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자판기 전락 중국 증시 …투자자 신뢰 얻으려면
2024-10-23 15:29
이러한 일련의 조치에 대한 주식시장의 평가는 냉정했다. 국경절 연휴에 대한 기대가 충만했던 9월 30일 상하이와 선전 주식시장의 300대 대기업을 포괄하는 CSI 300지수는 8.48% 상승하였다. 연휴 직후인 8일 5.93% 올랐던 이 지수는 다음 날 7.05% 내렸다. 증시 부양책이 발표된 10일 혼조세를 보여주었던 이 지수는 다음 날 2.77% 하락하였다. 국채 발행 확대 계획이 보도된 직후인 14일 이 지수는 1.91% 올랐다가 다음 날 2.66% 떨어졌다. 부동산 대책에 대한 실망감으로 17일 1.13% 하락하였던 이 지수는 인민은행이 예고했던 8,000억 위안 규모의 증시 부양책이 개시된 18일 3.62% 상승하였다.
지난 한 달 동안 주가는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발표할 때마다 상승했다가 다음 날 하락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동전을 넣을 때마다 상품이 나오는 자판기처럼 투자자들은 부양책이 공개되는 날에만 매수했다 그 다음 날 매도했다. 그 결과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대규모 재정 투입이 시행되었던 2008년 이후 가장 높이 상승했던 9월 마지막 주 이후 주가를 하루 이상 올린 부양책이 하나도 없다.
왜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정부의 기대와 달리 미미했을까? 최근 발표된 대책의 규모가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재정부는 아직까지 내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자금을 투입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보여주지 않았다. 부동산 활성화 방안도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부실 채권을 처리하기에도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 상황에 대한 비관적 전망도 주가 상승을 억제하고 있다. 국가통계국이 18일 발표한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4.6%였다. 시장 전망치 4.5%보다 0.1%포인트 높았으나 정부가 설정한 목표인 5%에 못 미쳤다. 작년 3분기 4.9%, 4분기 5.2%, 올해 1분기 5.3%로 상승세였던 성장률이 2분기 4.7%, 3분기 4.6%로 하락세로 전환되어 4분기 전망도 낙관적이지 않다. 13일 공개된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0.4% 올랐으나 전월 대비 0.2% 낮아졌다.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동월 대비 2.8%, 전월 대비 0.6% 각각 하락하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 상실이다. 해외 투자자는 물론 국내 투자자도 최근 경제정책 기조 변화에 대해 확신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이 경제부처에 내수 진작을 위한 대책을 독려했으나 현재까지 나온 조치는 시장의 기대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획기적이지 않았다. 시장은 이번 경기부양책을 장기적인 구조개혁보다는 단기적인 미세조정으로 보고 있다. 즉 이자율 인하 및 재정 투입과 같은 거시정책에 중점이 두어져 정부의 시장개입을 축소하여 민간기업의 역할을 활성화하는 미시정책이 빠져 있다. 주가가 장기적으로 상승할 여건이 조성되었다는 판단이 확실해지기 전까지 투자자들은 주가가 오를 때마다 시세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주식을 매도할 것이다.
중국 주식시장이 자판기가 아니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GDP 대비 1~2%인 1조~2조 위안 규모의 재정 지원이다.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급증한 지방정부의 악성 부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가 아니면 시장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둘째는 더 적극적인 내수 진작이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구형 소비재와 설비를 신제품으로 교체해 주는 이구환신(以舊換新) 정책과 지난달 상하이에서 도입한 소비쿠폰 제도 등이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혁·개방 정신의 회복이다.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 속에서 수입대체 전략을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역할을 축소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진민퇴(國進民退)에서 민진국퇴(民進國退)로 전환이 명백하게 증명되지 않다면 중국에서 철수한 해외 투자자가 복귀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투자자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중국과 별로 다르지 않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여 기업가치를 회복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난달 말 한국거래소는 한국 내 기업 100개로 구성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지수는 9월 17일 973.27에서 10월 18일 1003.20로 한 달 동안 약 30포인트 상승하였다. 이처럼 저조한 실적은 소액주주는 물론 기관투자자까지 존중하지 않는 대기업 오너 일가의 행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시도가 보여주듯이 정부와 대기업이 투자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지 않는다면 미국 증시로 떠난 서학개미가 우리 증시로 돌아올 가능성 역시 희박할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통일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