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에토스·파토스 없는 의사들

2024-06-13 06:00

박상현 산업부 IT바이오팀 기자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3요소로 △로고스(이성) △에토스(화자 인격) △파토스(감성)를 제시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로고스보단 파토스가, 파토스보단 에토스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기분 나쁘게 하거나 사람 자체를 믿을 수 없다면 통하지 않는다.

27년 만에 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이뤄졌다. 서울 소재 8개 의대를 제외한 전국 32개 의대 정원이 1509명 늘었다. 2025학년도 전국 40개 의대는 총 4567명을 선발한다. 애초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5년간 2000명을 증원한다고 밝힌 만큼 이후에도 증원이 이뤄질 전망이다.

사실 정부 정책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정부는 애초 증원 근거로 제시한 보고서 세 건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의료 전문가들이 참여한 31차례 회의(의료현안협의체 19회·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2회·보정심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 9회) 중 의대 증원 규모가 논의된 건 의사인력전문위원회 5차 회의가 유일하다.

교육 현장에선 아우성이 나온다. 의대 교육은 특성상 실습수업이 중요하다. 교수 1인당 가르칠 수 있는 학생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안 그래도 수도권 의대에 비해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많은 지방 의대에선 증원 폭만큼 교수를 수급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강의실과 커대버(해부용 시신) 등도 부족하다. 충북대 의대 한 교수는 "실습실 8곳에서 6~8명이 나뉘어서 실습하고 있다"며 "내년엔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충북대 의대는 기존 49명에서 76명 늘어난 125명을 모집할 예정이다.

그런데도 비판의 화살은 증원에 반대하는 의료계로 쏠리고 있다.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윤석열 정부 지지율은 20% 후반대~30% 초반대에 머물러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4월 총선에서 대패했다.

"의료를 멈춰서 세상을 바꾸자." "국민은 반에서 20~30등 하는 의사를 원치 않는다." "(소말리아 의대생 졸업식 사진을 올리며) 커밍 순(Coming Soon)." 의사단체들에서 나온 말이다. 에토스와 파토스가 완전히 결여된 발언이다. 심지어 그 어느 의사단체도 나서서 이 같은 막말을 비판하지 않았다. 의대 증원 정책과 의료계 반박이 로고스에 부합하냐는 차치하더라도 어느 국민이 이런 말을 듣고 의료계를 지지할 수 있을까. 항간엔 2000명 증원을 통해 막말을 일삼는 의료계를 응징하자는 말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의료계가 전면 휴진에 예고했다. 정부 정책을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을 동원한 것이다. 서울대 의대 교수진은 17일, 대한의사협회는 18일 전면 휴진에 나선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지난 9일 휴진을 결의하면서 "국민과 함께 잘못된 의료정책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

이틀 뒤 임 회장은 한 의사가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1심에 이어 항소심에 유죄를 받은 사건을 두고 본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앞으로 병·의원에 오는 모든 구토 환자에게 어떤 약도 쓰지 마세요. 당신이 교도소에 갈 만큼 위험을 무릅쓸 중요한 환자는 없습니다." 그렇게 의료계는 점점 외로운 길로 빠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