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증오와 환멸의 정치판 …'현직 프리미엄' 어디로?

2024-07-02 06:00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지난주 미국 대선 후보 바이든 현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간에 벌어진 TV 토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승으로 끝난 듯하다. 방송 직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67%가 트럼프의 승리라고 평가했고 바이든은 단지 33%에 지나지 않았다. 큰 이변이 없다면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가 예견된다. TV 토론에서 트럼프는 활기 넘치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점수를 딴 반면 바이든은 무기력한 목소리로 더듬기까지 해서 81세의 쇠약한 노인이라는 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바이든의 패배가 예상되는 이유는 단지 한 번의 TV 토론 때문만은 아니다. 그전에도 바이든은 주요 경합 주 일곱 군데 중 5곳에서 트럼프에 뒤지고 있었다. 현직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높은 물가 등 경제 문제에 발목이 잡혀 40%를 밑도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회계 부정이나 선거 부정 등 각종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승리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었다.

현 대통령 바이든이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이는 현대 세계 정치 무대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기이한 추세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바로 현직 정치인이 갈수록 선거에서 고전하거나 패배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많은 국가에서 벌어지는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 총리 등 정치 지도자가 낙마하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CNN 방송의 해설가인 마이클 스메르코니시(Michael Smerconish)는 과거에는 현직 정치인 70%가 재선에 성공했지만 지금은 재선 확률이 30%로 떨어졌다고 밝힌다.

특히 올해는 전 세계 인구의 반 정도가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새로 뽑는 해인데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인도의 선거에서 모디 총리의 집권당 BJP는 압승을 예상했지만 10년 만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해 연정을 구성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넬슨 만델라의 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집권당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해 30년 만에 단독 장기 집권을 마감했다.

개별 국가는 아니지만 유럽연합(EU)의 선거에서도 극우 정당의 약진으로 이 연합의 두 축인 독일과 프랑스의 집권당에 큰 패배를 안겨주었다. 이에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단행했지만 극우정당인 야당 국민연합(RN)의 승리가 전망된다. 영국에서도 곧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데 리시 수낵 총리가 이끄는 집권 보수당의 패배가 예상된다. 지난 4월 한국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야당인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어 윤석열 대통령 정부에 큰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이렇게 집권당이나 현직 정치인이 갈수록 고전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뉴아메리카(New America)의 선임연구원인 리 드러트먼(Lee Drutman)은 타임지 기고에서 기존 정치인에 대한 깊은 불신과 환멸이 그 이유라고 밝히고 있다.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끊임없는 감시와 비판 속에서 정치인의 비리나 비행이 노출되고 그에 따라 기존 정치인에 대한 환멸이 극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서 진영논리에 따른 양극화는 이런 현상을 부채질한다.

이런 현상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그에 따르면 1936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 대통령 14명 중 11명이 재선에 성공했는데 그때는 소위 현직 프리미엄이 잘 작용하고 있었다. 현직 대통령이 쉽게 재선되었던 큰 이유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정치적 타성 때문에 유권자들이 과거 자신이 당선시켰던 후보를 다시 지지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현직 대통령은 캠페인 경험이 있고 경기 부양책 등을 통해 국정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언론의 조명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고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프라이머리(예비선거) 과정에서 집중 공격을 받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과거에는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부동층을 끌어들이기가 수월했다. 이들은 과거 대개 중립성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온건한 성향을 보였으나 현재 이들 부동층은 정치를 극도로 혐오하는 파괴적인 양상을 보인다. 젊은 층과 노동 계층이 주를 이유는 이들 부동층은 이 때문에 계속적으로 큰 변화를 원하고 동시에 새 인물을 선호하는 속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직 정치인의 프리미엄이 갈수록 퇴색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증오와 환멸로 가득 찬 정치판을 바꿔야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기존 정치인 대신 새로운 인물을 내세우는 것이다. 집권당의 입장에서는 선거에서 패배하기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통해 정권을 연장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미국 민주당 내에서 이번 TV 토론에서 참패한 바이든 대통령 대신 새로운 얼굴의 대타를 내세워 11월 선거를 치르자는 움직임이 있는 점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 어느 나라보다 새로운 정치인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이다. 기존 정치인에 대한 환멸이 아마 가장 극도로 심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