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기의 핀하이] 계속되는 금융권 횡령…책무구조도 '공염불' 우려

2024-06-26 07:00
해마다 반복되는 대규모 사고…'솜방망이 처벌' 개선 없으면 새 제도도 무용지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금융권에서 횡령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6년간 발생한 횡령 규모는 1804억원에 달한다. 올해 들어 발생한 것만 해도 10건, 총 14억135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마저도 최근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105억원 규모의 횡령은 제외된 수치다. 해당 사고가 횡령이 아닌 사기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은행서 매년 수백억대 사고…고개 숙인 은행장들
문제는 최근 해를 거르지 않고 대규모 횡령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56억6780만원이었던 연간 횡령 규모는 2019년 84억5870만원, 2020년 20억8290만원, 2021년 156억9460만원, 2022년 827억5620만원, 지난해 642억6070만원 등으로 확대됐다. 특히 최근 대규모 횡령이 반복적으로 적발되면서 연간 횡령액 규모가 수백억원 수준으로 커졌다.

이목을 끄는 점은 대규모 횡령이 주로 은행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6년간 금융권에서 발생한 1804억원 규모의 횡령 중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85%(1533억원)에 달한다. 2022년 우리은행, 지난해 BNK경남은행 등 회자되는 ‘역대급’ 횡령 사건들도 대부분 은행에서 발생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을 대표하는 은행의 수장이 매년 “죄송하다”며 고개 숙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22년 우리은행에서 700억원대 횡령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원덕 당시 우리은행장은 “고객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예경탁 BNK경남은행장도 지난해 대규모 횡령 사고 발생 직후 “고객과 지역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 조금의 고객 피해도 없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105억2000만원 규모의 금융사고는 사기로 분류돼 이번 집계에서는 제외됐지만 금융권에서는 해당 사고를 사실상 횡령으로 보고 있다. 부당대출 등을 통해 은행 자금을 편취·유용해 가상자산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결국 조병규 우리은행장도 지난 19일 “우리은행을 사랑해주는 고객과 국민께 걱정을 끼쳐드리게 돼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 철저히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을 개선해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사과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이 지난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은행장 간담회 참석을 앞두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덕적 해이 부추기는 ‘솜방망이 처벌’…책무구조도 공염불 우려
횡령을 비롯한 금융사고에 대한 비판의 화살은 일반적으로 은행권에 쏠린다. 일반적으로 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가 타 업권 사고보다 규모가 큰 데다가 ‘제1금융’이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6년간 △저축은행 164억5730만원 △증권 60억6100만원 △보험 43억2000만원 △카드 2억6100만원 등 다양한 업권에서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융권 전반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원인으로는 횡령액 회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처벌도 무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6년간 발생한 횡령액 1804억2740만원 중 지금까지 회수된 금액은 175억4660만원(9.7%)에 불과하다. 지난해 발생한 횡령 사고로 범위를 좁히면 회수율은 2.4%까지 떨어진다.

700억원대 횡령을 저지른 우리은행 전 직원은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제대로 된 회수·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한탕주의’가 공공연하게 언급되는 현재 상황으로 이어진다.

상대적 박탈감이 금융권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해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사회가 된다면 금융당국이 야심차게 준비한 ‘책무구조도’ 역시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내부통제가 의식 개선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내부통제 실패’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횡령이라는 게 마음먹고 저지르는 범죄라 미리 알아채고 예방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금융사로서는 최대한 빠르게 발견하는 데 의의를 두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몇 년 살고 나오면 수백억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실제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책무구주도 등 내부통제 제도를 강화하고 회수·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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