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진격의 K방산'…수출만큼 안보도 중요

2024-08-12 15:27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차, 자주포, 전투기, 미사일의 수출이 급증하면서 방위사업청은 올해 수출 목표를 작년보다 50% 이상 증대한 200억 달러로 올려 잡았다. 수출 호조로 방산기업의 실적도 역대급으로 증가하였다. 4대 방산기업의 올해 2·4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약 206% 상승하였다. 미국 국방 전문지 디펜스뉴스가 집계한 '2024년 세계 100대 방산기업'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현대로템이 각각 19위, 58위, 73위를 차지했다.

K-방산의 진격은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는 글로벌 차원에서 무력 갈등의 격화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미·중 전략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갈등, 북한의 핵 위협 등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많이 증가하였다. 이런 리스크에 직면한 국가들은 군사적 충돌에 대비하여 군비를 빠르게 확충하고 있다.

둘째는 미국과 EU의 방위산업기반(defense industrial base) 약화이다. 세계 최고의 군사대국인 미국의 방위산업기반은 탈냉전기에 상당히 침식되었다. 탈냉전이 본격화된 1993년 9월 윌리엄 페리 국방부 차관은 주요 방산기업 대표 20여 명을 초대한 ‘최후의 만찬’에서 국방예산의 감축 계획을 통보하면서 방위산업의 구조조정을 권고하였다. 그 결과 50개가 넘었던 방산기업이 인수합병을 통해 5대 기업으로 정리되었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결과는 양면적이다. 기업 규모를 키워 대규모 투자를 통해 최첨단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세계 10대 방산기업의 절반이 미국 기업이다. 그러나 재래식 무기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이 급감한 점은 부정적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공급할 포탄과 탄약이 부족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동맹국에 도움을 받고 있다.

유럽국가들의 방위산업기반은 미국보다 훨씬 더 취약해졌다. 대부분의 EU와 NATO 회원국들은 탈냉전기에 방위비를 인상하지 않았다. 2017년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증대를 강력하게 압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21년 32개 회원국 중 8개국만이 GDP 대비 방위비 비율이 2%를 넘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군사적 위험에 급증했던 2023년에도 9개국이 이 기준을 여전히 충족하지 못했다. 유럽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무기의 거의 대부분은 신형 첨단무기가 아니라 중고 재래식무기였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미국 국방부는 작년 국가방위산업전략(National Defense Industrial Strategy)을 발표하였다. 이 전략의 핵심 기조는 공급망 회복탄력성 강화, 전문인력 양성, 유연한 획득, 경제 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EU도 올해 4월 유럽방위산업전략을 발표하였다. 이 전략은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금융 지원, 우크라이나 방위산업 재건·개발, 유럽 군비 프로그램을 위한 구조 확립, 범 EU 차원의 공급 레짐 안보 및 새로운 방위산업준비 위원회 신설 등을 포함하고 있다. NATO도 올 7월 창설 75주년 회의에서 방산 역량의 획기적 확대 방안에 합의하였다. 냉전 종식 이후 투자 부족이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EU와 NATO는 방위산업기반을 구축하는 데 미국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EU, NATO의 방위산업기반 전략은 K방산 수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미국과 NATO는 우리나라를 전략적으로 협력해야 할 국가로 지목하였다. 우리나라의 강점은 세계적 수준의 전자전기, 중화학, 조선, 항공, 철강금속 산업에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우리나라와 유사한 수준의 제조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냉전기 무기수출 3원칙에 입각해 무기 수출을 제한했다. 2014년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의 도입으로 수출 규제가 완화되었지만, 일본 방산기업이 대규모 무기체계를 독자적으로 수출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K방산의 진격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방산 안보에 주의해야 한다. 수출 증대에만 집중하다 보면 방산기술 유출·방산 공급망 교란·사이버 공격 등의 방산 침해에 취약해질 수 있다. 올해 6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텔레그램에 국산 헬기 수리온(KUH-1) 자료와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의 설계도 등을 판매한다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지난 2월에는 인도네시아 연구원이 한국이 인도네시아와 공동 개발 중인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기밀 자료를 반출하려는 시도가 적발되었다. 2022년에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잠수함 설계도면이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런 문제가 반복될 경우, 미국과 EU는 우리 방산기업과 협력을 제한하거나 거부할 것이다.

방산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국가정보원은 방위산업침해대응센터를 창설하였다. 이 센터는 방위산업기술 및 인력의 해외 유출 차단, 대량파괴무기의 제조·개발·사용에 이용 또는 전용 가능한 전략물자 수출의 통제, 방위산업 기밀을 보호하기 위한 예방 등의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획·설계에서부터 제작·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방산 안보의 일차적 관리 책임은 기업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산침해대응을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규제로 간주하고 있는 기업은 방산침해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국정원·방위사업청 등 7개 정부기관과 방위산업진흥회·국방기술진흥연구원 등 7개 유관단체, 현대로템·LIG넥스원 등 15개 방산업체가 참여하는 방산침해대응협의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와 국책연구소가 기업의 부담을 덜어준다면, 방산 안보와 방산 수출이 상호 발전할 수 있는 협력 체제가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통일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