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머스크의 자유 혹은 방종?

2024-10-04 06:00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지구상에서 돈이 가장 많은 사업가가 수억 명에 달하는 온라인 추종자를 갖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의 행동 하나 하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전 세계 경제뿐 아니라 정치, 사회 등 모든 분야를 쥐락펴락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되지 않을까? 이는 상상 속 인물이 아니고 바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에 대한 이야기다. 전기 자동차, 우주 및 위성 사업을 통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그는 이제 서서히 미국 및 세계의 정세를 흔드는 권력자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변신의 배경에는 역시 그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X(과거 트위터)가 있다. 머스크는 2년 전 440억 달러를 들여 X를 인수한 후 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높여 왔고 이제는 대놓고 정치 및 사회 분야에서 강력하게 자기 주장을 피력한다. 무려 2억명이 폴로하는 그의 X 계정은 점차 정치적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머스크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공식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고 그와 두 시간 넘는 대화를 X를 통해 방송했다. 그 밖에도 영국, 호주, 브라질, 인도, 베네수엘라 등 외국의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 깊이 관여하며 그 나라 정부들과의 대결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머스크는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아래 X가 어떤 의견도 가능하면 여과 없이 허용하는 정책을 고수한다. 가짜 정보나 유해한 정보가 설사 있더라도 결국은 진실되고 건강한 정보가 승리할 것이라는 고전적 자유주의 언론관을 고집한다. 그런 이유로 X 인수 후 유해 내용을 걸러내는 인력을 75%나 줄였다. 그러나 오늘날 인터넷, 특히 소셜 미디어가 갈수록 자정 기능을 잃어 버리고 증오와 폭력을 조장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그는 인정하지 않는다. 근거 없는 음모들이 난무해서 사회 혼란이 야기될 수 있음에도 그의 자유 방임 정책은 여전하다.

이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소유한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고 나름대로 자정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인스타그램은 최근 청소년에게 미치는 해악을 줄이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았다. 10대들이 게시하는 내용물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게 했고 이들의 인스타그램 사용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머스크 역시 X를 인수하기 전에는 정치와 거리를 두었고 선거 때에도 지지 후보를 밝힌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최근 행보는 전혀 다르다. 공식적으로 후보 지지를 밝힐 뿐 아니라 각종 민감한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공격적으로 자기 의견을 피력한다. 반이민적 정책을 지지하고 여성이나 성소수자를 폄하하는 내용도 공유한다. 이를 통해 극우 보수적인 자신의 이념을 간간이 노출시킨다. 얼마 전에는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표현한 인공지능의 영상을 공유한 적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그의 정치·사회적 언행이 그의 사업과 이해 충돌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테슬라는 현재 미국 정부에서 많은 보조금을 지급받고 있고 스페이스 X 역시 연방정부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 대선의 향방은 그의 사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거기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한테서 당선 시에 연방정부의 비효율과 낭비를 줄이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맡아 달라는 제의까지 받은 실정이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이는 엄청난 정경 유착의 소지가 있다.

머스크와 관련된 논란은 미국 내에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브라질 대법원은 X가 극우 보수 성향 내용들을 여과 없이 게재해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고 경고하며 자국 내 X를 금지한 바 있다. 머스크는 표현의 자유를 들어 버텼지만 결국은 항복하고 문제가 되는 계정들을 삭제하기로 했다. 이뿐 아니라 그는 영국의 최근 인종 폭동 사태와 관련해 영국 정부를 공격하기도 했고 다른 일로 호주 정부와도 설전을 벌인 바 있다. EU에서는 증오와 폭력을 조장한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인도와 터키에서는 비슷한 논란이 있었지만 X는 이들 권위적 정부의 압력에 굴복한 바 있다.

X를 통한 머스크의 행보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친 바 있지만 다행히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파리 올림픽 때에는 사격선수 김예지의 멋진 사격 자세 사진을 공유하며 액션 영화에 캐스팅해야 한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 결과 김예지는 일약 스타가 되었고 결국은 한 영화에 킬러역으로 캐스팅되었다. 머스크의 영향력이 정치,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문화 모든 면에 퍼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는 이러한 막강한 영향력에는 이에 따르는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머스크가 주창하는 자유주의적 언론관은 벌써 오래전 도전을 받아 쇠퇴했고 이제는 언론의 사회 책임론이 대세가 되었다. 즉 언론이 권한만큼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고 이를 위해 자율 규제가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권력에 의한 타율 규제보다는 훨씬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형태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특히 그렇다. 더구나 초고도화된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소셜 미디어의 경우 타율 규제는 사실상 매우 어렵다. 규제 기관보다 훨씬 앞서가는 산업계의 기술력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머스크의 자발적이고 책임 있는 조치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