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한국과 중국의 '어색한 관계'는 언제까지

2024-05-23 06:00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미국과 중국이 서로 대화를 하며 관계를 관리하려고 노력하나 양국 간 경쟁은 마치 용호상박처럼 점차 격화하고 있다. 이는 양국이 바라는 세계, 즉 세계관이 충돌하는 구조적 요인 때문인데 이로 인해 양국 간 갈등의 골은 계속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방식에 있어 자유주의 질서를 앞세우는 이상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즉 우크라이나 전쟁은 ‘선과 악’의 대결이며 이를 위해 자유 진영은 권위주의 진영에 대항해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미국에 비해 중국은 지극히 현실주의 관점에서 현 국제정세를 바라보고 있기에 양국 간 알력이 그칠 수 없다.
 
중국이 보기에 이상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국가들은 국제사회에서 이익의 조화를 내세우면서 자국 이익에 보편적 가치라는 이름을 쉽게 붙인다. 그래서 ‘자국에 유리한 것이 다른 국가에도 유리하고 전 세계를 위해서도 좋은 것’이라고 착각한다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을 지원하고 우크라이나를 NATO에 가입시키려 했다고 본다. 그리나 이미 1세기 전에 영국의 세계적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E H Carr)가 <20년의 위기>라는 책에서 “영국이 자신의 힘이 약해지자 ‘집단안보’니 ‘침략에 대한 항거’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세계 평화 유지 명목으로 자국 이익을 지키려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중국은 이 표현을 지금 미국에 그대로 적용해도 딱 들어맞는 말이라 본다. 왜냐하면 1세기 전인 20세기 초반은 영국의 패권이 저무는 무렵이었고 지금은 미국의 패권이 쇠퇴하는 중이기 때문에 양국의 행동패턴은 유사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자국 중심 천하관도 유지하고 있기에 서양 중심 세계관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중국인 관점에서는 당연하다. 지금의 국제사회 기본구조이자 주권평등에 기반한 근대국가 제도도 1648년 30년 종교전쟁이 막을 내리면서 베스트팔렌 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이 만든 질서라고 중국은 본다. 중국은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이 체제에 선택의 여지없이 편입되었다. 그렇기에 이 체제를 수용은 하지만 이 체제를 지켜야 할 필요성을 중국은 별로 느끼지 못한다. 국가 간 수평적 대등관계를 상정하는 이 체제는 중국의 중화적 세계관과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국은 언젠가는 현 국제체제를 자국 이익에 맞는 방향으로 수정하려는 내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지난 4월 베이징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도와 달라고 한 말이 중국 관점에서는 허황해 보인다.
 
또한 최근 들어 서방에서 중국의 과잉공급 능력을 문제 삼으면서 이 공급능력을 축소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는데 중국은 자국 공급력은 세계 전체를 위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때 영국이 세계 최강 산업국가였을 당시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 신문은 ‘대영제국이 세계의 석탄창고와 대장간으로 바뀐 것은 영국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한 영국이 현재 중국의 공급과잉 능력을 비판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중국은 보고 있다. 이 점에서 중국은 자국이 비판하는 현 지배세력인 미국과 영국의 논리를 똑같이 반복하는 모순을 역시 범하고 있다. 중국은 영국과 미국의 논리를 차용하여 버티면서 자국 생산력을 줄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중국 지도부는 공산주의 이념을 여전히 신봉하고 있어서 그들은 국가 간 권력투쟁을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즉, 현 국제질서는 현 지배세력인 서양국가들이 만든 것이며 이 질서는 그들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데올로기로 본다. 그리고 서방이 주장하는 자유주의 원칙, 가치외교 등도 그들의 이익을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할 뿐이라고 본다. 즉 자기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원칙을 내세우고 그 원칙에 자신들의 힘으로 보편적 권위를 부여한 것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들은 국내에서 지배계급들이 계급갈등을 호도하기 위하여 쥐꼬리만 한 계급 간 공동이익을 과장한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국제사회의 지배세력인 미·영이 자유와 정의라는 미명하에 평화를 지키고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인류 공동의 이익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위선이라고 본다.
 
그리고 중국은 현재 미국이 향유하고 있는 단극 패권체제는 중국의 부상과 함께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보고 이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중국은 2012년 시진핑의 집권과 동시에 소위 ‘신형 대국관계’라는 개념을 만들어 미국과 중국이 동등하게 세력권을 나누어 가지는 소위 ‘천하 양분지계’ 구상을 내세우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경제력을 ‘실질 구매력 기준’에서는 이미 추월한 상태에서 미국이 홀로 전 세계를 자기 방식대로 운용하도록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우선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를 흔들기 위하여 다극체제 출범을 내세우며 BRICs 국가들과 함께 이를 추구하고 있다. 중국이 당분간은 다극체제를 내세우겠지만 더 시간이 지나면 미·중 관계 변화 추이에 따라 양극체제를 선호할 것이고 시운이 좋으면 중국이 패권국가가 되는 체제를 지향할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중국이 누려왔던 지위를 회복하는 것으로 중국인들은 여길 것이고 이것이 바로 시진핑이 주창하고 있는 ‘중국몽’인 것이다.
 
중국이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그리고 전통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볼 때 미국이 내세우는 자유주의적 세계관에 도전하는 것은 일리가 있고 자국 이익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그런데 중국은 과연 미국의 세계관을 대체하여 내놓을 새로운 세계관이 있는지 그리고 이 세계관이 국제사회 다수 국가의 이익에도 부합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즉, 미국에 대한 반대 명분은 있지만 자국이 내세울 새로운 명분은 아직 없어 보인다.
 
중국이 현재까지 내놓은 것은 지난 9월 ‘인류운명 공동체’ 구상이다. 이는 후진타오 시대의 ‘조화세계’를 더 확장하면서 신형국제질서를 위한 나름의 포석이다. 그러나 이 구상은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고 상당히 추상적이고 역시 이상적이다. 이 구상이 다른 국가들에 공동이익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중심이 되어 덕치로 제후국들을 다스린다는 과거 중화질서를 재현하려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물론 ‘일대일로 구상(BRI)' ‘세계 발전구상(GDI)' ‘세계 안보구상(GSI)’을 동력으로 삼아 ‘인류운명 공동체’를 실현해 나가려 한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이러한 구상이 이를 수용한 개도국들에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보이면서 개도국 국민도 중국의 진출과 지원을 내심 반기지 않는 양상을 최근 보인다. 중국이 진정 중국몽을 실현하려 한다면 미국이 보여주었던 공공재 공급 역할과 자국 시장개방 정책을 과감하게 따라야 할 것이다. 즉, 중국은 대국으로서 이익을 다른 국가들과 더 나누는 데 익숙해져야 하고 강대국으로서 양보하는 미덕도 보여야 한다. 자국의 과잉생산력을 전 세계 시장으로 내쏟아서 다른 국가들의 산업 기반을 황폐화시키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자국 소비시장을 애국주의와 행정규제를 통해 닫아두지 말고 이를 개방하여 다른 국가들이 중국 내수시장 성장의 과실을 공유하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남중국해 사태에 대해 국제중재재판소 판결을 수용하는 등 국제규범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중국은 말로는 국제주의와 규범 기반 국제질서를 지지한다고 하면서 자국에 유리할 때에만 이 논리를 수용하는 이중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대국·소국 차별주의와 강압적 외교로 인근 제국들을 압박하는 ‘전랑적 외교’를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인근 제국들이 중국의 굴기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중국의 언행일치를 인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경성국력뿐만 아니라 연성국력에 있어서도 남에게 모범이 되어야 중국이 지도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곧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린다. 이를 활용하여 우리는 중국이 지향하는 국제질서가 무엇인지 묻고 이에 대한 설명을 받아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새 비전이 우리 국익에 합치되면 우리는 중국과 진정한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아니면 구존동이의 어색한 동거관계로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중 관계 개선의 해답은 우리가 아니라 중국이 쥐고 있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