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자본주의는 영어와 함께 온다
2024-10-29 06:00
“야, 이 나쁜 놈아!” 불가리아 소피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은 레프화를 환전하던 중 바로 옆에서 참다못한 남성의 한국어 욕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에도 50유로권을 주고 20유로만 환전하려다 환전상이 잔돈을 30유로가 아니라 10유로만을 돌려주려 하자 화가 나서 50유로권을 돌려받고는 재차 달러화로 환전하려 했다가 다시 사달이 난 거였다. 달러화도 20달러를 마치 10달러처럼 바꿔주려다 발각된 거였다. 3개월째 배낭여행 하다가 불가리아에 막 도착했다는 또래의 남성에게 말을 붙이니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뒤에 들어오는 환전 고객에게도 연신 '도둑놈'을 손가락질하면서 조심하라 이른다. 고객이 환전을 요구하면서 내민 돈은 일단 쌍방이 볼 수 있는 위치에 놓아두었다가 고객의 요구에 맞게 환전된 금액을 서로 확인한 다음에 비로소 환전상과 고객이 각자 자기 것을 가져가는 것이 암묵적인 불문율이다. 이날 소피아 버스터미널 환전소에서는 이 규칙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환전상이 고객의 돈을 먼저 챙겨 서랍에 넣은 다음 틀린 금액을 고객에게 환전해주는 술수를 사용하려다 들통난 것이었다. 소피아 공항에 한글로 '한국인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인삿말을 읽은들 무질서한 시장에서 뒤통수 한번 맞으면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 시외버스터미널 매표창구에 등록되지 않는 버스회사들이 체제 전환 30년을 넘긴 후에도 ‘자생적’ 시장질서를 형성해 가는 중이지만 새로운 시장참여자에게는 언제나 시행착오의 학습과정을 거치면서 비용을 지불해야 할 위험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동유럽의 체제 전환국들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은 예상보다 훨씬 더디고 불균등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가 간뿐만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차별적인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나 독일이 미치는 영향 역시 나라별로 분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분명한 경향은 헝가리, 폴란드,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등 유럽연합(EU)의 주변국들은 유로화 채택 여부와 상관없이 EU 가입이 수월하다. 하지만 1999년 코소보전쟁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EU를 배경으로 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확산은 갈수록 종교와 민족의 차이에 영향을 받고 있다. 북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와 신생 독립국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가 보여주고 있는 극명한 도시 내 양극화의 모습은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두 도시의 중앙을 흐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모슬렘 지역과 비(非)모슬렘지역 사이의 경제적 격차는 확연하다. 스코페를 안내하는 모슬렘 출신 가이드는 연신 '부정부패와 범죄'를 외쳤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는 EU 가입을 마치 ‘격려금’처럼 지급하면서 튀르키예에 대해서는 30년 넘는 가입 희망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유로 미루고 있는 현실 역시 튀르키예는 ‘유럽’에 속하지 않는다는 속내의 암묵적 표현일 수 있다. 독일에 거주하는 튀르키예인이 500만명을 넘고 독일의 볼프 전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이슬람도 독일 문화의 일부”라는 파격적인 선언을 했을지라도 발칸반도를 여행하는 독일인들이 이슬람 사원 방문은 굳이 피하는 ‘민심’은 독일 정부의 정책 결정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한 국가 안에 공존하고 있는 발칸 지방에서 '자본주의의 문명화 작용'(카를 마르크스)은 제한적이다.
코소보 내전 이후 부시 대통령의 방문에 이어 알바니아와 코소보에 몰아친 친미 열풍은 이 지역의 모든 간판을 영어로 바꾸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부시빵집’이 생기고 성조기가 코소보기, 알바니아기와 나란히 걸려 있다. 이 틈에 일본은 수도 티라나 시내 대로에 독일 통일을 기념한다며 일장기 사열을 연출하고 있다. 베를린 미테구 정부가 소녀상을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이유로 결국 철거하도록 명령을 내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바니아에 한국 대사관은 없다. 코소보 프리슈티나 국립도서관 앞에서 들린 한국말 소리에 서로 마주 본 한국인 여행객과는 ‘아시아인은 처음 본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지만 정작 코소보 현지 주민들은 "중국인? 일본인?”인지를 묻는다. 간판은 전부 영어지만 점차 커지고 있는 독일의 영향력은 표면화하고 있다. 남유럽 시장에서 돌아다니는 승용차는 거의 전부가 독일차이다. 프리슈티나 국제공항의 검색원은 한국에서 수입되는 독일 중고 자동차를 살 생각에 들떠 있다. 남유럽 주요 관광지에 독일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고 시외버스터미널 행선지에 예상대로 독일이 압도적이다. 1980년대 이후 경제적 차원에서 진행되어 온 ‘유럽의 독일화’가 서서히 발칸 지방까지 스며들고 있다. 독일은 압도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남부 유럽의 문화지도를 새롭게 그리고 있다.
전남 장흥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부친 한승원 작가의 생가를 사들여 ‘문학 특구 거점’을 조성하겠다는 발 빠른 ‘숟가락 얹기’는 ‘경제동물의 나라’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온 나라에서 목격되고 있는 행보이다. 김구 선생께서 ‘문화가 높은 대한민국’을 꿈꾸셨을 때 이런 나라를 뜻하셨을지 의문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국가적 경사였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면서 노벨과학상 수상에 대한 기대로 문학상 수상에 대한 국민적 열광을 희석시키려는 윤석열 정부 과학수석의 고뇌에 찼을 언급은 불행하게도 자기모순을 안고 있다. 과학상이 문학상보다 더 값지다는 ‘졸부형’ 우월주의이다. 게다가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과학기술 생태계를 흔들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동네 책방’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마을 도서관의 문을 닫는 정부가 나서서 노벨과학상 수상 희망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일부 극우의 반발은 예상한 대로다. 이로써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사회가 3중 모순에 사로잡혀 있음을 새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계급모순과 남북모순에 이어 지역모순은 지역패권과 경제적 지역불균형의 심화이다. 이는 문화적·이데올로기적 패권과 결합되면서 갈수록 공고해지고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국가폭력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하는 한강의 작품세계는 이러한 모순구조가 낳은 결과이다. 극우가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극우의 경제적·정치적 기득권이 국가폭력의 기반 위에서 강화되었음을 시인하는 것과 같다. 과거사를 정리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과거사를 부정하여 책임을 면하고자 할 뿐만 아니라 암묵적으로 폭력의 역사를 반복할 기회를 엿보고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할 뿐만 아니라 끝까지 보상책임을 다함으로써 화해와 협력의 길로 전진하는 방식이다. 전자는 일본 방식, 후자는 독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일부 극우의 반발은 한국 사회경제의 위기상황에 대한 보수 일반의 미래비전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를 넘어 이승만으로 되돌아가 역사 왜곡으로 세척된 ‘과거’에서 미래를 찾고 허구적인 ‘자유민주주의’의 좁은 틀 안에 한국 사회경제를 가두려는 지역이기적인 기득권 방어전략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잃어버린 30년’이 한국의 미래일 수 있다. 극우 이념과 지역이기주의가 결합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서 “지역 균형발전”(헌법 제123조 ②항) 없이 극우를 정치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청산하는 것은 ‘다람쥐 쳇바퀴 돌기’일 수 있다. “지역균형 발전”을 통해 모든 지역이 대등한 참여권을 가지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인구소멸의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정도일 것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동유럽의 체제 전환국들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은 예상보다 훨씬 더디고 불균등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가 간뿐만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차별적인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나 독일이 미치는 영향 역시 나라별로 분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분명한 경향은 헝가리, 폴란드,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등 유럽연합(EU)의 주변국들은 유로화 채택 여부와 상관없이 EU 가입이 수월하다. 하지만 1999년 코소보전쟁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EU를 배경으로 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확산은 갈수록 종교와 민족의 차이에 영향을 받고 있다. 북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와 신생 독립국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가 보여주고 있는 극명한 도시 내 양극화의 모습은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두 도시의 중앙을 흐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모슬렘 지역과 비(非)모슬렘지역 사이의 경제적 격차는 확연하다. 스코페를 안내하는 모슬렘 출신 가이드는 연신 '부정부패와 범죄'를 외쳤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는 EU 가입을 마치 ‘격려금’처럼 지급하면서 튀르키예에 대해서는 30년 넘는 가입 희망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유로 미루고 있는 현실 역시 튀르키예는 ‘유럽’에 속하지 않는다는 속내의 암묵적 표현일 수 있다. 독일에 거주하는 튀르키예인이 500만명을 넘고 독일의 볼프 전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이슬람도 독일 문화의 일부”라는 파격적인 선언을 했을지라도 발칸반도를 여행하는 독일인들이 이슬람 사원 방문은 굳이 피하는 ‘민심’은 독일 정부의 정책 결정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한 국가 안에 공존하고 있는 발칸 지방에서 '자본주의의 문명화 작용'(카를 마르크스)은 제한적이다.
코소보 내전 이후 부시 대통령의 방문에 이어 알바니아와 코소보에 몰아친 친미 열풍은 이 지역의 모든 간판을 영어로 바꾸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부시빵집’이 생기고 성조기가 코소보기, 알바니아기와 나란히 걸려 있다. 이 틈에 일본은 수도 티라나 시내 대로에 독일 통일을 기념한다며 일장기 사열을 연출하고 있다. 베를린 미테구 정부가 소녀상을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이유로 결국 철거하도록 명령을 내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바니아에 한국 대사관은 없다. 코소보 프리슈티나 국립도서관 앞에서 들린 한국말 소리에 서로 마주 본 한국인 여행객과는 ‘아시아인은 처음 본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지만 정작 코소보 현지 주민들은 "중국인? 일본인?”인지를 묻는다. 간판은 전부 영어지만 점차 커지고 있는 독일의 영향력은 표면화하고 있다. 남유럽 시장에서 돌아다니는 승용차는 거의 전부가 독일차이다. 프리슈티나 국제공항의 검색원은 한국에서 수입되는 독일 중고 자동차를 살 생각에 들떠 있다. 남유럽 주요 관광지에 독일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고 시외버스터미널 행선지에 예상대로 독일이 압도적이다. 1980년대 이후 경제적 차원에서 진행되어 온 ‘유럽의 독일화’가 서서히 발칸 지방까지 스며들고 있다. 독일은 압도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남부 유럽의 문화지도를 새롭게 그리고 있다.
전남 장흥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부친 한승원 작가의 생가를 사들여 ‘문학 특구 거점’을 조성하겠다는 발 빠른 ‘숟가락 얹기’는 ‘경제동물의 나라’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온 나라에서 목격되고 있는 행보이다. 김구 선생께서 ‘문화가 높은 대한민국’을 꿈꾸셨을 때 이런 나라를 뜻하셨을지 의문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국가적 경사였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면서 노벨과학상 수상에 대한 기대로 문학상 수상에 대한 국민적 열광을 희석시키려는 윤석열 정부 과학수석의 고뇌에 찼을 언급은 불행하게도 자기모순을 안고 있다. 과학상이 문학상보다 더 값지다는 ‘졸부형’ 우월주의이다. 게다가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과학기술 생태계를 흔들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동네 책방’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마을 도서관의 문을 닫는 정부가 나서서 노벨과학상 수상 희망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일부 극우의 반발은 예상한 대로다. 이로써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사회가 3중 모순에 사로잡혀 있음을 새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계급모순과 남북모순에 이어 지역모순은 지역패권과 경제적 지역불균형의 심화이다. 이는 문화적·이데올로기적 패권과 결합되면서 갈수록 공고해지고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국가폭력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하는 한강의 작품세계는 이러한 모순구조가 낳은 결과이다. 극우가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극우의 경제적·정치적 기득권이 국가폭력의 기반 위에서 강화되었음을 시인하는 것과 같다. 과거사를 정리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과거사를 부정하여 책임을 면하고자 할 뿐만 아니라 암묵적으로 폭력의 역사를 반복할 기회를 엿보고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할 뿐만 아니라 끝까지 보상책임을 다함으로써 화해와 협력의 길로 전진하는 방식이다. 전자는 일본 방식, 후자는 독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일부 극우의 반발은 한국 사회경제의 위기상황에 대한 보수 일반의 미래비전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를 넘어 이승만으로 되돌아가 역사 왜곡으로 세척된 ‘과거’에서 미래를 찾고 허구적인 ‘자유민주주의’의 좁은 틀 안에 한국 사회경제를 가두려는 지역이기적인 기득권 방어전략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잃어버린 30년’이 한국의 미래일 수 있다. 극우 이념과 지역이기주의가 결합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서 “지역 균형발전”(헌법 제123조 ②항) 없이 극우를 정치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청산하는 것은 ‘다람쥐 쳇바퀴 돌기’일 수 있다. “지역균형 발전”을 통해 모든 지역이 대등한 참여권을 가지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인구소멸의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정도일 것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