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스캐일 작아지는 한국외교 …'담대한 구상'이 필요하다
2024-04-25 19:17
유명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외교정책도 국내 정치적 요인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국제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도출된다. 이런 도전과 응전의 도식은 강대국이나 약소국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중강국에게 더욱 의미있게 적용된다. 강대국은 자신의 국익을 국제사회에 일방적으로 투사할 수 있어 정세변화에 무관심하고 약소국은 아예 대응수단이 없으므로 정세변화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강국들은 국제정세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 동시에 이런 변화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도 있으니 이런 응전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건국 이후 역대 우리 정부들은 급격한 외부환경의 변화를 경험했고, 국가적 위기 상황도 몇 차례 경험하였다. 당시 각 정부는 이런 정세에 대응하여 새로운 정책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어려운 국면을 뚫고 나온 전력이 있다.
우리 외교사에서 예를 찾자면 한국전 발발 시 동맹외교, 월남전 참전 외교, 닉슨 독트린과 미군철수 대응외교, 일본과 안보경협자금 협상, 그리고 냉전체제 붕괴 무렵의 새 물결을 탄 북방외교 등이 이러한 도전-응전 사례에 부합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또한 한·미동맹이 우리 안보의 근간이지만 이전 정부들은 한·미간 국익의 편차가 존재할 때는 우리 국익을 지키기 위하여 미국과 강경한 대치, 협상을 마다하지 않은 경우도 꽤 존재한다. 이승만 정부 당시 미국은 우리가 일본과 화해하고 국교를 수립하도록 압력을 가했으나 우리는 예비회담만 열어놓고 공전시키며 이를 회피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때도 미국의 방위공약에 대한 의구심이 들자 독자적인 방산체제를 구축하고 핵무기 개발을 시도한 적도 있어 미국의 미움을 샀다.
우리의 동맹, 우방국들과의 교섭에 있어서도 우리의 실리를 챙기기 위하여 의외의 패를 꺼내어 우리 경제발전을 뒷받침한 외교전도 전개하였다. 월남전 파병구상도 이승만 대통령이 먼저 미국에 제의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을 처음 만날 때 미국을 떠본다. 그 후 존슨 대통령이 월남참전을 결정하면서 우리에게 파병을 부탁하자 양국은 협상에 들어간다. 4차례에 걸친 월남파병을 하면서 각 단계마다 우리는 우리 국익을 최대한 챙기는 교섭을 진행하였고 이때 벌어들인 외화는 경제발전의 마중물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군의 장비 현대화가 이루어지고 우리 기업들의 해외진출도 처음 이루어지게 된다. 전두환 정부 때는 우리는 일본이 우리 덕분에 안보에 무임승차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일본이 우리에게 안보경협자금 100억 달러를 제공해야 한다고 압박하여 40억 달러를 받아낸 전력도 있다.
대담한 정책 전환인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는 우리 외교의 금단지역이었던 구 공산권 국가들과 국교를 맺기 위하여 우리가 먼저 주도권을 가지고 움직였다. 미국은 처음에는 반대하였으나 우리는 미국을 설득하며 구 공산권 46개국과 수교를 하여 남북 외교경쟁에서 우리 우위를 확고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북방외교는 모스크바와 북경을 거쳐 평양의 문을 열려던 통일정책이자 연해주와 시베리아로 우리의 경제영토를 확장시키려던 ‘통큰 외교’구상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방대한 스케일과 담대한 추진력을 가진 외교구상은 그 이후에 나온 적이 없다.
과거 우리의 국력은 지금과 비교하면 현저히 약하였고 국내외적인 제약요인도 많이 있었으나 우리는 결집된 국론을 바탕으로 과감한 정책 변환을 시도한 적이 많았다. 이로써 외교안보 정책의 창의성이 돋보이고 그 스케일이 컸으며 한국의 결기를 보여주는 성과를 이루었다. 즉 우리가 먼저 제안을 하고 타국이 우리의 뜻에 따라오도록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국력은 몇십 배 성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담대한 외교는 보이지 않고 상대국의 요구를 우리가 주로 수용하는 수동적인 외교가 일상화 되어버렸다.
지금 국제질서 대변환의 시대를 맞아 우리 외교도 창의성, 결단성 그리고 보다 더 큰 스케일의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외교안보 정책은 과거답습적이고 기존 프레임에 얽매인 행태를 보여주어 외교적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외교력은 시대가 흘러갈수록 더 축소되는 듯한 용두사미형 모습을 보인다. 즉 학점으로 비유하자면 못살던 때 A학점 받던 학생이 집이 부유해지자 C학점으로 성적이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주체적으로 국익을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가면서 시작되었다. 주변국의 선제적 조치에 항상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외교에 고착되었다. 그리고 우리 국익을 지키기보다는 주변국과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외교의 목적이 되는 전도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 인사들은 상대국에게 항상 고맙다고만 하면 외교가 잘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릇된 인식까지 하고 있다.
둘째는 국론이 분열되고 외교가 국내정치의 포로가 됨으로써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취하기가 어려운 구조가 형성되었다. 담대한 구상을 발표하려면 국내 여론의 지지부터 확보해야 하는데 이런 노력도 할 수 없는 당파적 구조가 생겨나 담대한 구상이 있더라도 발목부터 잡으니 될 일이 없다.
셋째는 담대한 구상을 하는 전략적 마인드가 우리 정부 내에서 점차 실종된 것도 원인이다. 외교·안보 부서는 현업 처리에 매몰되고 대통령실의 상의하달식 의사결정 구조 속에 큰 그림 그리는 능력을 어느덧 상실해 버렸다.
넷째 북한 핵위협이 점증하면서 우리 외교·안보 역량을 북한의 위협 대응에 모두 소진해 버려 다른 문제에 대해 숙고할 여력이 부족한 것도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을 잘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의식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외교부의 한반도 교섭본부를 축소하고 이 조직을 가칭 ‘전략기획본부’에 흡수시키려는 노력이 외교 회생의 실마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대통령실도 소수의 참모진 의견에 의존하지 말고 더 넓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창의적 외교정책을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외교가 담대한 외교적 상상력과 결기를 회복할 때 우리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외교정책도 소수에 의해 입안되고 다수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경우에는 실패한다'는 외교의 대가 키신저의 말을 되새길 때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