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탄소제로 게임체인저 '그린스틸' …철강에 친환경 입히자

2025-01-08 16:49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사람이 철을 들어야 하듯 한국은 철을 내려놓으면 안 된다. 사람은 계절과 때를 의미하는 순한글 ‘철’을, 한국은 주력산업이자 기간산업으로서 철(鐵, 원소기호 Fe)을 들어올려야 한다. 수천 년 인류는 철과 함께해왔다. 세계 금속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인류가 널리 사용하고 있어 철을 ‘산업의 쌀’이라고도 부른다. 자동차, 선박, 건물 구조물, 기계, 부품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철강은 15대 주력 수출 품목 중 하나이며, 다양한 산업의 근간이 되는 한국 경제의 기간산업에 해당한다.
 
2020년대 들어 지구온난화, 식량 부족, 전쟁 등의 문제로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국제사회의 의제가 부상함에 따라 산업 전반에 걸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철강산업도 예외일 수 없었고, 그린스틸(green steel)은 게임체인저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린스틸의 산업 전망과 산업적 기회를 탐색해 보고, 방향성을 계획할 필요가 있다.
 

멈춤 없는 기후변화 대응
기후변화 대응의 움직임은 멈춤이 없다. 2015년 12월 파리기후협약에 195개국이 참여했다. 만장일치로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했고, 2021년 1월 1일 정식 발효되었다.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레이스 투 제로(Race To Zero) 캠페인도 멈춤 없이 전개되고 있다. 이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촉구하고, 2050년까지 전 지구적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2020년 6월을 기점으로 출범한 캠페인이다. 2025년 1월 기준으로 1139개 도시, 48개 지역, 1만2480개 기업, 691개 투자자, 1208개 대학 등 실질적 경제주체들이 참여 중이다.

 
탄소제로레이스(Race To Zero) 캠페인 참여 주체
[자료=UNFCCC]

국제적인 차원에서 탄소 배출을 규제하는 대표적인 예가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다. EU 회원국들이 탄소 저감 노력을 역내 기업들에 요구하다 보면 환경 규제가 취약한 역외로 제조 기지가 이탈하거나 국제 기후 규범을 준수하지 않는 역외국에 비해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역내로 수입되는 탄소 다배출 제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철강,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전력, 수소 등 총 6개 업종에 이 제도를 우선 적용하고, 향후 적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2025년까지는 전환기로 수출 제품을 생산하며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2026년부터 본격 과세가 적용될 예정이다.
 

게임체인저 그린스틸
철강산업은 오랫동안 난감축(hard-to-abate) 산업으로 간주되어왔다. 철강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이며, 이를 줄이는 것은 2050년 탄소중립(Net Zero) 목표 달성에 필수적이다. 철강산업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11% 이상,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 이상을 차지한다. 저탄소 철강을 2030년까지 50%, 넷제로 철강을 2050년까지 100% 사용하겠다는 글로벌 공개 선언 이니셔티브인 스틸 제로(Steel Zero)에 오스테드, 바텐팔, 볼보를 비롯한 40여 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획기적인 탄소 배출량 감축 모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린스틸은 철강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다. 그린스틸(green steel)은 친환경 철강으로 직역될 법하다. 탄소 순배출량을 ‘0’에 가까운 상태로 저탄소강을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친환경 공정으로 만들어진 철강 제품을 뜻한다.
 
철강산업을 지켜내야 한다. 한국은 세계 6위의 철강 생산국이다. 또 한국의 6번째 주력 수출품목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자동차, 자동차 부품, 일반기계, 선박, 가전 등에 중간재로 들어가는 철강의 역할을 생각해 보면 실로 철강 수출 규모는 반도체 이상이다. 그 밖에 나머지 수출품목들도 생산공정 그 자체가 철강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해 보면 철강 없이는 그 무엇도 가능한 게 없다. 세계적으로 철강에 대한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지금, 그린스틸에 도전해야 할 이유는 제시한 숫자들 그 이상일 것이다.

 
[자료=World Steel Association / 주 : 2024년 11월 누적생산량 기준 ]
 
한국의 15대 주력 수출품목 실적
[자료=산업통상자원부 / 주 : 2024년 수출 실적 기준]

그린스틸을 향한 세계의 도전
세계는 그린스틸 산업의 성장세를 주목하고 있다. 세계 그린스틸 시장 규모는 2025년 약 9억9300만 달러에서 2030년 147억3200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건설, 자동차, 기계, 제조공정, 에너지, 소비재 등 산업에 걸쳐 그린스틸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산업에 걸쳐 탄소중립에 관한 요구가 증가할 것이고, 이에 그린스틸이 기존의 철강을 점차 대체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태평양, 유럽,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그린스틸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 그린스틸 시장 전망
[자료=Market.us]

주요 권역별 그린스틸 시장 점유율
[자료=DataM Intelligence / 주 : 2023년 기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기업들이 있다. 많은 기업들이 탄소중립에 대한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산업적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스웨덴 철강 기업 SSAB는 철강 생산 방식을 혁신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화석연료 없이 철강 가치사슬을 구축하기 위해 정주행하고 있다. 특히 SSAB Fossil-free™는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HYBRIT 기술을 적용하여 생산 과정에서 물만 배출하는 혁신적인 제품이다.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등과 같은 자동차 기업들은 SSAB의 그린스틸을 적용해 탄소 배출량을 혁신적으로 저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웨덴의 옥셀뢰순드와 룰레오 지역에 각각 2026년, 2028년 수소환원제철을 활용하는 제철소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 철강 기업 Firth Steels는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철강 제품의 장기 공급을 위해 SSAB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포스코는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기술로 탄소중립을 선도하기 위해 정진하고 있다. 포스코는 HyREX 방식으로 혁신하고 있다. 석탄 대신 100% 수소로만 가루 상태의 철광석을 직접 환원해 직접환원철(DRI·Direct Reduced Iron)을 생산하고, 이를 전기로에서 녹여 쇳물을 제조하는 방식이다. 그린스틸 경쟁력을 확보하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경영전략을 계획하고 있다.
 

그린스틸 쟁탈전과 준비
그린스틸을 뺏기면, 철강산업을 뺏긴다. 기회를 뺏기면 위기만 남는다. 트럼프 2.0 시대에 탄소 저감 노력이 잠시 주춤할 수는 있지만 영구적으로 배제될 수는 없다. 장기적으로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변화다. 전 산업에서 탄소 저감 노력을 집중해야 하겠지만, 특히 철강산업에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기업들의 그린스틸 개발과 기술혁신을 지원하고, 기업은 로드맵을 구축하여야 한다. 현대제철은 그동안 탈탄소 로드맵이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는 현대자동차 탄소중립에 제동을 걸게 될 우려를 낳았다. 중국발 과잉공급과 저가 공세, 탄소중립 요구, 트럼프의 제조기지 이전 요구 등과 같은 삼중고하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눌려만 있을 수 없지 않은가?
 
2025년 극단적 보호무역주의 시대가 온다. 세계 주요국들은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탄소세 도입 등과 같은 새로운 보호무역 수단을 마련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수입 규제가 강화될 것이기 때문에 각국의 변화할 제도를 모니터링하고, 제도 변화에 부합하는 철강 및 철강을 사용한 제품을 생산해야만 한다. 철(season·시대)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 철을 들어 올려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