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덜 오르고 더 내린 '코스닥 디스카운트'

2024-07-04 06:0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업공개(IPO) 절차를 밟아 증권시장에 상장한 기업에 '증시에 입성(入城)했다'는 비유를 쓴다. 상당히 반어적인 표현이다. 안락한 성채나 요새가 아닌 냉혹한 자본시장·금융투자 세계의 생리로 돌아가는 전장에 가깝다는 의미다.

상장 기업들은 경기 침체와 시장 규제 등 경영 부담, 업황과 자본시장 리스크에 맞서 사업을 일으키고 좋은 경영 성과를 거두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인다. 증시는 성과를 거둔 기업에 성장에 필요한 기술·인재·인프라 재원 확보와 명성을 승자의 전리품으로 안겨 줄 수 있는 전쟁터다.

요즘 한국 증시를 보면 이런 관점을 유지하기 어렵다.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즉 국내 증시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저평가 현상 얘기다. 올 상반기 증권사들의 국내 증시 IPO 주관 실적은 1조5000억원가량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58% 늘었지만, 그렇게 상장한 종목 60% 이상이 공모가를 밑돈다.

상장 레이스를 벌인 주관사와 해당 기업이 공모가를 욕심껏 높여 잡은 탓이 없진 않겠지만, 증시 입성 당일까진 그 몇 배의 시초가를 형성하며 활발히 거래됐다. 다만 상장 당일 높은 시초가보다 더 높은 가격에 추가 매수 등을 결정한 투자자들이 많지 않았다.

이는 해당 기업의 중장기 성장 여력에 대한 투자자의 기대가 매우 약하다는 신호다. 이제 막 투입돼 아직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새내기주'가 고질적인 증시 전반의 저평가 인식에 휩쓸려 불이익을 당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증시 저평가 현상은 상장 기업들의 공정한 경쟁, 건전한 성장에 필요한 기술 및 인프라 투자 재원 확보, 성장과 재투자, 주주 이익 환원이라는 선순환 구조 확립을 어렵게 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정부도 이러한 인식으로 상반기 내내 증시 부양책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의지를 연일 강조하고 있다.

증권가는 기업 밸류업 참여 종목의 주가 상승과 투자 심리 회복이 장기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정부의 일관된 정책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상반기엔 특히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 또는 '낮은 주가수익비율(PER)과 높은 자기자본이익률(POE), 고배당' 종목에 투자자 관심이 집중되며 지수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본격적인 제도 시행에 앞서 투자자 관심 유발로 나타난 밸류업 초기 효과는 코스닥이 아니라 코스피에 집중됐다. 대미 수출 회복과 금리 하락 효과를 함께 누릴 수 있는 반도체, 금융, 차, 조선, 에너지 등 기간산업과 대형 종목에 관심이 쏠린 사이 정작 자금 수혈이 필요한 코스닥 성장주는 외면당했다.

올 상반기 새내기주 대부분이 진입했으며 성장주 비중이 절대적인 코스닥은 우리 증시가 오를 때 덜 오르고 내릴 때 더 내렸다. 이차전지, 바이오 등이 글로벌 밸류체인 악재로 부진했다. 하반기 수출 회복과 시장 흐름 전환으로 실적 회복을 통해 주가 반등 기회를 얻겠지만 밸류업의 지원사격이 절실해 보인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의 핵심은 "기업 현황 진단과 미래 성장·투자·주주환원 전략을 경영진 판단에 따라 '기업가치 제고 계획'이란 이름으로 자율 공시하는 것"이다. 이는 구성원 간 정보 공유와 의사 결정이 원활하고 경영진이 외부에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자신 있게 계량적·정성적 지표를 내놓도록 요구한다.

상장사 2500여 개 중 이 자율 프로그램에 굳이 참여하려는 곳은 거의 없다. 공시를 받기 시작한 5월 하순부터 약 한 달 남짓 기간에 실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낸 회사는 코스피 두 곳(키움증권, 콜마홀딩스)과 코스닥 한 곳(에프앤가이드)뿐이다. '앞으로 공시 예정'이라고 한 사례까지 모아도 총 9곳에 불과하다.

정부는 밸류업 프로그램 정책 실효성 확보를 위해 세제 지원과 같은 혜택으로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 참여 기업에 대한 투자를 촉진할 투자 지표 개발과 금융투자 세제 개편 등을 검토 중이다. 새내기주를 포함한 성장 기업의 참여 부담을 덜고 이들에 대한 투자를 촉진할 세부안이 함께 마련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