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라인에 일장기 씌우는 日 …우리의 대응은

2024-05-20 06:00
경제안보와 기업외교로 사태 극복해야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日 총무성의 이례적 행정지도

지난해 11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일본 총무성은 라인야후에 통신의 비밀보호 및 사이버 보안 확보를 위한 행정지도를 지난 3월 5일과 4월 16일에 각각 발표하였다. 행정지도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사안은 “위탁처(네이버)로부터 자본적인 지배를 상당 정도 받는 관계의 재검토를 포함해, 위탁처에의 적절한 관리·감독을 기능시키기 위한 경영 체제의 재검토”에 있다. 총무처는 네이버에게 보유하고 라인야후 지분의 매각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총무성의 행정지도 이후 소프트뱅크는 라인야후에서 네이버를 축출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데자와 다케시(出澤剛) 라인야후 최고경영자는 이번 달 8일 결산설명회에서 소프트뱅크가 네이버보다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해야 하며, 장기적으로 네이버에 위탁한 업무를 순차적으로 축소해 기술적 협력관계를 종식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유일한 한국인 사회이사인 신중호 최고상품책임자(CPO)가 6월 정기 주주총회 이후 사퇴한다는 결정이 공개되었다. 그 다음 날 결산설명회에서 소프트뱅크 야카와 준이치(宮川潤一) 최종경영자도 보안 거버넌스와 사업전략 관점에서 네이버와 자본관계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라인야후에서 네이버를 배제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네이버의 지본적 지배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네이버의 지분 매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네이버의 지분이 사이버 보안을 어떻게 그리고 왜 약화시켰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총무성과 소프트뱅크는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내에서도 행정지도의 궁극적 목적이 사이버 보안의 강화가 아니라 소프트뱅크의 라인야후 경영권 장악 지원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일본 총무성과 소프트뱅크의 전방위적 압박에 대한 우리 정부와 네이버의 대응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미흡했다. 네이버와 관계부처가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했던 것은 물론 정부 내에서 정책도 체계적으로 조율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와 네이버는 총무성과 소프트뱅크의 문제점을 강력하게 추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총무성의 조치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던 만큼, 제대로 대응했다면 이 사태가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쟁점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초동조치 실패 

초동 조치 실패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작년 11월 사이버 보안 사고를 처음 접수했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개인정보 유출을 단순한 사이버 보안 문제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이 문제에 내재되어 있는 지정학적 측면을 간과하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차 행정지도가 발표된 지 10일이 지난 4월 26일에서야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총무성에 사실 관계를 확인하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4월 29일 발표된 보도자료에 포함되어 있는“한·일 외교관계와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문구다. 만약 이 문제가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일본 총무성과 공식적으로 접촉하지 말았어야 했다.

외교부의 대응 조치도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한·일 양국 사이에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기 전까지 외교부는 우리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를 방지하기 위해 일본과 소통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강조했다. 반일 여론이 정점에 달한 5월 17일에서야 강인선 제2차관이 미바에 다이스케(實生泰介)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면담해 네이버가 어떠한 불리한 처분이나 외부의 압력 없이 공정하고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각별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을 뿐이다.

대통령실의 정책 조율 능력도 합격점을 받기 어렵다. 네이버는 10일 지분 매각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소프트뱅크와 성실히 협의해 나가고 있으며 결론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상세한 사항을 공개할 수 없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태윤 정책실장은 5월 13일 공식 브리핑에서 네이버에게 진실되고 구체적인 입장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성 실장의 요청은 네이버가 처음부터 정부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정부가 제대로 도울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비쳤다. 또한 “반일을 조장하는 정치 프레임이 국익을 훼손하고, 우리 기업을 보호하고 이해 관계를 반영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발언도 정치적 역풍을 야기하였다. 야당은 네이버를 보호하기보다 한·일 관계 악화를 우선한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를 매국 정권으로 비판하였다. 반일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자 성 실장은 일본 정부에 지분 매각 조치를 압박하지 말라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글로벌 차원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라인야후 사태와 같은 해외투자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24일 중국의 바이트댄스가 개발한 틱톡의 미국 내 서비스를 매각하도록 규정한 법안에 서명하였다. 또한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US스틸의 주주가 지난달 12일 승인한 일본제철의 인수합병안을 엄격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미국은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쟁국인 중국 기업뿐만 아니라 동맹국인 일본 기업까지 제재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안보 정책조율과 기업외교 강화  

우리 기업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는 경제안보 정책결정 과정의 정비가 필요하다. 라인야후 사태에서 일본 총무성은 소프트뱅크와 긴밀하게 협조하여 네이버를 압박하였다. 반면 네이버는 우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외교부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차이는 이 사태에 접근하는 서로 다른 방식에서 기인한다. 일본 정부는 라인야후의 해킹을 경제안보의 문제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네이버의 지분 매각을 요구했던 것이다. 반면, 우리 정부에서는 해킹을 기술적 문제로 보았기 때문에 총무성의 행정지도를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경제안보 현안에 대한 정책조율을 정책실보다 국가안보실에서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올해 1월 신설된 국가안보실 제3차장 산하에 경제안보비서관과 사이버안보비서관이 이런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는 기업외교(corporate diplomacy)를 강화해야 한다. 해외투자 리스크 관리 능력에서 소프트뱅크가 호랑이라면 네이버는 하룻강아지에 불과하다. 손정의 회장이 설립한 소프트뱅크는 글로벌 차원에서 인수합병을 통해 사세를 확대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반면, 네이버의 해외투자 사례는 매우 일천하다. 이러한 격차는 라인야후의 사내이사 구성에도 반영되어 있다. 양사가 라인야후 지주회사 A홀딩스에서 동일한 지분을 보유했지만, 네이버는 사내이사를 1명, 소프트뱅크는 6명을 각각 확보하였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기업외교와 글로벌 대관업무의 차이다. 첫째, 전자는 기업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직접 관리하는 활동인 반면, 후자는 정부에게 문제 해결을 의뢰/위탁하는 방법이다. 둘째, 전자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사전에 대비하려는 노력인 반면, 후자는 사후에 피해를 수습하려는 방안이다. 따라서 전자에서 기업의 역할은 능동적인 반면, 후자에서 수동적이다. 기업외교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에 대한 의존을 축소하고 독자적인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제안보와 기업외교의 상충 가능성도 유의해야 한다. 국가이익과 기업이익은 항상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은 국가전략에 배치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미국 정부의 대중 제재에도 불구하고 애플과 테슬라는 대중 투자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 또한 중국의 CATL은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포드와 합작기업을 설립하였다. 이런 점에서 정부와 기업은 공통점을 최대화하고 차이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소통 채널을 유지해야 한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통일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