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어글리 대한민국'을 고발합니다
2024-06-25 06:00
후진 퇴행 반민주성
대한민국은 인구 5000만명이 넘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이른바 50-30클럽에 속한다. 50-30클럽의 회원국은 단 7개국이다. 더 나아가 한국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민주화의 금자탑을 이루어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도약한 유일한 국가이다. 그런데 현 정부 2년 만에 대한민국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경제는 추락하고 사회는 분열되고 문화는 침체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리더십 리스크가 있다. 정치를 외면한 채 그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은 총선에 패배해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여당도 대통령의 애완견처럼 꼬리치기에 급급할 뿐 대안도 없이 몽니만 부린다. 예전에는 그래도 보수의 실력을 어느 정도 인정했으나 이제 그런 모습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필자는 다음 세 개의 장면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글리 코리아를 고발하고자 한다.
장면 1 : 후진성
신병교육대에서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던 훈련병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와 같은 사건이 지난 5월에만 해도 군내에서 여러 건 일어났다고 한다. 국민의 의무가 청년의 삶을 삼키는 문제는 우리 군의 오랜 비극임에도 방치되고 있었다.
안전사고와 군기사고의 건수를 비교하면 뚜렷한 추세가 확인된다. 1997년에는 사망자 수(273명)가 월등히 많고 안전사고의 비중(63%)이 높았다. 안전사고의 원인으로는 차량사고가 1위를 차지하고, 그 뒤를 이어 익사와 추락·충격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그러한 추세는 2003년을 전후로 뒤바뀌었다.
최근 5년간 차이는 더욱 극적으로 벌어져 사고의 절대다수가 군기사고이다.[표2 참조] 군기사고의 원인으로는 자살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다. 최근 5년간 군기사건 중 자살의 비중은 거의 100%에 이를 정도로 높으며, 이런 경향은 1997~2008년에도 거의 유사하다.
안전사고의 감소는 군의 현대화가 이루어지고 병사의 생활 환경이 개선된 덕분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병사 간 그리고 병사와 간부 간 인간관계는 그리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은밀한 가혹행위는 더욱 교묘해지고, 입대 전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란 병사들이 군에서 정신적 위기에 빠지지 않나 싶다. 이런 상황을 적나라하게 다룬 OTT 드라마 ‘DP’나 ‘신병’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존재하는 군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높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장면 2 : 퇴행
최근 5년간 ‘민주주의 리포트’가 산출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지수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2019년 0.78점(18위), 2020년과 2021년 0.79점(17위), 2022년 0.73점(28위) 그리고 2023년 0.60점(47위). 즉 문재인 정부 시기(2019~2021)에는 비교적 상위권을 차지했으나 윤석열 정부 들어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보고서는 “대규모 탄핵 시위 이후 인권운동가 출신 대통령에 의해서 회복되었던 민주주의가 보수 우익 성향의 현 대통령 집권 이후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전 정부 인사들을 처벌하려는 강압적인 조치와 성평등을 공격하고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는 시도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을 언론의 자유가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는 20개국 중 하나로 분류하면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 침해는 가혹한 독재 국가들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최상위 그룹에 속한 32개국 중 독재화 국가로 분류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경제성장, 민주화, 한류, 안전한 국가 이미지를 통해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한국의 국격이 졸지에 무너지는 날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특히 헌법에 보장된 ‘결사의 자유’는 노조 혐오 선동과 노조 운영에 대한 행정 개입, 노조 활동에 대한 사법 탄압으로 훼손되었다. 정부는 공직자 의혹을 다룬 기자나 언론사에 대한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시민사회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시민단체를 악의적으로 공격하며 비판 기능을 위축시키고 거세했다. 특히 방송통신위원회의 운영은 파렴치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5인 합의제 기구인데도 대통령은 야당이 추천한 위원은 임명하지 않고, 여당 측 위원 2인이 언론의 지적이나 사법부의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행적 운영을 강행한다. 나아가 인권위, 권익위, 감사원 등 인권과 자유를 신장하고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기관들의 자의적·파행적 운영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고 파괴한다. 입만 열면 ‘자유’를 외치는 대통령,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집권 여당 아래서 벌어지는 모순과 억지의 증거들이다.
장면 3 : 반민주성
2년 전 홍준표 대구시장은 당선 이후 대구·경북광역행정기획단 사무국을 폐지하면서 행정통합 추진의 싹을 잘라버렸다. 행정통합에 관한 그의 입장은 단호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해 행정통합을 한다는 것이 난센스 중에 난센스라고 본다”고 주장하는 그의 논리는 원론적인 차원을 넘어서 “경남·울산·부산이 부·울·경 연합한다고 했지만 경남하고 울산이 반대하는데 그 이유는 통합을 하면 단체장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현실적인 차원도 고려했다. “문제는 통합을 하고 나면 공무원이 3분의 1은 줄어들어야 하며 산하단체도 절반 또는 3분의 1은 줄어야 하니까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대목에서는 정치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현실적인 문제는 생각을 안 하고 일부 언론에서 부추기니까 행정통합하겠다고 나서는 게 얼마나 무책임하고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홍준표의 일갈은 경북도민에게 청량감을 안겨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2년 만에 홍준표 시장이 완전히 돌변했다. 배경 설명도, 추진 이유도 없이 저돌적으로 행정통합을 추진하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태도다. 현재까지는 올해 4월 24일부터 29일까지 중국 청두시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로 입장을 바꾸었다는 정도만 드러났다. “청두시 자체가 2500만입니다. 대구의 10배입니다. 그래서 청두시에서 돌아오면서 우리 대구·경북도 통합하는 게 맞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5월 17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TV홍카콜라’에서 던진 말이다. 한국과 중국을 단순 비교하는 그의 논리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다음날 그는 SNS에 도를 없애고 광역시와 국가가 바로 연결되는 2단계 행정체계를 제시하며 오랫동안 생각해 온 개편안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는 절차와 과정을 모두 생략한 무례하고 몰지각한 행보다. 통합의 파트너인 경상북도 이철우 지사와도 별다른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홍 시장이 취임 뒤 행정통합에 대해) ‘이게 말이 되느냐?’고 해서 일시 중단됐습니다. 중단됐는데 여러 사람이 얘기한 것 같고, 중국에 다녀오시면서 저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 ‘도지사가 다시 한번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이철우 지사가 6월 10일 경북도의회에서 내놓은 해명이다.
홍준표 시장의 변덕에 대해 임미애 민주당 의원은 “다음번 대선을 준비하기 위한 이슈 던지기에 불과한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전에 했던 발언에 대한 사과, 이런 것들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라고 쏘아붙였다.
필자는 20년 넘게 안동에서 살면서 대구·경북 행정통합의 논의 과정을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경북도청이 대구에서 안동으로 이전하는 데 거의 20년이 걸렸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1990년대 중후반에 경북도청의 안동 이전이 결정됐지만, 당시 도지사의 소극적인 행정으로 무기한 지연됐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09년 도청 이전 공론화 과정을 거쳐 2014년에 비로소 경북도청이 안동·예천 경계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5년 만에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이 ‘지방소멸’을 이유로 행정통합을 시도했다. 통합이 되면 지방소멸을 어떻게 막는다는 건지 필자는 뉴스를 통해 아무리 여러 번 설명을 들어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 뒤로 홍준표 시장의 당선과 동시에 행정통합 논의는 중단됐다가 2년 만에 다시 부활했다. 이 중대한 문제를 놓고 오로지 정치적 술수만 난무할 뿐 진지한 논의나 검토조차 없이 제안이 두더지게임처럼 불쑥불쑥 솟아오르고 꺼진다.
홍준표 시장의 논의 부활은 지역주민의 의견 수렴은커녕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를 완전히 배제했다는 점에서 철저히 반민주적이다. 박정희 우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최근의 행보로 봐서는 박정희 코스프레로까지 보일 정도다. 21세기에 박정희를 롤모델 삼아 반민주적인 방식으로 행정통합을 이루겠다는 발상이라니 기가 막힌다. 아무리 보수 정당의 정치적 식민지로 인식된 대구·경북의 시민들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무시해도 되는 걸까? 어글리 코리아의 단면은 반민주적 지도자의 모습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전쟁은 최후의 정치적 수단이라는 오랜 경구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정치는 전쟁과 다름없다는 명제로 바뀌어야 한다. 전선은 전방위에 걸쳐 형성된다. 선진국의 체면도, 선진국민의 품위도 내팽개치고 국회, 정당, 거리, SNS를 가리지 않고 상대를 혐오하고 증오한다.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대한민국이 가라앉고 있다. 청년은 희망을 버리고, 중년은 삶에 허덕이고, 노년은 지쳐 있다. 민의의 경고를 무시하는 대통령은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에게 부처님은 일갈한다. “부끄러움의 옷은 모든 장식 가운데 으뜸간다. ··· 항상 부끄러워할 줄 알고 잠시도 그 생각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만일 부끄러움을 버린다면 모든 공덕을 잃게 된다. 부끄러움을 아는 자는 착한 법을 가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유교경)
안상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전) 한국중세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