 전망했다. 사실 피벗을 가장 서둘렀던 것도 유럽이다. 미국이 9월에, 한국이 10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지만 스위스는 3월을 시작으로 이미 세 차례, 스웨덴은 5월을 시작으로 이미 세 차례, 유로존도 6월을 시작으로 이미 세 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영국도 8월에 첫 번째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으니 미국보다 피벗이 빨랐다. 유럽이 서둘러 금리 인하를 단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금리를 부담할 만큼 경제가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가 안정을 위해 고금리를 도입했고, 물가 상승률은 목표 수준 2%에 가까워졌지만 고금리의 역습으로 경제성장률이 2% 밑으로 내려갔다. 인플레이션에 취약했던 유럽이 이제 경기 침체와 실업에 취약해진 것이다.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2024년 10월 연차총회에서 세계 경제가 '저성장 고착화(another period of not-good-enough)'에 놓였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유럽 주요국 경제가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될 법하다. 유럽 경제가 부실해졌음을 자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고용이다. 그 나라에 실업자가 얼마나 늘었는지도 중요하고, 신규 일자리가 얼마나 늘었는지도 중요하다. 따라서 ‘실업자 1명당 빈 일자리 개수’를 확인해 보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즉 실업자가 많아도 취업할 일자리가 그 이상으로 많다면 큰 문제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의 3대 주요국 고용이 불안해지고 있다. ‘실업자 1명당 빈 일자리 개수’가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기준선(1개)을 크게 밑돌고 있고, 견실하던 독일마저 2022년 2분기 1.43개에서 2024년 2분기 0.91개로 급감했다. 최근 전기차 캐즘과 폭스바겐 사태 등은 고용시장을 더욱 강하게 냉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흔들리는 유럽에서 찾는 교훈 첫째, 에너지 안보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유럽이 인플레이션에 유독 취약했던 배경 중 하나는 에너지 수급 구조다. EU(유럽연합) 가맹국 25.7%의 원유와 38.7%의 천연가스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었다(2020년 기준). 독일은 65.2%, 이탈리아는 43.3%의 천연가스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었다. 2022년 당시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는 러시아에도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겠지만 서방 국가들에도 치명적이었다. 한국의 에너지 수급 구조를 돌아보고, 각종 자원이 특정 국가에 편중되게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구축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더욱이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세계 각국은 보호무역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로서는 에너지 안보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둘째, 지각변동에 대응해야 한다. 신흥 강국이 부상하는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글로벌 노스(Global North) 시대에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시대로 재편되고 있다. 북반구의 주요 유럽 강국들이 세계를 이끌던 시대가 차츰 지나가고, 남반구의 신흥국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일어나는 듯하다. 특히 미래 산업에 요구되는 자원을 무기 삼아 글로벌 공급망을 자국으로 끌어오고 제조기지를 구축하는 행보가 전개되고 있다. 한국은 미국, 중국, 유럽에 의존하는 수출구조를 점검하고, 부상하는 주요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신시장을 개척하는 노력 등을 통해 수출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 셋째,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유럽이 흔들리게 된 배경에는 신유망 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뒤처져서다. 조선, 철강, 가전, 휴대폰, 자동차 등 전 산업에 있어서 세계를 호령하던 국가들이 한때 유럽이었다. 그러나 미국, 일본, 한국, 중국 등에 기술 추격을 당하고, 세계 시장을 점차 빼앗기게 되면서 유럽이 ‘저성장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유럽이 아직도 자동차 강국이다. 그러나 전기차 강국이 아니다. 배터리 강국이 아니다. 자율주행차 강국이 아니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 항복점(Yielding Point)’ 나뭇가지는 힘을 받으면 구부러지는데 힘을 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특정 수준 이상의 힘을 가하면 나뭇가지는 부러진다. 그런 특정 수준 이상의 힘이 가해지는 지점을 항복점(Yielding Point)이라고 한다. 세계 경제에 특정 수준 이상의 힘이 가해졌다. 2020년 코로나19라는 충격과 극단적 완화적 통화정책이 경제에 가해졌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고,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았다. 2024년 상반기까지 세계 주요국들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강도 높은 고금리를 도입했고, 세계 경제는 고금리의 강한 하방 압력을 받게 되었다. 경제에 변형이 생겼다. 필자가 발간한 <피벗의 시대 2025년 경제전망>에서 2025년 경제를 항복점(Yielding Point)이라고 명명한 이유다.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복귀하지 못하고, 변형된 형태의 경제하에 놓였다. 세계 경제는 과거와 같은 고성장을 못하고 저성장 체제에 놓였다. 물가 상승률은 점차 2%대로 내려가지만 여전히 물가 그 자체는 높게 오른 채 더 오르기만 한다. 고금리에서 점차 계단을 내려가는 피벗의 시대이긴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보다 높은 수준의 금리가 운용된다. 2025년 한국 경제에 변수로 작용할 하방 압력은 지정학적 리스크다. 지정학적 불안과 긴장감은 한국의 대외거래에도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기업의 투자심리와 가계의 소비심리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준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과 같은 지정학적 불안의 정도에 따라 경제 여건이 달라질 것이고,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중 패권전쟁이 격해질 수도 있다. 2025년 한국 경제 전망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전제로 하겠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 고조될 것인지, 지금과 같은 수준에서 유지될 것인지, 아니면 완화 혹은 해소될 것인지에 따라 다른 흐름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시나리오1은 가장 낙관적인 전제를 담은 전망이다. 한국 경제는 대외 변수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때 2.4% 수준의 의미 있는 경제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2024년 전개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이 종식되고, 미·중 패권전쟁도 다소 완화되는 양상으로 가정한다. 미·중 패권전쟁의 소재는 매우 장기적인 경제적 변수이겠지만 그 정도가 격화되거나 다소 완화되는 국면이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피벗의 시대, 세계 각국은 점차 정책금리를 인하하면서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회복되고 상당한 수준의 고용 창출로 이어진다. 글로벌 교역량이 상당한 수준으로 증가하고, 한국은 수출뿐만 아니라 내수 경기도 어느 정도의 회복세를 진전시키면서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수준의 회복 국면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2.4% 경제성장률은 기저효과가 반영된 것으로 ‘숫자적 의미’를 찾기는 힘들지만 2025년 2.4% 성장률은 2020년 팬데믹 이후 큰 의미가 있는 수준의 회복이라고 평가한다. 둘째, 중립적인 전제를 담은 시나리오2를 가정했을 때 한국 경제는 1.9%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은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의 고리에 던져져 있는 듯하다. 고조된 2024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격화하지도 완화하지도 않은 채 2025년까지도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제다. 세계 주요국들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경기 부양책을 도입하는 과정에서도 지정학적 불안이 기업들의 신규 투자를 제약하고, 뚜렷한 경기 선순환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주요국들은 보호무역 조치를 강화하고, 높아진 무역장벽에 막혀 한국 수출도 견조한 흐름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24년 한국 경제는 수출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의 경기 회복세가 나타났겠지만 2025년에는 내수와 외수 동반 부진의 모습이 나타날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셋째, 시나리오3은 가장 비관적 상황을 가정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 고조된다면 2025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1.6%로 매우 어려운 국면을 만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이 2025년 더 확전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가정했다. 더욱이 트럼프가 당선되어 공약으로 내걸었던 중국에 대한 강한 견제와 10%의 보편적 기본관세를 도입한다면 극단적 보호무역주의 시대로 빠르게 흘러가게 될 것이다. 글로벌 교역 환경은 악화되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더욱 취약하게 흔들릴 수 있다. 세계 주요국들이 기준금리를 적극적으로 인하한다고 하더라도,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얼어붙게 되고 내수와 외수 경제가 동반 침체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 2025년 항복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어제의 숙제와 오늘의 숙제는 다르다. 어제의 공식과 오늘의 공식은 달라져야 한다. 2020~2024년 세계 경제에 우당탕탕한 일들이 가득했고, 그 결과 2025년은 2020년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는 전혀 다른 경제 환경에 놓이게 된다. 적당한 힘을 준 후 힘을 빼면 막대기가 구부러졌다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지만 그 이상의 힘을 주면 부러져서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2022~2024년 긴축의 시대에서 2025년 피벗의 시대로 변화한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강도 높은 고금리 시대에서 적정금리를 향해 점진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시대로의 전환이다. 한편 세계 경제는 2020년 이전 수준의 중성장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저성장으로 고착화될 전망이다. 글로벌 경제는 파편화된 경제 체제로 바뀌고, 자유무역의 세계 교역체제는 극단적 보호무역주의로 변화하는 양상이다. 2024년까지 대응 전략과 2025년의 그것은 달라져야만 한다. 정부는 가계와 기업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그 성과를 온전히 맛볼 수 있도록 안전한 경제환경을 조성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피벗의 시대에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외환 건전성을 확보하고, 금융 불안을 해소함으로써 가계와 기업이 흔들림 없이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의 고리에 갇힌다고 한국 경제가 함께해서는 안 된다. 한국 경제가 함께해야 하는 것은 끊임없이 뻗어 나가는 신흥국들과의 경제 교류다. 2023~2024년 견조했던 미국 경제가 2025년 성장 둔화를 겪을 것이고, 중국은 구조적으로 고성장을 멈춘 것으로 전망되는데, 미국과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의 수출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어도 될까? 한국의 수출구조에 의문을 제기해야 할 때다. 부상하는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신시장을 개척하고, 수출구조를 개편해 나가야 한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 고착화에 진입한다고 해도 모든 산업이 저무는 것이 아니다. 지는 산업이 있고, 뜨는 산업이 있다. 사라지는 산업이 있고, 생겨나는 산업이 있다. 사양산업에서 유망산업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OECD는 “ICT 산업 성장세가 전체 경제 성장세를 능가한다(ICT sector growth outpaces the total economy)”라고 강조했다. 특히 향후 ICT 산업을 대표할 AI와 반도체 등 산업을 중심으로 R&D 투자를 집중하고, 핵심 인재를 양성하며, 적극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민간기업의 신산업 진출을 유도하고, 그것을 통해 선순환하는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 통화정책 당국인 한국은행은 스스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 독립성이라는 중앙은행의 고유한 권한과 의무에 집중해야 한다. 정치와 권력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물가 안정-경기 안정-금융 안정이라는 3대 목표가 흔들리지 않도록 최적의 통화정책 기조 전환을 단행해야 한다.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과정에서 외환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외환 건전성을 강화하는 조치를 마련해야만 한다. 재정정책 당국인 정부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경제정책 기조를 걸맞게 반영해야 한다. 피벗의 시대에 통화정책 전환 과정에서 부작용들이 나타날 수 있다. 주식시장이 단기적으로 급격한 조정을 받는다거나, 외환시장에서 환율 변동성이 커진다거나, 부동산 시장이 과열될 수 있다. 가계부채가 과도한 속도로 누증되거나, 연체율이 심각하게 올라간다거나 하는 다양한 부작용들을 사전에 혹은 빨리 진화하는 것이 재정정책 및 금융정책에 있어 매우 중대한 과제가 될 것이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 모니터링을 강화하라 금융당국은 금융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세계 증시가 불안할 때, 한국 증시가 유독 강하게 흔들리는 시스템적 요인을 찾아 개선을 시도해야 한다. 자본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국민 대부분이 손실이 일어나지 않도록, 금융불안정성에 대한 지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 모니터링이다. 재정당국은 실물경제 충격으로의 전이를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엔 캐리 청산이 일어나 자본시장의 조정이 있고 나면,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가계의 소비심리가 냉각될 수 있고, 자기자본이 감소한 기업들은 투자 의지가 수축될 염려가 있다. 자본시장 불안정성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일을 막도록 해야 한다. 가계와 기업도 엔 캐리 청산의 시그널을 모니터링 해야 한다. 엔 매도 포지션에서 매수 포지션으로 변화하는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예의주시 해야 한다. 일본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점화하는지, 미국 등의 주요국들이 기준금리를 추가적으로 인하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특히, 미국이 예고하지 않는 빅 컷(Big Cut)의 금리인하를 단행할 때 엔 캐리 청산이 강하게 일어날 수 있다. 엔 캐리 청산의 시그널로서 엔-달러 환율도 중요하다. 엔화 가치가 급격히 상승할 경우 엔 캐리 청산이 일어날 수 있다. 모니터링을 강화함으로써, 자본시장의 조정 가능성을 사전에 진단하여 위험을 회피하거나, 자본시장 조정의 성격을 진단하고 대응한다면 오히려 기회로 삼을 수도 있겠다. 증권가에서 그토록 기다려왔던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되는 ’피벗의 시대‘. ’엔 캐리 청산‘이라는 피벗의 역습이 찾아올까 공포감이 형성되어 있다. 미국 연준으로서는 엔 캐리 청산이 두려워 금리인하를 지연시키는 것도 아닌 만큼, 피벗의 시대에는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더욱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 2025년 주요국별 전망 세계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게 될 전망이다. 그 주된 배경에는 선진국 경기가 시들해져서다. 주요국별로 살펴보자. 미국은 2024년 하반기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점차 경기가 둔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잠재성장률 수준에서 크게 밑돌지 않는 이른바 소프트랜딩(soft lending·연착륙)에 비유될 만하다. 통화정책 관점에서는 중립금리를 향해 점진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하겠지만 그 효과는 후행적으로 나타날 것이고, 고금리 여파가 선행적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정정책 관점에서는 리쇼어링을 비롯한 미국 우선주의적 정책 드라이브로 해외직접투자와 외국인의 간접투자가 지속해서 유입되어 경기 선순환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한다. 유로 지역(Euro Zone)은 2023~2024년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경험했다. 2년 연속 제로 성장을 기록한 유로존은 2025년 들어 점차 회복될 것으로 전망한다. 2023~2024년의 극한 부진에서만 벗어날 뿐 견조한 성장세에 진입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을 대표하는 독일 경제가 대표적인 예다. 2023년 -0.2%로 역성장한 독일은 2024년에도 0.2%로 매우 부진했다. 2025년 들어 1.3%로 반등하는 흐름이다. 2022년 러시아에 대해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자원 의존도가 높던 유럽은 10%를 초과하는 초인플레이션을 겪게 되었다. 극심한 에너지 위기(Energy Crisis)와 생활비 위기(Cost-of-Living Crisis)를 겪으면서 민생경제가 피폐해졌고, 물가 안정을 위해 도입한 고금리의 부담이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2025년 들어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고 점진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 점차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2022~2023년 상대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높지 않았고, 오히려 글로벌 인플레이션 덕분에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얻어걸린’ 모습이었다. 따라서 일본은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작았다고 평가된다. 최근 일본의 물가가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경기 부양에만 집중하면서 통화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24년 3월 일본 중앙은행(BOJ·Bank of Japan)은 정책금리를 인상했다. 2007년 이후 17년 만에 금리 인상이다. 또 8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마치게 된 것이다. 최근 8년 동안 -0.1%의 정책금리를 운용해 왔으나 2024년 3월 0%로 어렵게 인상한 것이다. 일본의 금리 인상은 금리 정상화로 규명된다. 목표대로라면 0.2~0.3% 수준으로 정책금리로 올려놓고 싶지만 경기 둔화와 디플레이션 재진입 우려로 쉬운 여건이 아니다. 일본 경제는 2023년에 일시적으로 성장세를 보이는 듯했으나 2024년 0.7%, 2025년 1.0% 수준으로 다시 저성장의 고리에 놓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구조적으로 중성장화가 전개되고 있다. 과거 10%대 고성장기를 지나 5%대 중성장기에 진입했고, 장기적으로 3%대를 향해 점차 성장이 둔화하는 국면인 것이다. 인구 감소와 미·중 패권 전쟁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한 중국은 당분간 강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 더욱이 2023~2024년 심각한 부동산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부동산개발업체들의 부실이 확산했고, 부동산 관련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중국 경제는 하방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편 신흥개도국들은 지속적인 성장 흐름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신흥개도국 권역의 경제성장률은 2024년과 2025년 모두 4.3%대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구조적으로 성장이 둔화하고 있는 중국과 전쟁 및 경제위기 상황에 놓인 신흥국들을 제외하고 보면 주요 신흥국 경제성장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중국을 대체할 아시아 신흥국들은 반사이익을 볼 전망이다. 중국을 빠져나오는 중국 기업들이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국가에 새 둥지를 트는 모습이다. 인도는 2025년에도 6.5%의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아세안 국가들도 탄탄한 성장세를 지속할 전망이다. 2025년 한국 경제 대응 전략 세계 경제가 저성장의 고리에 갇힌다고 한국 경제가 함께해서는 안 된다. 한국 경제가 함께해야 하는 것은 끊임없이 뻗어 나가는 신흥국들과의 경제 교류다. 2023~2024년 견조했던 미국 경제가 2025년 성장 둔화를 겪을 것이고, 중국은 구조적으로 고성장을 멈춘 것으로 전망되는데, 미국과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의 수출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어도 될까? 한국의 수출구조에 의문을 제기해야 할 때다. 부상하는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신시장을 개척하고, 수출구조를 개편해 나가야 한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 고착화에 진입한다고 해도 모든 산업이 저무는 것이 아니다. 지는 산업이 있고, 뜨는 산업이 있다. 사라지는 산업이 있고, 생겨나는 산업이 있다. 사양산업에서 유망산업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OECD는 “ICT 산업 성장세가 전체 경제 성장세를 능가한다(ICT sector growth outpaces the total economy)”고 강조했다. 특히 향후 ICT 산업을 대표할 AI와 반도체 산업 등을 중심으로 R&D 투자를 집중하고, 핵심 인재를 양성하며, 적극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민간기업의 신산업 진출을 유도하고, 그것을 통해 선순환하는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 경기는 안 좋은데, 고용시장이 좋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말처럼 들린다. 경제 상황을 명확히 설명해주는 것이 고용상황이고,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실업률과 고용률이다.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는 정말 팍팍하기만 한데, 고용률과 실업률 지표는 역대 최고 수준에 달한다. 골디락스의 고용지표 고용률은 2023년 62.6%에 달해, 고용률 통계를 공식 집계한 1965년 이래로 가장 높은 최고점이다. 더욱이, 한국은행은 2024년과 2025년 고용률 전망치를 각각 62.8%, 63.0%로 제시했고, 이러한 견조한 고용시장의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실업률도 2023년 2.7%를 기록해, 역사상 최고의 고용 수준임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실업자 통계를 추계할 때 ‘지난 1주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였는지’를 확인하는데, 2014년부터 국제기준에 맞게 실업자의 정의를 ‘지난 4주간’으로 변경했다. 더욱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 실업률 통계를 계산했기 때문에, 통상 0.2~0.4%p 실업률이 높게 나타난다. 2.7%의 실업률은 ‘지난 4주간’인 국제기준으로 변경하여 통계를 집계한 이래로 가장 낮으며, 3.0%를 밑돈 것도 2022년~현재까지 처음 있는 일이다. 국제기준으로 변경하기 전 단계의 실업률을 기준으로 했을 때도, 2.7%를 밑돌았던 적은 1988~1997년 폭발적으로 경제가 성장했던 당시의 10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없다. 한국은행은 2024년과 2025년 실업률을 모두 2.9%로 전망하고 있고, 고용시장은 당분간 탄탄하게 전개될 것으로 판단된다. 고용지표, 체감경기와 다른 이유 체감경기는 분명 안 좋은데, 왜 고용시장은 최고일까? 체감경기가 좋지 않을 뿐이고 실물경제는 좋다고 하더라도, 분명 지금 경제가 최고의 고용지표를 보일 만큼 최고의 경제상황은 아니다. 그 이유를 진단해 보고, 이러한 괴리 현상에 어떤 대응이 필요할지를 모색해 보자. 첫째, 삶이 팍팍해서다. 실업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즉, ‘자발적 실업’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자발적 실업(voluntary unemployment)은 일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현재의 임금수준에서 일할 의사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고물가 장기화로 물가는 턱없이 높고, 고금리 장기화로 이자 상환 부담마저 가중되고 있다. 이른바 생활비 위기(Cost of Living Crisis)다. 명목소득, 즉 통장에 찍히는 소득은 꾸준히 증가하고는 있지만, 실질소득, 즉 물가상승분을 반영한 소득은 감소하고 있다. 실질 기준의 평균 가처분소득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직전인 2022년 2분기 367만원에서 2024년 1분기 356만원으로 감소했다. 물가상승속도가 소득증가속도보다 빠르고, 높은 이자에 허덕이다 보니, 삶이 팍팍할 수밖에.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원하지 않는 일자리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한다. 둘째, 임시근로자가 늘어서다. 실업을 선택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일자리라도 선택하게 된다. 실제 2020년 팬데믹으로 고용 충격이 발생한 이후, 임시근로자가 추세적으로 늘어났고, 2024년 5월 493만명에 달한다. 임시근로자 규모로는 2019년 5월 이래 가장 많은 수준이다. 약 2200만명의 임금근로자 중에서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지 못한 임시근로자 비중도 2023년 21.2%에서 2024년 5월 22.1%로 상승했다. 고용이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후퇴한 것이다. 셋째, 정부의 노인일자리 사업도 한몫했다. 2023년 1월 고용노동부는 「제4차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65세 이상의 고령층이 오래 일할 수 있는 노동여건을 조성하거나, 재취업 지원을 확대하는 등의 정책들이 골자다. 특히, 노인일자리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주요한 내용인데, 2024년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노인지원과에서 계획한 노인일자리가 103만개에 달하고, 이는 2023년보다 약 14.7만개 증가한 규모다. 취약계층 지원이나 공공시설 봉사와 같은 공익활동형이 있고, 지역사회 돌봄이나 안전관련 사회서비스형 등이 있다. 고령층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일하는’ 고령층 인구도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고령층 취업자는 2014년 195.4만명에서 2020년 277.4만명, 2024년 5월 396.6만명으로 꾸준히 늘어왔다. 코로나19가 유행했던 2020~2021년 당시에도 고령층 취업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노인일자리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노인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복지사업이고,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한국이 절대적으로 추진해야 할 중요한 사업이다. 다만, 노인일자리가 늘어 총 취업자가 늘어나는 현상을 가리켜, 고용시장이 호조를 보인다고 평가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노인일자리는 예산을 활용해 인위적으로 공급하는 일자리이고, 예산이 줄거나 정책의 방향이 바뀌면 자연적으로 사라질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넷째, 통계상 실업자로 정의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업자는 15세 이상 인구 중 (1)조사대상기간에 수입이 있는 일을 하지 않았고 (2)지난 4주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였으며 (3)조사대상기간에 일이 주어지면 즉시 취업이 가능한 사람을 말한다. 반대로 통계상 취업자로 분류되기는 매우 쉽다. 취업자는 조사대상기간(1주간) 중 수입을 목적으로 1시간 이상 일을 한 사람을 말한다. 즉, 일주일에 2시간 봉사활동에 참여해 월 27만원의 수입이 발생하는 고령자도 취업자고, 1시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도 취업자다. 물론, 실업자 및 취업자 통계는 표준화된 국제기준에 맞기 때문에 정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질적으로는 떨어지고 있는데, 양적으로만 늘어나고 있는 노동시장의 모습을 가리켜 고용호조라고 평가해서는 안 됨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2025년 고용전망과 노동시장의 질적 향상 전략 2025년에도 지지부진한 경기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통계적으로’ 양호한 고용시장의 모습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63%의 고용률과 3% 미만의 실업률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즉 ‘경기불황 속 고용호조’와 같은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양적으로만 개선된 노동시장을 놓고 안주하거나 호평해서는 안 된다. 고용의 양적 증가뿐만 아니라, 질적 성장을 위한 다음과 같은 정책적 고민이 집중되어야 할 때다. 첫째, 변화하는 경제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고용지표를 개발해야 한다. 통계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함인데,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지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체감할 수 있는 고용지표가 필요하다. 인구구조 변화, 고용 및 복지 정책 변화, 산업구조 변화, 노동구조 변화 등으로 인해 실업률 지표로 과거와 고용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따라서 달라진 환경하에서의 고용상황을 가장 현실적으로 반영하는 보조지표와 질적 고용지표를 고안하고, 이를 통해 현실 고용상황의 문제점을 포착해야 한다. 현실문제를 포착하는 지표가 바로 설 때, 이를 개선하기 위한 고용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둘째,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고용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인구구조의 3대 변화는 저출산, 고령화, 인구감소로 요약될 수 있다. 늘어나는 고령자를 위한 노인일자리를 마련하는 정책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논평은 노인일자리 마련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일자리를 통해 일자리가 늘어나는 현상을 두고 고용시장이 탄탄하다고 평가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이다. 고령화 외에도 저출산과 인구감소에 대응하는 고용정책도 집중되어야 한다. 여성이 일과 가정을 병립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시간 선택제 일자리와 비대면 출근제의 활용 등과 같이 시간과 장소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근로조건을 마련하는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여성들에게 출산할 수 있는 환경과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셋째, 고용정책의 방향성을 양적 증가가 아니라, 노동의 질적 개선에 두어야 한다.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가 되는데, 한시적으로도 예산을 들여 취업자를 양산할 수 있는데, 고용의 양적 증가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예산으로 만든 일자리는 한시적일 수 있다. 예산을 투입하면 일자리가 생기고, 취업자가 생긴다. 예산을 줄이면 일자리가 줄고, 예산을 철회하면 취업자가 줄어든다. 정책적 일자리는 지속가능 하지 않다. 노인일자리도 보건복지부가 수행하는 복지정책이지, 고용정책이 아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청년들이 원하는, 경력이 되는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임시·일용근로자가 아니라 상용근로자가 증가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선순환 일자리’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고용정책은 고용에 있지 않다. 투자에 있다. 고용은 투자의 함수다. 즉, 기업이 신사업을 진출하고, 생산 설비를 늘리는 등 투자를 단행할 때 신규 일자리가 양산되는 것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늘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고용정책의 핵심이어야 한다. 투자에 기반한 양질의 일자리가 주를 이루어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는 소득의 원천이 되고, 이는 다시 소비로 이어져 기업들은 더욱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것이다. 선순환으로 만들어진 일자리가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성장하는 경제가 다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일자리, 양질의 일자리, 선순환 일자리가 필요하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 ‘나홀로 골디락스’ 미국 바람이 불어도 모두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세찬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있다. 바람과 함께 요동치는 나무들도 있고 뿌리째 뽑히는 나무들도 있지만, 흔들림 없이 우뚝 선 나무가 있다. 뿌리 깊은 나무가 있다. 넘실대는 파도에 작은 배들은 요동을 치지만 흔들리지 않는 배가 있다. 항공모함 같은 대형 선박이 있다. 세계가 요동치는 가운데 흔들림 없이 성장세를 이어가는 미국이 있다. 2010~2019년(코로나19 이전) 세계는 약 3.7% 경제성장률 수준에서 성장해 왔다. 2020년 코로나19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경제는 흔들렸고, 과거의 높은 성장세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IMF는 세계경제가 2024년 2.7%에서 2029년 2.5%로 성장률이 점차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주요 선진국 모임으로 일컬어지는 G7 국가들도 2029년까지 2% 성장세를 유지하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할 것으로 전망한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은 그나마 1%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지만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1%도 채 안 된다. 세계경제는 장기적으로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가운데 미국이 ‘나 홀로 성장’을 하는 배경은 무엇이고, 한국은 이런 흐름 속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아야 하겠다. 미국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 첫째, ‘돈의 이동’이다. 주식 및 채권펀드 자금이 미국으로 쏠리고 있다. 미국은 물가 안정을 위해 5.5% 수준의 고금리를 채택했다.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들은 미국만큼 높은 금리를 도입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 정책금리보다 낮은 수준에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예를 들어 달러 인덱스(US Dollar Index)를 구성하는 유로화,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화,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 모두 미국 기준금리보다 낮다. 금리 차에 더해 지정학적 리스크와 위험 회피 성향이 달러 선호 현상을 만들었고, 미국 시장으로 펀드 자금이 쏠리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특히 거시경제 건전성 면에서 유독 취약한 중국과 홍콩 등에서 빠져나온 자금은 미국 시장에 집중되었다. 미국 주식시장의 견조한 흐름뿐만 아니라 실물경제의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자양분으로도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미국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빼놓을 수 없다. IRA(Inflation Reduction Act·인플레이션감축법)가 대표적이다. IRA는 미국 내 생산품에 대해 세액 공제나 보조금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것으로, 자국 산업을 우대하는 보호무역주의 정책이자 중국 등에 있는 제조기지를 미국으로 옮길 것을 유도하는 리쇼어링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IRA 법안 내용 중 기후변화 대응 관련으로 지급하는 전기차 구매 지원금을 미국 내 생산 기업에 한정하게 되어 세계적인 논란이 인 바 있다. 실제 전기차, 이차전지,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걸쳐 다국적 기업들의 미국 현지 공장 증설을 유도해냈다. 이러한 노력은 과거 중국 등 신흥국으로 향했던 글로벌 해외직접투자 유입액을 미국으로 향하게 했고, 다국적 기업들의 엄청난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를 이끌었다. 나아가 수많은 해외 기술인재들을 유입시키고, 미국 기업들과 기술교류를 확대할 수 있었다.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는 고금리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성장세와 완전고용을 지속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셋째, 외국인 인력 유입이다. 미국 경제가 강한 흐름을 보인다는 확실한 근거 중 하나는 고용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4%도 안 되는 낮은 실업률 상태, 즉 완전고용을 지속하는 배경에는 적극적인 이민 정책과 해외 인력 유입을 배제할 수 없다. 기술인재를 비롯한 고급 인력들도 있겠지만 단순 노무직 등과 같은 저부가가치 노동력도 산업 곳곳에 요구된다. 높은 임금과 달러 강세는 해외 노동력을 유인하기 좋은 조건이 될 것이고, 더욱이 외국인 인력이 만족할 만한 교육 등 정주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의 지방 중소기업들이 심각한 인력난에 처해 있는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넷째, 미국이 AI 기술을 선도하고, 전 산업에 걸쳐 범용화하고 있다. 최근 OECD의 한 보고서는 미국 ICT 산업 성장률이 약 9.5%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약 2%에 달하는 미국 경제성장률을 고려해 보면 ICT 산업의 성장 속도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성장이 멈춰 있거나 역성장하는 전통산업들이 있다 하더라도 빅테크 기업이나 플랫폼 기업들이 미국 경제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ICT 산업 중에서도 AI(인공지능)와 AI 반도체 부문의 주요 기업들은 몇십 혹은 몇백 %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AI는 단순 응답 기능을 시작으로 의료, 금융, 제조, 유통, 교통, 농업, 국방, 콘텐츠 등 전 분야에 걸쳐 확대 적용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고, 생산성을 고도화하고 있다. AI 기술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인간 업무 역량을 능가하고 있다. AI가 초기 도입 당시 능력을 지수화했을 때 -100이라고 하고, 인간의 역량 수준에 이르렀을 때를 0이라고 해보자. 1998년 AI가 필기 인식(handwriting recognition)과 음성인식(speech recognition) 영역에서 초기 도입되었고, 당시의 능력을 -100이라고 한다면 이미 2018년 정도에 인간의 역량을 넘어 0을 상회했다. 이미지 인식(image recognition)과 언어이해(language understanding) 영역에서 AI를 도입한 것은 각각 2009년과 2018년인데 급속도로 고도화되어 현재 인간의 역량을 압도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ChatGPT의 수학능력(GRE mathematics test)은 현재 인간의 역량을 훨씬 초월한 60 수준에 달한다. 다섯째, 미국이 원유 수출국이 되었다. 미국은 이미 2020년을 기점으로 원유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되었다. 미국은 하루 약 1008만6248배럴의 원유를 수출하고, 약 851만9112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는 원유 순수출국이다. 이는 세계경제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원유 수출이 부가가치 창출에 이바지하겠지만 외교·안보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OPEC+ 회원국들이 원유 감산 조치 등을 통해 국제 유가가 급등해도 충격이 덜할 수 있고, 에너지 공급 차단과 같은 제재나 공격에도 에너지 안보 면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주요 산유국들과 외교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도 협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세계경제가 저성장으로 고착화할 때 미국은 나 홀로 강한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여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 경제에 주는 함의 미국이 장기적으로 고성장하는 흐름과 그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에 주는 함의를 찾아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 미국 내 고성장하는 주력 산업들의 글로벌 공급망의 궤를 함께해야 하겠다. 대표적인 예가 HBM(고대역폭 메모리)이다. AI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AI 반도체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HBM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AI 서비스-AI 반도체-HBM에 이르는 밸류체인에서 중요한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이 AI 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하고, 전 산업에 걸쳐 AI를 도입하는 움직임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의 특화된 산업을 무기로 AI 글로벌 공급망에서 입지를 다져야 한다. 선도적 기술 확보가 요구된다. 정교한 기술 로드맵을 특정하고, 전략적으로 어떤 섹터의 어떤 기술에 우위를 점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기업, 정부출연연구소, 대학이 기술교류와 융합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산업에 특화된 기술인재를 육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기술적 우위에 있을 때나 미국이 파트너 국가로 인정해 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과실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 전기차가 골짜기에 빠졌다. 이른바 ‘전기차 캐즘(Chasm)’의 시대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은 일시적 후퇴인가, 구조적 쇠퇴인가? 시장을 명확히 진단하고, 어떻게 대응할지를 모색해야 한다. 캐즘(Chasm)은 본래 지질학 용어로 지층 사이의 단절 및 갈라진 골짜기 등을 뜻한다. 이후 경제나 비즈니스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벤처 기업이 처음에는 사업이 잘되는 듯하다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깊은 수렁에 빠지는 상태를 묘사하는 표현으로 범용화되었다. 첨단기술수용론에서는 혁신성을 중시하는 초기 소비자(early adopters)에게는 신기술이 수용되지만, 실용성을 중시하는 대중(majority)에게까지 진입하지 못하고 급격히 침체기를 맞는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채택하고 있다. 한국 경제와 자동차 산업 자동차는 한국 경제에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산업이다. 자동차, 자동차부품, 이차전지는 모두 한국의 15대 주력 수출품목에 들어간다. 반도체가 가장 중요한 수출품목이라고 공식화했지만, 사실 3대 자동차 관련 품목 수출을 기준으로 하면 그 공식은 깨진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986억 달러에 달해 전체 수출의 15.6%를 차지하지만, 3대 자동차 관련 품목의 수출액은 1조37억 달러(16.4%)로 반도체를 넘어서는 규모다. 구체적으로 2023년 수출액을 보면 자동차가 709억 달러(11.2%), 자동차 부품이 230억 달러(3.6%), 이차전지가 98억 달러(1.6%)에 달한다. 캐즘에 빠진 전기차 몇몇 국가들은 전기차가 주류시장(mainstream market)에 이미 진입한 반면 대부분의 국가들은 캐즘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노르웨이는 이미 전기차가 80% 이상을 차지하는 범용화된 시장의 모습을 보이고, 스웨덴과 네덜런드도 30% 이상으로 캐즘을 넘어선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 미국, 일본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초기 소비자에게까지는 매우 빠른 속도로 전기차가 보급되었지만 캐즘을 넘어서지 못한 모습이다. 전기차 캐즘 현상을 다양한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한국의 전기차 수출액이 처음 감소하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줄곧 증가해왔던 전기차 수출이 2024년 감소세로 진입한 모습이다. 2024년 1분기 전기차 수출 실적은 약 37억6000만 달러로 2023년 1분기 41억7000만 달러에서 9.9% 감소했다. 2023년 자동차 수출액에서 전기차 비중이 23.3% 수준이었다면 2024년 1분기 현재 21.4%로 떨어졌다. 2024년 연간 전기차 수출액도 2023년보다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이차전지 수출을 보면 더욱 자명하다. 이차전지 수출은 2018~2020년 1%대 증가율에 머물다 2021~2022년 15%대의 폭발적인 증가율로 급증했다. 그러나 2023년부터 감소세로 전환되어 -1.5%로 감소했고 2024년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22.3%나 감소했다. 2024년 연간 수출액도 많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차전지는 전기차의 부품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기차 시장이 정체되는 과정에서 선행적으로 수출이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미국의 전기차 시장도 줄곧 성장만 하다 주춤하고 있다. 2024년 1분기 전기차 판매 대수는 약 26만9000대에 달해 2023년 4분기에 비해 -7.3%로 감소했다. 특히 전기차 시장을 선도했던 테슬라의 매출액이 2023년 들어 주춤하기 시작해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2022년 2분기 65%에서 2024년 1분기 51%로 떨어졌다. 테슬라는 인력 감축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전 세계 직원 수 14만명 중 10%에 달하는 약 1만4000명 감원을 계획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완성차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에 진입해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기차, 성장 한계에 봉착한 배경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한풀 꺾인 배경에는 수요가 확장되지 못하는 캐즘현상을 꼽을 수 있지만, 그 밖에 다른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중요한 또 다른 요인이 ‘보조금 축소’다. 그동안 전기차 수요를 유인해 왔던 배경이 보조금이었다면, 보조금 축소는 수요 정체를 야기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독일은 2023년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20~30%가량 축소했고, 영국은 보조금 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 세계적으로도 고금리 장기화의 흐름 속에 각국이 긴축재정을 펼치는 국면에서 보조금이 축소되는 분위기다. 특히 대선을 앞둔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보조금을 앞세워 전기차를 적극적으로 보급해왔던 정책 기조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상황이다. 두 번째 중요한 요인이 ‘출혈경쟁’이다. 테슬라가 2012년 ‘모델S’를 시작으로 전기차 시장을 선점했고, 이후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출시를 확대해 왔다. 한국, 미국, 독일 등 자동차 강국의 완성차 업체들이 대거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었고, 일본 기업들도 한발 늦었지만 뒤늦게 경쟁에 합류했다. 특히, 중국의 비야디(BYD), 지리(Geely), 상하이자동차(SAIC) 등이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샤오미도 첫 전기차 ‘SU7’을 출시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수요는 정체되는 국면에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면서 전기차 기업이 성장 한계에 직면한 모습이다. 셋째, ‘중국의 시장 장악’도 전기차 성장 한계에 한몫했다. 자국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중국의 전기차 기업들이 글로벌 전기차 시장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이미 중국 시장이 53.6%를 차지할 만큼 거대하고, 유럽(23.7%)이나 북미(15.3%)를 초과한 훨씬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2023년 기준). 중국 정부의 편파적인 보조금 정책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자국 시장에 독점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비야디(BYD)도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전기차 판매 1위 기업으로 부상했지만, 2023년 96%가 내수시장에서 발생했다. 거대한 내수시장은 중국 기업들에 ‘규모의 경제’ 효과를 주고,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점유할 수 있도록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시장을 제외한 세계 전기차 시장을 기준으로 2017년 중국 전기차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3.4%에서 2020년 6.9%, 2023년 12.5%로 상승해왔다. 넷째, ‘가격경쟁 본격화’는 전기차 기업들을 긴장케 하는 요소가 된다. 수요 둔화와 과잉 경쟁은 통상적으로 시장을 가격경쟁으로 내몬다. 공급과잉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리튬 등 가격이 급락했고, 배터리 가격도 조정되고 있다. 테슬라, 폭스바겐 등 세계적으로 전기차 가격을 내리고 있다. 특히, 가격경쟁을 부추긴 중국의 역할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최근 샤오미는 800㎞의 주행능력을 가진 전기차 ‘SU7’을 5000만원대에 출시했고, 비야디(BYD)의 SUV ‘아토3’는 2200만원에 불과하다. 중국 내수시장이 과잉공급의 난을 겪고 있어 대응 전략으로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한국 등 주요 시장에서 성능 인증 평가를 받고, 현지 조직 인력을 채용해 나가고 있다. 전기차가 캐즘을 건너려면 전기차 산업이 성장통을 겪는 모습이다. 어쩌면 성장해 나가는 데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평가된다. 캐즘을 건너는 전기차 기업이 있고, 건너지 못하고 떨어지는 기업이 있을 것이다.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과잉 경쟁화 되다가 산업 구조조정을 겪는다. 이 과정을 지나면 다시 정상화되는 국면이 찾아오는 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캐즘을 건너는 일이다. 첫째, 캐즘을 건너기 위해서는 보급형 전기차 모델 출시에 집중해야 한다. 초기 시장은 상대적으로 기술이나 품질이 중요했겠지만 주류시장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SW(소프트웨어) 차별화를 추진해야 한다. 저가형 전기차를 중심으로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는 가운데 소비자들에게 편의를 더할 서비스를 강화하고 그것이 보급형 전기차 속에 차별화된 소구 포인트가 되도록 해야 하겠다. 셋째,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선도해야 한다. 전기차의 경쟁력은 곧 배터리 경쟁력이다. 저렴하고 안전하며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차세대 배터리를 확보하는 것이 주류시장을 장악하는 길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재 확보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전기차가 캐즘을 건너 광범위한 시장으로 보급되는 과정에서 배터리 핵심 소재가 다시 공급 부족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 지경학적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빙하가 물리적 지각변동을 일으켰다면, 글로벌 사우스가 지정학적·경제학적 관점의 지각변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수백 개의 퍼즐로 구성된 지구를 상상해 본다면, 이전에 없던 다른 공식으로 퍼즐이 맞춰지고 있는 듯하다. 글로벌 사우스가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게 되었다. 의회에서 두 정당의 세력이 비슷할 때 그 승패를 결정하는 제3당이 있듯, 미국 동맹국과 중국 동맹국 간의 첨예한 갈등이 전개되는 동안, 제3 세력이 부상하는 모습이다. 이미 미국과 중국이 서로 글로벌 사우스와의 파트너십을 확보하려 경쟁하고 있다. 그 변화는 군사·안보뿐만 아니라, 공급망·수출·기술패권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는 개발도상국 또는 제 3세계 국가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글로벌 노스(Global North)가 미국과 유럽 주요국, 한국, 일본 등의 선진국을 뜻하는 개념이었다면, 글로벌 사우스는 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의 개발도상국들을 일컫는 용어다. 20세기 세계 경제의 중심이 글로벌 노스였다면, 21세기에는 글로벌 사우스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저성장, 고령화, 인구감소가 고착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사우스에 속한 주요 신흥국들이 고성장, 인구증가,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세계 경제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실제, 글로벌 사우스에 속하는 125개 국가의 GDP는 이미 세계 GDP의 약 40%에 달하고, 이들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2에 달한다. 글로벌 사우스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단일패권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 더욱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필두로 한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를 필두로 한 공산주의 진영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그동안의 글로벌 질서가 서방 국가들 주도로 운영됐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음에 불만을 보여왔다. 특히, 미국의 러시아 경제제재나 중국에 대한 관세부과 등과 같은 움직임에 동참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고, 서구 중심의 탄소 저감 노력이 개발도상국에게 과도한 부담이 됨을 피력해 왔다. 유엔 총회에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동의하는 결의안이 채택되거나, IMF, G20 등의 국제기구에서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중심의 지각변동,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첫째, ‘중국과의 디커플링’이라는 관점에서 글로벌 사우스가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부여받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2017년 이후 미·중 패권전쟁이 강하게 격돌하면서, 미국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의존도를 적극적으로 줄여왔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2017년 21.6%에서 2022년 16.5%, 2023년 14.5%로 감소했다. 진영 대 진영의 싸움이 고조되면서 진영 간의 교역은 감소했지만, 양쪽 진영으로부터 다소 중립적 입장을 취해오던 글로벌 사우스와의 교역은 더욱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 디커플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멕시코, 베트남, 인도 등이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2017년에는 멕시코보다 중국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높았지만, 2023년에는 역전되었다. 멕시코뿐만 아니라, 베트남, 인도로부터의 수입액도 크게 늘었다. 2017~2023년 동안 미국의 대중국 수입액 증감률은 약 -14.8%로 감소한 반면, 멕시코, 베트남, 인도 수입액은 각각 51.9%, 145.9%, 72.9% 증가했다. 자료 : USITC, 한국무역협회 둘째, 글로벌 사우스의 중심에 인도가 우뚝 서는 모습이다. 인도가 제2의 중국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GDP 대비 FDI 순유입액 비율을 보면, 2010~2020년까지 중국이 4.0%에서 1.7%로 하락했지만, 인도는 1.6%에서 2.4%로 상승했다. 2025년 중국은 0.7%로 하락하고, 인도는 3.2%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의 공장’이 중국에서 인도로 점차 이동하는 모습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을 철수하거나 중국에서의 생산 비중을 줄이고 있다. 중국의 인건비가 더는 매력적이지 않고, 노동력이 풍부한 더 매력적인 국가로 대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인도의 움직임은 매우 대조적이다.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자립 인디아(Self-reliant India)’ 정책을 모디 정부의 핵심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생산기지로서 부족한 인프라를 보강하고, 경영여건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면서 해외 투자 유치에 강력한 정책 의지를 보여왔다. 2023년 인도의 인구는 중국의 인구를 초과했고, 고도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도가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부정하기 어렵다. 더욱이, 2023년 G20 정상회의를 인도에서 개최하고, '글로벌 사우스 정상의 목소리(Voice of Global South Summit)’라는 이름으로 120개국을 초청한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등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로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료 : World Bank, 한국경제산업연구원 주1 : 2010~2020년은 World Bank의 실적 자료이고, 2025년은 한국경제산업연구원의 전망치임. 주1 : 2025년 전망치는 최근 5년 동안의 FDI 유입액의 연평균 증가율과 World Bank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활용하여 추계함. 셋째, 핵심 광물을 보유한 국가들이 중심에 서게 된다.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 전환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반도체, 전기차, 이차전지, 재생에너지 등에 들어가는 니켈, 리튬, 흑연, 코발트 등의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세계 주요국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러-우 전쟁과 중동분쟁 등 자원 대국들의 지정학적 불안이 장기화함에 따라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이 기업들의 중요한 경영전략으로 채택되고 있고, 세계 열강은 핵심 광물의 채굴량 및 매장량이 풍부한 국가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국가들이 니켈, 코발트 등의 자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남미 국가들도 리튬, 흑연 등의 광물 채굴량이 상당하다. 아프리카에도 세계 코발트 채굴량의 68%를 차지하는 DR콩고나, 세계 흑연 채굴량의 13%를 차지하는 모잠비크와 같은 나라들이 있다. 세계 주요국들은 서로 개발권과 채굴권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자료 : USGS(2023) 지경학적 지각변동이 가져올 기회와 위협 첫째, 글로벌 사우스 주요국으로의 신시장 진출을 추진해야 한다. 중국과 미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40%에 달하는 수출구조로는 지경학적 지각변동에 대응하기 어렵다. 특히,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무역구조를 개편하지 않으면,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함에 따라 한국의 수출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과 같은 신흥개도국으로의 적극적인 진출을 통해 무역구조의 다각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둘째, 핵심 광물 보유국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해야 한다. 아무리 반도체 강국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이차전지 강국이라 하더라도 소재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세계 열강이 글로벌 사우스 주요국들로부터 개발권, 채굴권, 판매권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가만히만 있다면, 갈수록 자원의 영토가 줄어들게 된다.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ODA(공적개발원조)를 확대하고, 생산기지 이전과 기술교육을 제공하는 등의 우호적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안정적으로 자원을 조달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자원외교를 우선적 국가 의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셋째, 다국적 기업들을 한국으로 유치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탈중국·탈홍콩 현상을 현상으로서 지켜만 봐서는 안 된다. 적어도 반도체, 디스플레이, 통신, 이차전지 등과 같이 한국이 잘하는 산업만큼은 다국적 기업들을 한국으로 유치하기에 유리한 강점들이 있다. 한국 기업들과 기술교류를 확대하고, 공동연구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기술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한국에 연구기지를 둘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밖에도 해외 기업들의 한국 입성을 막는 과도한 규제들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수준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미래형 규제자유특구를 조성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