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윤 대통령, '사단장은 빼라' 지시 인정하고 정당성 설득했더라면

2024-09-23 21:24
·처음 의혹 불거졌을 때 상황 바로 보고 국민 동의 구했다면
·특검법 공세 명분 잃고 탄핵 주장도 호응 받기 어려웠을 것
·이 모든 게 대통령의 정치력 빈곤 때문…이 사건 뿐이겠는가

 
해병대원 특검법에 대한 입법 청문회가 진행되는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앞줄 왼쪽부터),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출석해 묵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해병대원 특검법, 벌써 세번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해병대원 특검법을 국민의힘 의원 퇴장 속에 강행 통과시켰다. 해병대원 특검법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수사 대상에서 빼라고 국방부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핵심 수사 대상으로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월과 7월에도 그랬다. 그때마다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로 맞섰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그럴 게 확실하다. 똑같은 법안에 세 번씩이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 윤 대통령으로선 징글징글할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은 정치 공세로 일관하는 민주당을 탓할 것이다. 민주당 탓도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일련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사태의 근본 원인은 윤 대통령의 정치력 문제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윤 대통령 수사 개입 의혹이 처음 불거진 것은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등장하는 직책들은 사건 당시 기준임)이 항명 혐의로 국방부 조사를 받으면서 제출한 진술서에서였다. 앞서 지난해 7월 19일 해병대원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박 단장은 7월 30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북경찰청에 이첩하겠다고 국방부에 보고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이를 결재했다. 그런데 하루 만인 7월 31일 결재를 번복하고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을 통해 박 단장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그럼에도 박 단장은 8월 2일 오전 경북경찰청에 수사기록을 이첩했다. 국방부는 당일 오후 경북경찰청에서 수사기록을  회수했다. 그리고 박 단장을 항명 혐의로 입건했다. 국방부는 8월 9일 이 사건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하고 재조사를 거쳐 8월 24일 임성근 사단장 등을 뺀 대대장 2명의 수사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8월 28일 박 단장을 항명 혐의로 소환조사했다. 이때 박 단장이 사건의 경찰 이첩 보류 배경에 윤 대통령 의중이 작용했다는 취지의 진술서를 국방부에 제출한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진술서 내용에 따르면 7월 31일 박 단장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도대체 국방부에서 왜 그러는(임성근 사단장을 혐의 대상에서 빼라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김 사령관이 ‘(오늘) 오전 대통령실에서 VIP(대통령) 주재 회의 도중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박 단장이 ‘정말 VIP가 맞습니까’라고 묻자 김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윤 대통령이 임성근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서  빼라고 했다는 외압 의혹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에 비춰 보면 윤 대통령 개입이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난해 사건 당시 윤 대통령과 이종섭 장관이 통화한 기록이 결정적 정황이다.  


통화 기록에서 나타나는 대통령 개입 정황
 

이 장관은 7월 31일 해병대 수사단의 언론 브리핑이 국방부 지시로 취소되기 직전에 대통령실 일반 전화를 받은 사실이 나타났다. 이 장관이 당일 오전 11시 54분쯤 '02-800'으로 시작하는 대통령실 일반 전화를 받아 168초 동안 통화했다고 한다. 당시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 넣은 조사 결과를 언론에 브리핑하려 했다. 이 장관은 이 통화를 마치고 오전 11시 57분쯤 김계환 사령관에게 브리핑 취소와 사건 기록의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날은 김 사령관이 박 단장에게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다는 날이다. 대통령이 격노해 국방부가 언론 브리핑 취소와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게 아닌지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윤 대통령은  8월 2일 낮 12시 7분, 43분, 57분 세 차례에 걸쳐 이종섭 장관에게 전화를 건 사실도 통신사실 조회에서 나타났다. 당일 오전 10시 30분쯤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사단장 등 8명 수사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고, 국방부는 오후 7시 20분쯤 이를 회수했다. 이 장관이 수사 기록이 경찰에 이첩된 상태에서 대통령 전화를 받았고, 대통령 지시로 수사 기록을 회수토록 해병대 사령관에게 지시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할 만한 정황이다. 

 

윤 대통령은  8월 8일 오전 7시 55분에도 이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33초간 통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하루 뒤인 8월 9일 국방부 조사본부에 해병대원 사망 사건 재검토를 맡기기로 하는 결정이 이뤄졌다. 이 결정과 대통령 지시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의심하게 한다. 



이처럼 여러 정황들이 윤 대통령 개입이 사실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데도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부인하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해 9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대통령과 통화했는지를 묻는 야당 의원 질의에 "이 건과 관련해서 통화한 게 없다"고 답했다. 이 장관 측 변호인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는 통화를 한 적 없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고 설명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지난 6월 야당 주도로 열린 '해병대원 특검법 입법청문회'에서 'VIP 격노설'을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전했냐는 의원들 질의에 '수사 사항이라 답변할 수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이 자리에서 박 단장은 거듭 김 사령관에게 'VIP 격노설'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윤 대통령의 정치력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만약 윤 대통령이 진작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 걸어 임성근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서 빼라고 지시했다’고 당당히 밝히고, 왜 그게 옳은 판단이었는지를 국민들에게 설명했으면 어땠을까? ‘임성근 사단장에게 지휘 책임을 물어 적절한 인사 조치를 취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형사적 책임까지 물어야 할 일은 아니다.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면 어땠을까? 



대통령 지시, '불법 수사 개입'으로 볼 수 없어

윤 대통령은 2022년 11월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책임자 문책 요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책임이)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거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해병대원 사건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여기에 수긍할 국민도 많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에게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서 빼라’고 지시했다고 해도 그걸 위법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정부조직법 제11조는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명령이나 처분이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인정하면 이를 중지 또는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종섭 장관은 당초 박정훈 수사단장의 보고를 받고 임성근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 넣기로 한 조사 결과를 결재했다. 윤 대통령은 이 사실을 보고받고 이 장관의 결재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래서 정부조직법 규정에 따라 국방부 장관에게 그 처분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면 위법이라 할 수 없다. 



국가공무원법 제57조는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장관의 상관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결재 처분 취소를 지시하고, 이 장관이 대통령 지시에 따라 결재를 번복하고 수사 기록을 이첩하지 말라고 해병대 사령관에게 지시한 것 역시 위법이 아니다. 군사경찰직무법 제5조 ④항은 ‘군사경찰부대가 설치돼 있는 부대의 장(이번 사건에서는 해병대 사령관)은 군사경찰직무를 관장하고 소속 경찰을 지휘·감독한다’고 정하고 있다. 해병대 사령관이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은 ‘소속 경찰에 대한 지휘·감독’ 규정에 따른 합법적인 조치다.



야당 측에서는 윤 대통령이 ‘수사’에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의 이번 사건 수사는 기소를 전제로 한 법률적 의미의 수사가 아니다. 과거에는 군대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수사권을 군 검찰이나 헌병대 같은 군 수사기관이 가졌다. 그러나 군 수사기관의 수사 범위를 정한 군사법원법 제2조가 2021년 8월 31일 개정돼 이제는 그렇지 않다. 개정된 법은 2022년 7월 1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군대 내 성폭력 범죄, 군인이 사망에 이르게 된 범죄, 과거 군에 입대하기 전에 저지른 범죄 등 3대 범죄에 대해선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권을 갖는다. 군사법원법 제228조는 군 수사기관이 이 3대 범죄를 인지했을 때 검찰이나 경찰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3대 범죄에 대한 수사 절차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7조는 ‘지체없이’ 이첩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해병대원 사망 사건은 이 3대 범죄에 해당한다. 따라서 해병대 수사단은 이 사건을 수사할 권한이 없다. 경찰에 사건을 ‘지체없이’ 이첩하면 임무가 끝난다. 수사 범위와 대상은 경찰이 정하게 된다.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는  기소를 전제로 한 법률적 의미의 수사가 아니라 경찰에 이첩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서 ‘조사’에 해당한다고 보는 게 맞는다. 사법 절차가 아니라 행정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이종섭 장관의 결재나 결재 번복 처분 역시 행정 절차이지 사법 절차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에게 처분을 취소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수사 개입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권이 없는데 어떻게 수사에 개입한다는  말인가?



정치인 덕목 통찰력·결단력 부족


아무리 이치가 이렇다고 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막상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한 게 사실이라고 인정하면 야당 측은 곧바로 탄핵 공세를 펼 게 뻔하다. 그러나 대통령 지시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조사한다는 특검법 제정 공세는 명분을 잃게 된다. 윤 대통령에게는 이렇게만 돼도 큰 성공이다. 나아가 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안 되는지, 그게 왜 부당한지에 관해  다수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 설득한다면, 그리고 대통령실이 정부조직법, 국가공무원법, 군사법원법, 군사경찰직무법 규정에 따라 알기 쉽게 설명한다면 불법 수사 개입이라며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론의 호응을 받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국방부 지시 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졌다.  



정치 지도자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돌파하느냐를 좌우하는 게 정치력이다. 정치력의 핵심은 상황을 정확하게 헤아리는 통찰력, 필요한 조치를 적기에 실행하는 결단력, 국민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력일 것이다. 윤 대통령이 수사 개입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상황을 바로 보고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한 사실을 인정했다면, 그리고 왜 그렇게 하는 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당했는지를 납득시켰다면 지금 사정은 많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위법을 저지르고, 진실을 숨기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과 비판을 받는 처지에 빠지지는 않았을 수 있다. 이 모든 게 결국 윤 대통령의 정치력 문제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게 어디 해병대원 사건뿐이겠는가? 김건희 여사 문제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