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희비 갈린 삼성 SK 주가 …총수 '스킨십'이 변수?
2024-06-05 06:00
최근 한국 경제계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삼성전자가 침체하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부상하는 점이다. 삼성전자 주식은 제자리걸음인 반면 SK하이닉스 주가는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인공지능에서 필수적인 HBM(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선전하는 반면 삼성전자는 뒤처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총수의 사법 리스크가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각종 재판으로 감옥을 드나들며 발이 묶여 첨단 기술 시장에서 필수적인 해외 사업 개척을 못 했던 점이 지적된다.
오늘날 경제 및 기업 활동에서 해외 출장을 나가 외국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접촉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얼마나 중요할까? 이 점은 지난주 UAE(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의 한국 방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한국에서 1박 2일에 걸친 바쁜 일정 중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을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자택에서 ‘내 친구’라는 글귀가 적힌 사인을 내걸고 그를 따뜻하게 맞았다. 두 사람은 거의 연인 사이처럼 서로를 끌어안았고 오랫동안 얘기하며 지난 시간 우정을 돌아봤다. UAE 대통령은 미리 13가지 음식을 준비해 이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들의 각별한 관계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은 UAE가 발주한 원자력발전소 4기 건설 사업을 따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이 대통령은 당시 아부다비 왕세자였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현 대통령과 담판을 통해 프랑스로 넘어가려던 이 사업을 극적으로 수주하게 된다. 공사비와 유지관리비를 합해 400억 달러에 달하는 이 사업은 한국 역사상 최대 해외 사업이다. 이러한 성공 배경에는 두 사람이 맺은 인간적인 관계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결국은 사업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인적 관계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업에 있어 인간관계는 특히 중동, 남미, 동남아시아 등 집단적이고 감성적 문화에 있어 더욱 중요하다. 이들 국가와 협상할 때는 가격, 기술 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상호 신뢰와 이해에 바탕을 둔 인간관계가 더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북미나 서유럽의 개인주의적이고 이성적인 문화와는 차이가 있다. 사실 한국 기업인들은 오래전부터 이 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일찍부터 외국의 경제 및 정계 지도자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많은 사업을 수행했다. 특히 폴란드 등 과거 공산권이나 리비아 등 중동, 아프리카 내 사업에서 이를 잘 활용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도 이 점에 있어 돋보였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런 점이 덜 작용한다. 인간관계보다는 숫자를 중시하는 보다 타산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에서도 결국 기업 활동은 기업인이 하기 때문에 인적 접촉, 스킨십이 도움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한국의 그룹 총수들과 장시간 만나 개인적인 얘기를 하며 친분을 쌓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인터넷과 통신기술 발달로 이제는 장시간 여행을 하며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고 협상하는 것이 불필요해졌지만 그럴수록 대면 접촉과 스킨십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어찌보면 SK하이닉스의 최근 호조는 최태원 회장의 잦은 해외 나들이와 해외 인사 접촉과도 무관하지 않다. 부산엑스포 유치위원장, 상공회의소 회장 등 여러 공적 직책을 동시에 수행하는 그는 해외를 가장 자주 드나드는 한국 기업인 중 한 사람이다. 단순한 기업 파트너뿐 아니라 학자, 외교관, 언론인 등 다양한 외국 인사들과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 최종현학술원을 통해 다양한 국제회의를 개최해 참여하며 세계를 읽고 미래를 예측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반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선대 이건희 회장에게서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물려받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거의 7년을 사법 리스크에 묶여 지냈고 그 때문에 해외 사업 및 신사업 개발에 전념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그는 두 번이나 투옥되어 1년 반 이상 형을 살았다. 밖에 있으면서도 어떤 때는 거의 매주 법정에 출석해야 했다. 지금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경영권 승계 문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연초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이 났으나 검찰이 상고하여 2심이 시작되어 앞으로 기약 없는 법정 출석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행인 것은 국정농단 등 다른 사법 사안은 대부분 종결되어 전보다는 이 회장 행보가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2022년 10월 공식적으로 회장에 취임해서는 8개월 동안 지구 두 바퀴 반에 해당하는 무려 9만5000㎞를 날아다니며 해외 파트너들을 만나고 비즈니스를 관리했다. 금년 2월에는 경영권 승계건 1심 무죄 판결이 나자마자 그 다음날 바로 UAE행 비행기에 올라 탔다. 이 회장이 이런 잦은 출장과 인적 접촉을 통해 침체된 삼성의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 사업을 얼마나 재기시킬지 두고 볼 일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