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다수 시민을 위한 정치적 효능감

2024-08-06 06:00

총선이 3주가량 남았을 무렵 격전지를 돌아다니며 시민들을 만났다. 시장에서 40년째 만둣집을 운영해 온 사장님, 포장마차에서 야식거리로 호떡을 구매한 손님. 조심스레 기자임을 밝히고 이번 투표를 어떻게 하실 거냐고 여쭤보면 열에 일곱은 같은 말을 내뱉었다. "누굴 뽑든 똑같아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 뒤늦게서야 솔직한 표심을 밝히기도 했으나, 그마저도 마지못해 내리는 판단이라는 티가 났다. 다수의 시민은 본인의 삶을 변화시킬 만한 인물과 정당은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21대 국회가 종료되고 22대 국회가 시작됐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정치적 효능감은 달라질 게 없을 듯하다. '일하는 국회, 효능감 있는 정치'. 이전 국회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출발한 22대 국회는 여야 합의로 처리된 법안을 찾아볼 수 없다.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은 법안은 6개에 불과하지만, 이마저도 야당 주도로 처리된 법안이라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유력하다. 전체 상임위원회 16곳 중 8곳은 법안 심사를 한 건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탄핵안은 7번 발의됐다. 민생은 뒷전으로 뒀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반면 정당 지지자들은 외려 정쟁으로 가득 찬 국회에서 효능감을 느끼고 있다.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탄핵하겠다" 등의 강경 발언이 나올 때마다 환호 소리가 커지는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지도부 후보들은 득표를 위해 본인이 얼마나 잘 싸울 수 있는 투사인지 증명해 보인다. 하도 소리를 질러 목이 갈라지기도 하지만, 그조차도 훈장으로 여겨진다. 전투력을 증명해 보인 지도부들이 쟁점 상임위와 본회의 법안 처리 과정에서 상대 당 의원, 정부 관계자들과 다투면 효능감은 더 올라간다.

집권이 목표인 정당에 정쟁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쟁만이 목표가 된 국회는 다수 시민에게 정치적 소외감을 안긴다. 정당 지지자만이 아닌 다수 시민이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국회가 필요하다. 입법 절차가 복잡한 미국 의회는 입법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다. 미국 하원에 설치된 '본회의 의안목록제'(Calendar)가 대표적이다. 상임위 심사를 마친 법안을 쟁점 법안, 비쟁점 법안, 예산 소요 법안 등 성격별로 구분해 별도의 심사 절차를 거치도록 한 제도다. 양당이 쟁점 법안으로 끝없는 대치를 이어가더라도 합의 수준이 높은 법안의 입법 희생을 줄일 수 있다.

고물가·고금리로 서민들이 고통받고 있다. 신용이 낮은 이들은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다 신변 위협 등의 추심을 견디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 주변 이의 삶까지 파괴하는 금융 범죄이지만, 정쟁에 밀려 관련 법이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기록적 폭우로 인한 피해 대책도 마찬가지다. 채 상병 사망 수사 외압과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의혹, 검사 탄핵 등 국회를 점령하고 있는 의제 뒤에 가려진 삶이 존재한다. 이들의 삶도 함께 고민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다수 시민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낄 때 정당의 집권 가능성도 올라갈 것이다.
 
[사진=김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