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한국판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2024-07-21 19:24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독일 속담이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이고 설상가상이다. 작금의 대한민국 정세를 전문가들은 ’복합 위기‘로 표현하기도 한다. 기후위기, 인구위기, 경제위기, 정치위기까지. 여당의 당대표 경선이 ‘진흙탕’이라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유권자를 경악하게 만들고 있다. 관료 출신 대통령의 정치의식과 정치도덕이 여당을 오염시키면서 한국 정치의 격을 자유낙하시키고 있다. 바닥인가 했는데 ‘지하실’이 있었다. 정치인으로서 자기 비전을 제시하고 선택받기보다 정적을 비방하고 떨어뜨리는 것이 훨씬 쉬운 관행은 대한민국 정치위기의 원인이다.

정치의 위기는 정치와 행정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행정이 정치를 포섭하는 행정 우위 경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사이에 공직은 퇴직 후 재취업, 사익을 위한 징검다리가 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음주 뺑소니 혐의로 구속된 가수 김호중이 뺑소니 덕분에 음주 혐의는 기소 사유에서 빠지면서 ‘김호중 따라하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기여한 변호사는 검찰총장 대행을 역임한 전관이었다. 검찰권력은 검찰관료 출신 대통령의 취임과 더불어 거의 모든 주요 정부기관에 검사들이 포진됨으로써 위세가 절정에 이르렀다. 권력의 도구가 스스로 주체로 자립하여 권력을 분점하려는 시도는 그들의 권력 기반이 되는 ‘시험’ 관문을 독과점함으로써만 계급분파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관으로서의 특권과 로스쿨에서의 특혜를 오남용하는 ‘현대판 음서제’를 만들어 대물림하고자 한다.

6개월을 이어가고 있는 의사들의 파업은 경제위기 국면에서 분배 갈등의 한 단면이다. “국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희대의 망언이 호언장담으로 현실화하는 모양이다. 의사는 국민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는 선례를 다시 한번 남겼다.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는 변명은 의대 증원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지역 의사 처우 개선’ 요구로 반박당하고 있다. 의사 파업은 민주공화국을 위협하는 검찰권력과 인간사회의 필수행위에 속하는 정치를 과감하게 대체하는 행정권력(?)에 이은 세 번째 시험권력의 건재를 널리 알리고 있다. ‘부모 찬스도 능력’이라는 정유라(최순실의 딸)의 큰소리는 사실 대한민국의 불평등과 불균형을 정당화하는 시험 기반 능력주의의 실상을 폭로하는 목소리였다. 이렇게 들통난 한국형 능력주의는 ‘의무 없는 권리’ ‘책임 없는 권한’을 ‘공정 가치’의 이름으로 관철하면서 불평등과 불균형을 거침없이 확산하고 있다.

다양한 위기 징후를 보이면서 위축되는 한국 경제에 정치는 등을 떠밀고 있다. 인구 소멸은 한국의 저임금 기반 축적모델의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현상이다. 윤석열 정권 출범부터 추진한 노동시간 연장이나 최저임금 차등화 시도는 결국 저임금 구조를 연장하려는 시도였지만 노동자의 당연한 반발에 실패했다. 재생에너지(RE)100의 도전을 코앞에 두고 있는 반도체산업은 대통령의 개인적 아집에 밀려 재생에너지산업과 함께 침체의 위기를 맞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시작된 노골적인 사익 추구에 그치지 않고 미국뿐만 아니라 ‘잠재적 적국’ 일본에 대해서 보이는 적나라한 봉사 자세는 국익 침해는 물론 주권자인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있다. 대만은 물론 미국에 이어 일본까지 국운을 걸고 육성하는 반도체산업에 대한 정부의 상대적 무관심은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보조금 혜택을 받게 된 삼성, 현대차, SK, LG, 한화 등 재벌기업들이 미국에서 거의 ‘한국 반도체·배터리 벨트’를 형성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정부 차원의 신자유주의적 발상은 산자부의 국가첨단전략산업의 선정에서도 사이비 효율성 중심이 그대로 견지되면서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상위의 헌법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정부의 원전 편향 역시 균형발전 의지는 물론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산유국의 꿈’은 탐사기업을 둘러싼 여러 의혹은 물론 ‘탄소중립’ 목표에 대한 고려도 없다. 10년 후에 석유를 채굴한다고 할지라도 그때쯤 세계 석유소비가 줄어 ‘석유에서 헤엄치는’ 세상이 된다면 ‘산유국의 꿈’은 탄소중립을 향한 ‘에너지 전환’과 충돌할 우려가 크다.

사익에 의한 공익의 대체는 국가의 해체를 뜻한다. ‘1호 영업사원’에 의해 주도되는 상품수출을 빙자한 일자리 수출은 공익추구자로서 국가의 권한 남용이다. 대통령을 앞세워 감세와 재정지출 축소, 민영화, 규제 완화로 이어지는 기재부의 철 지난 신자유주의 기조는 국민의힘의 지원을 받고 민주당의 무능에 힘입어 정권을 초월하면서 ‘대한민국 가난하게 만들기’ 프로젝트로 견지되고 있다. 20~30년 경제정책에 전념하면서 스스로 신자유주의로 완전무장한 관료를 정치적·정책적 훈련이 미비한 초선 국회의원이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과제일 수 있지만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것은 주권자에게 비극이다. 기재부가 산하기관과 공기업의 인사권 장악과 국유재산 매각을 매개로 하여 자립적인 권력분파로 안착하는 경향은 반전되어야 할 것이다.

기재부의 ‘대한민국 가난하게 만들기’ 프로젝트는 현 정부 들어 재정건전성을 빌미로 더욱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이미 문재인 정부 시절 대국민 코로나 지원금은 국가부채비율 40%를 넘기지 않는 선에서 마지못해 맞추었다. 그런데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자영업자 100조원 지원’ 공약을 기재부가 적극 뒷받침하고 나선 것은 한마디로 스캔들이자 문재인 정권의 치욕이었다. 그 바탕에 2021년과 2022년에 도합 100조원 만큼 세수를 과소 추계한 과오(?)가 있었다는 사실은 기재부의 국정농단으로 분류할 만했지만 정권교체로 유야무야 넘어갔다. 결과는 정부가 시장에서 100조원을 거두어들여 국고에 보관한 셈이니 대한민국을 가난하게 만든 셈이다. 반면에 금년에는 이미 5월 말까지 재정적자가 74조4000억원에 달했고 세수는 정부추계보다 오히려 100조가량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당초 계획되었던 사업(지출)이 그만큼 축소될 판이다. 세수가 당초 목표보다 줄어드는 흐름이 뚜렷함에도 기재부는 세목별로 감세를 추진하거나 법 개정을 예고함으로써 재정건전성 목표보다 ‘부자감세’가 본의임을 선언하고 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의 재전건전성 목표는 일그러진 모습을 띠게 되었고 국가채무비율은 50%를 훌쩍 넘었다. 이제 기재부는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의 재정지출 구조조정 과정을 분석하여 감세→세입 감소→지출 감소(→성장 지체)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악순환의 고리를 완성할 태세이다. 최근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종합부동산세 재검토와 금융투자소득세 유예 등을 제안했다. 당내 의원모임에서는 상속세 감세를 의논하고 있다. 누구나 대통령이 되려는 ‘외연 확장’ 행보로 즉각 이해했다. “주권자를 위해 일할 권한만을 원한다”는 공언과 부자감세 공언이 양립할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위기는 경제위기와 맞물려 있다. 무난히 늘어나는 이익을 나누기는 어렵지 않지만 줄어드는 파이를 나누기는 어렵다. 대한민국 소멸의 위기는 불평등과 불균형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이를 시정할 의무가 있는 선출권력을 담당한 정치는 비전 없음으로 인해 무기력하거나 스스로 이해당사자가 되어 갈등의 한복판에서 불평등과 불균형을 조장하면서 결국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그래서 총체적 난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당사자는 의무와 권한을 부여받은 국가뿐이다. 대한민국의 비극이자 희극의 씨앗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