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서민금융은 발품 파는 일···민간·정책 지원 역량 합심 필요"

2024-12-04 17:00
"민간·정책 서민금융 공급, 여전히 수요 대비 부족"
"부족한 상담 인력과 재원도 지속 확보할 수 있어야"
"시장 특수성 고려한 감독 필요···새로운 가능성 열려"

이재연 서민금융진흥원 원장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한국 사회에서 '서민금융'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다. 공급자 시점에서 서민금융이 은행 외 상호금융이나 저축은행 등 서민금융기관이 제공하는 금융이라면, 금융소비자 시점에서는 저신용·저소득자를 대상으로 하는 금융을 의미한다.

이재연 서민금융진흥원장은 저신용·저소득자 관점에서 볼 때 한국에는 많은 서민금융기관이 있다고 해도 대출 문턱이 높아 이용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지적한다. 손쉬운 부동산 담보대출 또는 보증대출에 금융권이 매몰돼 있어 서민금융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역량도 약해진다고 봤다. 사실상 서민금융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이 원장은 "서민금융은 발품을 팔아야 하는 일"이라면서 "최근 금융·비금융을 복합으로 지원하는 길이 열리면서 서민·취약계층이 금융서비스를 받으려고 할 때 상담을 통해 필요한 금융·고용·복지 등 수요를 파악하고, 이를 연결해주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 민간과 정책서민금융이 상호 보완하며 역량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 원장과 일문일답한 내용.

-서민금융 전문가이자 서금원장,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임기 3년을 곧 채우게 된다. 그간 소회를 전한다면.
"취임 첫해인 2022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이 컸던 시기라 지원이 많이 필요해서 서민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것에 집중했다. 두 번째 해인 2023년에는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기대와 달리 고금리가 장기화하고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서금원의 대위변제율도 굉장히 나빠지는 등 리스크 관리가 굉장히 심각했던 상황이었다. 올해는 어느 정도 리스크가 정리되면서 지나간 상황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있다. 3년여 시간을 정신없이 보냈다."

-서금원에서 정책 서민금융 공급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간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서금원이 담당하는 정책서민금융 공급이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7조원대로 크게 확대됐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책서민금융이 대출 외에 서민을 위해 필요한 복합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금원은 2016년 설립 당시 보증 지원과 채무조정 지원 외에 복지와 취업 연계 등 복합 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했으나 연계 여건이 좋지 않아 활성화하지 못했다. 지난해 3월 출시된 소액생계비대출은 서금원의 직접대출 상품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에게 자금 이용 기회를 제공했다.

또 서민금융 종합 플랫폼인 '잇다'는 출시 이후 4개월 만에 209만명이 이용했고 △금융상품 알선 △복합상담 이용 △휴면예금 지급 등 실제로 약 74만6000건에 이르는 서비스 이용건수가 있었다."

-현재 서민금융 시장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충분한 서민금융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는지.
"금융시장에서 예금과 대출을 취급하는 금융회사의 총 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약 4500조원이다. 이 중 상호금융의 총 자산 규모는 약 1000조원, 저축은행은 약 100조원으로 금융시장 전체에서 서민금융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다. 서금원을 통한 정책서민금융 공급이 불가피한 환경이다.

지역농협, 새마을금고, 신협 등 상호금융이나 저축은행과 같은 민간 서민금융기관들은 리스크 관리 역량이 높지 않다 보니 부동산 담보대출 중심의 영업 관행 등으로 부실 위험이 확대되면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업체도 최고 금리 수준의 높은 금리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그치고 있다."

-최근 30대 싱글맘 자살 사건과 같이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는데, 정책금융이 과거보다 분명히 많은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건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1998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건전성 확보가 지나치게 강조된 결과로, 금융회사들은 대출자에 대한 사업성 평가·상환능력평가 역량 개발을 소홀히 하고 있다. 결국 서민금융공급 역량 저하를 초래해 보증과 담보에 더욱 의존하게 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금융시장은 대형 은행 중심으로 이뤄져 있고, 서민금융을 담당하는 상호금융권은 현행 취급 대출 중 90% 이상이 부동산 담보대출로 구성된다. 신용도와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고 담보 제공 능력이 부족한 서민들은 자금이 필요해도 대출을 받기 어려워 항상 수요에 비해 공급이 충분치 않고, 정책서민금융도 보증으로 대출하는 게 많아 위기 상황에선 더욱 어려운 취약계층에 대한 자금 공급이 부족하다. 이는 불법사금융 시장을 양산해 법정 이자율 초과, 불법 추심 등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민간 서민금융에서 더욱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갈수록 정책서민금융으로 부족한 공급을 메우고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민간 서민금융 확대를 유도할 수 있나.
"민간과 정책서민금융이 양적·질적으로 서민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담보가 부족하거나 신용도가 낮은 취약계층도 신용평가를 통해 제도권 금융회사 상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민간 금융사들이 저신용·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대출심사와 사후관리 등 서민금융 관리 역량을 키워야 하고, 결국 더욱 정교한 리스크 평가 역량이 필요하다. 재무적 데이터가 아닌 비재무적인 대안 데이터를 가지고 평가하는 대안 신용평가모형(CSS)을 만들 필요가 있다. 아울러 손쉽게 상환받을 수 있는 부동산 담보대출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감독당국에서도 민간 금융사가 움직일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줘야 한다. 2017년 일본 금융청은 자산 건전성 관련 지침을 폐지했다. 금융사들이 지침대로만 움직이고 리스크를 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서민금융을 취급할 때 똑같은 수준으로 감독하면 모든 금융사의 영업 방식이 같아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휴가철에 관광객이 몰리는 관광지라든지, 수확 시기가 있는 농촌이라든지 지역 특수성을 고려한 서민금융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감독할 필요가 있다. 이런 특수성이 감독에 반영된다면 더욱 적극적인 상품 개발이 이뤄지고, 또 다른 방법으로 서민금융 공급이 확대될 여력이 생길 수 있다.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 등 서민금융회사도 본연의 정체성을 살려 좀 더 적극적으로 서민금융을 제공한다면 서금원도 다른 금융 선진국에서와 같이 더욱 취약한 서민들에게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

-민간 길라잡이를 해야 하는 정책서민금융의 역할이 커지고 있지만 서금원에서도 운신 폭이 좁아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책서민금융 운용에 가장 큰 애로사항이 있다면.
"서민금융이라는 게 발품을 팔아야 하는데, 상담 인력과 재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가는 부분이 가장 큰 선결과제라고 할 수 있다. 서금원은 전국에 50개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센터로 배치하는 일반 직원이 66명에 불과하다. 기존 서민금융상품 대상 고객보다 더 열악한 서민으로 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대면 상담과 종합적인 관리 중요성이 높아졌음에도 센터에 1~2명 배치되는 것이 현실이다. 아울러 기금이 없는 서금원으로서는 매해 돈을 받아서 일정 부분으로 공급하다 보니 급변하는 경제 상황에 신속히 대처하기도 어렵다."

-금융당국에서 정책서민금융에 대한 전면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는데, 어떤 문제부터 점검하고 해결해 나갈 예정인지.
"무엇보다 서민금융지원제도가 있는지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분들이 없도록 홍보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민·취약계층이 많은 지역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홍보를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 주택관리공단 등 유관기관과 협업해 서민·취약계층을 타깃으로 한 집중 홍보도 강화하려고 한다.

아울러 '불법사금융은 불행사(死)금융'을 슬로건으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상환 능력은 있으나 담보가 없고 신용점수가 낮아 금융회사를 이용하지 못하는 분들에 대해선 서금원이 보증을 제공하고, 상환 능력이 없는 분들에 대해서는 복지나 취업지원제도 등을 연계해 지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