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지정학적 리스크 '발등의 불' …해양수송로 확보, 남의 일 아니다
2024-02-22 22:12
지정학은 지도를 보며 자국 국익을 지키고자 하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지도는 본래 여행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싶은 장군들이 주로 만들고 연구해 왔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경제전쟁이 전개되고 있으니 세계지도를 보고 공급망이 어떤 모양으로 재편될 것인지, 물류가 어떤 길로 새로이 흐르고 막힐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국제문제 평론가인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2024년 세계 경제는 지정학이 결정한다’는 칼럼을 썼다. 금년은 이미 진행 중인 2개 전쟁에다 다른 잠재적 분쟁 발화 지점이 많아 올해처럼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해가 없었다. 이런 분쟁은 국제 해양 수송로 안전을 위협하여 원자재, 에너지, 곡물 가격 상승 요인이 될 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교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현 국제정세하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가장 현저한 곳은 해양수송로이며 지금 홍해에서 상선 피격이 빈발하면서 우리는 이런 리스크를 이미 목도하고 있다.
동아시아 해양수송로 중 요충지는 말라카해협과 남중국해 그리고 대만해협 3곳이다. 그중 가장 요충지는 대만해협인데 블룸버그통신은 '2023년 1~7월 중 전 세계 해상에서 운항한 컨테이너선 5400척 중 48%가 대만해협을 통과하였으며 화물량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전 세계 물동량 중 88%가 대만해협을 통해 운송되었다’고 분석할 정도로 대만해협은 중요하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선박 중 태평양을 건너는 배를 제외하고는 거의 100%가 이 해역을 통과하여 입항한다.
그런데 금년 초 신년사에서 시진핑 주석은 ‘대만 통일은 필연’이라고 언급하고 인민군 총사령관에 해군제독을 임명하면서 대만해협에서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대만해협 중간선을 중국 군용기,군함이 자주 침범하면서 이 해역을 내해화하려 하고 있다. 사실 중국 정부는 3년 전 외교부 대변인 성명으로 대만해협 중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이번 대만 선거에서 민진당이 재집권하니 이에 불만을 품은 중국은 대만해협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며 대만해협의 내해화를 더 재촉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해역에서 자유 항행을 보장하는 일을 남의 일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 역대 정부는 중국 눈치를 보며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 자세로 일관했다. 이번 정부 들어 작년 8월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면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표현을 처음 사용하는 데 동의하였다. 물론 이로 인해 중국 측 반발을 초래하기는 하였지만 이 사안은 우리 국익에 직결된 문제이므로 우리가 제3자적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 사실 호주는 한국·일본에서 휘발유 같은 정제유를 이 해역을 통해 수입하기에 이 해역이 자국 안보에 긴요하다고 보고 이 해역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다국적 해군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과 프랑스도 이 해역에 자국 군함을 파견하여 합동훈련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여태까지 이 해역 안전을 주로 미국 아니면 다른 서방국 해군에 맡기고 우리는 관여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우리 해군도 이 해역 안전 확보 활동에 동참할 것을 검토해야 한다. 사실 이·팔 전쟁의 불똥이 홍해로 번져 후티 반군이 홍해 해양수송로 안전을 위협하자 미국은 이 해역 안전 보호에 다국적 해군을 동원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20여 개국 해군이 참여하는 ‘번영, 수호자 작전’을 개시하였다. 미국 측 요청으로 이 다국적 작전에 우리 청해부대도 조만간 참여하여 그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먼 바다인 홍해에서 우리 해군이 수송로 안전 보장 작전에 참여한다면 우리 인근 해역의 안전 확보에도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우리가 이런 행보를 보이면 중국이 더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은 있으나 이를 겁내어 우리 국익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고 타국에 맡기는 것은 국가 장래를 대비할 때 현명한 일은 아니다.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에 아세안 10개국은 당사자로 간주하나 우리를 국외자로 여기고 이 문제에 간섭하지 못하게 하는데 사실 이 해역 안전 문제는 우리도 당사국이다. 작년 8월 중국이 발표한 표준지도에 남중국해에서 여태까지 주장해오던 9단선을 넘어 10단선을 내어놓았다. 대만 우측으로 새로 선 하나를 더 그은 이 지도는 대만을 중국의 도서로 편입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중국의 영유권 확대주장과 남중국해 군사기지화가 진행되면 남중국해도 언젠가는 중국의 내해처럼 될 가능성도 있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의 지리적 범위와 군사적 밀집도는 홍해의 그것과 비교할 바가 못 될 정도로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따라서 미 해군 홀로 이 넓은 해역의 안전을 담당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자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아세안을 포함하여 해역의 안전에 공동이익을 가진 나라들이 연대하여 그 해역을 공공수역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맞다. 그래야 역설적으로 이 해역의 현상이 중국에 의해 중국의 뜻대로 변경되는 것을 더 잘 방지할 수 있다. 얼마 전 미국 국무부 장관과 CIA 국장을 역임한 폼페이오는 의회 청문회에서 ‘중동과 유럽에서 미국의 억제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조만간 아시아에서도 억제력에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이는 미국 홀로 세계경찰 역할을 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점을 의미한다.
중국은 자신들이 현상변경 세력으로 간주되는 것을 부정하고 있기에 이 해역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려는 타국의 현상유지 노력을 공박한다면 이는 자기모순이 될 것이다. 우리도 이 점을 부각시키고 우리 국익이 직결된 사안에 대해서는 할 말은 한다는 점을 중국에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런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미 동맹에서 우리 전략적 가치가 상승하고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우리 위상도 부각될 것이다. 특히 재집권 가능성이 점차 높아져 가는 트럼프 행정부 2기를 감안하면 우리가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조치를 취해야 동맹으로 존중받을 것이다. 트럼프 후보가 ‘NATO 회원국들이 돈을 내지 않으면 러시아가 침공하도록 권하겠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여 세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사실 돈이 아니라 회원국의 응분의 역할, 자위력 강화 조치이다. NATO 회원국이 미국에 방위비를 낼 의무는 없다. 단지 그는 독일을 비롯한 부국들이 GDP의 2%에 못 미치는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해양 수송로 안보에 대한 우리의 전향적인 자세가 굳건한 한·미 동맹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