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견고한 외교안보, 국가정체성 확립에서 나온다

2024-01-24 06:00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에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팔 전쟁까지 더해져 올해 국제정세는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정도의 짙은 안개 속에 싸여 있다. 이러한 혼미한 국제정세의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가 표류하지 않으려면 우리 정부와 국민이 한마음으로 바짝 경계의 끈을 조이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할 때이다. 그럼에도 우리 국내 사정을 보면 정치가 양 진영으로 나뉘어 날마다 정쟁으로 지새우고 외교안보 문제까지도 이런 진영논리에 파묻혀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상대를 흠집 내고 국내 열성 지지층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서 걱정이다.

지금 우리는 각 진영논리에 따라 국가이익을 주관적으로 규정하고 재단하지만 국가이익은 사실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 외교 상대국들의 국가이익도 또한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외교는 겉으로는 가치, 동맹, 우호 등을 내세우지만 결국 이것도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는 수사일 뿐이다. 어떤 국가도 자기 국가이익이 손상되는데도 불구하고 보편적 가치나 동맹수호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킬 나라는 없다. 따라서 양국 간 외교정책이란 양 국가의 국가이익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양국이 모두 수용 가능하고 실천 가능한 범위에서 도출되어 나온다. 

국가이익의 개념이 추상적인 것 같지만 국가이익을 규정할 때 꼭 짚어야 할 요소 몇 가지가 있다. 전통적 의미에서 국가이익은 국가 성립의 세 요건인 주권, 국민, 영토를 보전하는 것, 즉 국가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한다. 차순위 국가이익은 번영과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3대 국익인 생존, 번영, 가치를 우선한 다음에 국가정체성도 고려해야 한다. 즉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이고 우리가 지향해 나가야 할 나라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정체성과 국가목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견고한 외교·안보 정책을 그 바탕 위에 세울 수 있다. 즉 자신이 어떤 나라인지를 스스로 분명히 자각하고 있어야 자국이 원하는 것을 당당히 말할 수 있고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정체성이 부족한 나라는 자존감과 자아 정체성이 불분명한 사람처럼 무엇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기 마련이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개인이나 국가는 한때는 이런 말을 했다가 다른 상황에서는 다른 말을 하면서 주변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문제아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정체성에 대한 국론분열과 혼돈이 건전한 외교·안보 정책 수립의 최대 장애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이러한 국론분열이 발생하나? 첫째 실현 가능한 국가이익, 국제정세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국제정세와 실현 가능한 국가이익에 대해서 주관적 해석과 판단을 하고 더 심한 경우 자기의 희망적 사고를 정책 목표로 간주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 이런 판단을 할 경우 이와 다른 생각을 가진 진영과는 심각한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 또한 이념과 가치가 외교·안보 정책을 좌우할 때에도 이런 분열적 경향이 나타난다. 평화의 시대에는 이념, 가치가 외교의 지침으로 기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복잡한 난세에는 냉철한 현실주의에 기초해 국익을 판단해야 안전하고 국론분열도 막을 수 있다. 희망적 사고에다 가치와 이념이 결부되면 더욱 확증편향을 가지게 되고 한번 확증편향이 되면 사실 확인과 합리적 토론을 거부하는 현상까지 발생한다. 그러면 마침내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많아진다. 20년 전 미국 체니 부통령은 북핵 협상팀에 ‘나는 악과는 협상하지 않는다. 악은 무찌르는 대상이다’라고 말하며 협상을 결렬시켰다. 그 결과 지금 북한은 사실상 핵무장국이 되어 미 국익을 위협하고 있다.

둘째, 우리는 외교 상대국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결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대국을 주관적 인식에 따라 너무 미화하거나 악마화하는 사례가 빈발한다. 모든 국가는 자국의 국가이익에 따라 움직이며 자기의 국가이익 증대를 위해 타협하거나 변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주의이다. 상대를 선의의 사자로 또는 악의 화신으로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친소관계가 쉽게 변하는 대변환 시대 국제정치에서는 금물이다. 동맹은 변할 수 있어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자국의 국익이다.

셋째, 우리는 종종 외교 상대국에 대한 과소 또는 과대평가와 근거 없는 자신감을 드러내어 국론분열을 자초한다. 우리는 어떤 나라는 우리가 한없이 믿을 수 있는 나라이며 우리를 무한정 도울 수 있는 나라이기에 우리는 그 나라와 영원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순응해야 한다고 과대평가하는 일도 있다. 반대로 어떤 국가는 자국의 국익에 관계없이 우리를 영원히 괴롭히고 말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주의 관점에서는 자국에 이익에 되거나 정세가 변하면 국가들은 태도를 변경하고 동맹도 바꾸기도 한다. 또한 어떤 나라는 존재하지 말아야 할 나라이고 곧 망할 나라이며 제재로 인해 조만간 무너질 것으로 전제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공격으로 일거에 격퇴할 수 있는 미약한 존재라는 과소평가를 하기도 한다. 자신의 군사력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전쟁의 위험을 얕잡아 보는 그룹이 있고 반대로 상대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하여 우리가 아예 저자세로 나가야 한다고 믿는 그룹도 있다. 그래서 국론분열이 생기는 것이다. 아니면 어떤 나라는 우리의 국가이익을 위해 자국 국가이익을 손상해 가면서도 협조를 해줄 것이라 믿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평화와 민족이라는 대의명분이 현실적 이익의 충돌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일도 있다.

넷째, 국내 정치에 외교정책을 이용하는 악습이 국론분열을 조장한다. 당파적 이익, 열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외교·안보 정책을 선택하면 국내 지지층의 정서와 감성을 만족시킬지는 몰라도 객관적 국익과 외교가 그 희생물이 된다. 더 나아가 반대 당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면 감성팔이, 과격 선동도 불사하여 상대국 국민감정에 깊은 골을 내어서 이후 다른 정부가 들어서도 회복하기 힘들게 만드는 일도 있다. 이는 정말 외교라는 어장을 아예 황폐화하는 경우이다.  

다섯째, 정권 따라 선택하는 상대국은 다르나 방식은 유사한 저자세 외교 행태를 반복하며 내로남불을 불사한다. 이런 내로남불은 상대방 선의에 대한 적극적 믿음을 바탕으로 비대칭적인 퍼주기 모습을 한다. 즉 우리가 먼저 선의를 베풀고 상대의 상응하는 행위는 그쪽의 후의에 맡겨두는 방식의 외교를 한다. 그리고 편파적 목적 달성을 위해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과공을 하면서 이것이 효과적인 외교 방식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행태가 국내 반대 진영을 자극하고 국론분열을 일으키며 상대국이 우리를 얕잡아 보게 만든다.

건전한 외교·안보 정책 수립을 방해하는 이러한 장애물들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미국에도 존재한다. 미국 외교협회 회장을 역임한 레슬리 겔브도 2009년의 저서 ‘힘이 지배한다(Power Rules)’에서 외교정책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몇 개의 악마가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가치와 원칙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세상을 선과 악으로 양분하는 이념적 경직성, 둘째 정치적 양극화로 나타나는 국내 정치의 난맥상, 셋째는 미국의 일방주의, 넷째는 미국의 오만과 자신감을 대표적인 악마, 즉 외교의 적으로 꼽았다.  

이런 악마들을 제거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먼저 외교·안보 관련 국론 결집을 위해 우리의 국가이익과 국가정체성 개념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외교·안보 정책의 큰 틀, 즉 정부가 변해도 바뀌지 않을 정책 틀의 최소공배수를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마련해야 한다. 그 틀 안에서 국익기반 실용외교, 현실주의 외교를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은 건전한 상식에 기초한 외교·안보 정책을 펴면 되는 것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