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빅테크 제동 걸리나…美·유럽서 반독점 제재 잇따라

2024-06-17 17:14
EU, 애플에 디지털시장법 위반 첫 제소...구글, 메타도 물망
美, 5년 끈 '반독점 조사' 결론 수순...MS·엔비디아 'AI업체' 의심

애플 로고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올해 인공지능(AI) 붐으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거대기술기업)들이 잇따라 규제 포위망에 걸려들고 있다. 유럽연합(EU) 규제 당국은 아이폰 제조사 애플을 새 반독점 규제법인 '디지털시장법'(DMA)의 첫 재물로 삼을 예정이라고 15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최근 미국에서도 AI기업들이 무더기로 반독점 조사 대상에 오르면서 반독점 규제의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FT는 사안에 정통한 3명의 소식통을 통해 EU 집행위원회가 애플을 모바일 앱스토어에서 경쟁을 제한한 혐의로 제소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U 당국은 애플이 앱 개발자가 사용자에게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고 앱스토어 외부에서 앱을 다운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애플은 DMA를 위반한 첫 사례에 올랐다. 지난해 제정된 DMA는 대규모 인터넷 플랫폼 기업을 '게이트 키퍼'로 지정하고, 이들 업체의 반경쟁 관행을 단속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에 따라 규제 당국은 '게이트 키퍼' 업체에 일부 서비스가 독점적으로 운영된다면 경쟁자에게 문을 열도록 압박할 수 있다. 지난 3월 EU 집행위는 DMA에 따라 애플, 알파벳(구글 모회사), 메타를 조사 중이라 밝혔다.

애플이 DMA를 어긴 것으로 확정되면 일평균 전 세계 매출의 5%가량을 벌금으로 내야 한다. 현재 기준 약 10억 달러(1조3820억원) 규모다. 다만 소식통은 규제 당국이 예비 조사 결과만 내놓은 것이라며 여전히 애플이 문제가 된 사안을 교정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EU 당국이 구글과 메타에 대한 제소도 발표할 수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규제 당국은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의 경우 자체 앱스토어를 선호한 점을, 페이스북 모기업인 메타에 대해서 광고에 개인 데이터 사용을 유도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이는 미국 반독점 규제 당국과 보조를 맞추는 모습이다. 지난 2019년부터 미국 법무부(DoJ)와 연방거래위원회(FTC) 등 미 규제 당국은 아마존, 애플, 구글, 메타 등을 상대로 한 오랜 반독점 조사의 결론을 내고 있다. 지난달 3일 미 법무부는 구글의 2조 달러가량 되는 회사 수익의 대부분이 온라인 검색 사업에 따른 수익이라며 반독점법 위반 업체라고 밝혔다. 당국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구글 외에 나머지 업체에 대한 조사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미 규제 당국이 인공지능(AI) 업계를 주도 중인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 엔비디아 등 세 업체에 반독점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고 지난 6일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올해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이들 AI 업체들은 그동안 반독점 규제에서 벗어나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규제 당국의 감시를 받게 된 것이다.

미 규제 당국은 세 회사가 AI 붐의 수혜를 누리는 가운데 이들의 시장 지배력이 과도해진 점을 주목하고 있다. AI 칩 설계회사인 엔비디아는 AI 작업에 필수적인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며 사상 최대의 매출과 주가를 달성하고 있다. 당국은 엔비디아가 자사 칩에 고객을 묶어두는 칩 언어인 '쿠다'를 활용하는 점, 유통과정의 지배력 등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고 NYT는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그 최대 투자사인 MS는 동시에 조사 대상에 올랐다. 생성형 AI 열풍을 불고 온 오픈AI는 최근 새로운 AI 모델을 출시한 가운데 애플과 협업을 발표하며 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MS 역시 자체 AI 코파일럿을 출시해 웹브라우저 '빙'에 탑재시키거나 파워포인트 등 오피스 문서 프로그램에 탑재해 수많은 사용자를 확보한 상황이다. 규제 당국은 이들이 AI 기술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두 업체는 또 독특한 관계 때문에 규제 당국의 관심 대상에 올랐다. 양사는 챗GPT, 코파일럿 등 유력한 인공지능 모델이 있는 '경쟁사'이면서 서로 플랫폼과 투자금을 제공하는 '협력' 관계에 놓였다. 일부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가 규제 기관의 직접 조사를 피하고자 이런 관계를 구축했다고 보고 있다고 NYT에 전했다.

예컨대 MS는 독점 우려를 회피하고자 회사의 지배권을 건드리지 않는 만큼만 지분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또한 MS는 또 다른 AI 스타트업 '인플렉션 AI'를 반독점 우려 탓에 인수하지 않았다. 대신 해당 업체 직원 대부분을 자사로 고용하고 기술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형태로 규제망을 피해간 셈이다.

빅테크 반독점 규제가 AI 업체로 확산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에릭 포즈너 시카고대학 로스쿨 교수는 금융전문매체 디에셋 기고 칼럼에서 "2024년엔 구글, 애플, 아마존에 대한 오랜 반독점 소송의 결론이 날 수 있는 빅테크의 중대한 전환점"이라면서도 "AI 혁명이 빅테크 독점을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