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둘러보고 눈물삼킨 이재용 회장...20년 남몰래 후원
2024-04-23 09:13
요셉의원 설립자 전기 '의사 선우경식' 책서 첫 공개
2003년 사비 1000만원 건넨 이래 매달 기부금 보내
이외에도 소외된 이웃 위해 남모르게 선행 이어와
2003년 사비 1000만원 건넨 이래 매달 기부금 보내
이외에도 소외된 이웃 위해 남모르게 선행 이어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여년간 쪽방촌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하는 '요셉의원'에 남몰래 후원해 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회장의 선행은 고(故) 선우경식 요셉의원 설립자의 삶을 소개하는 책 '의사 선우경식'을 통해 알려졌다.
책의 '쪽방촌 실상에 눈물을 삼킨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 부분에서 이 회장이 상무로 재직 중이던 2003년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있는 요셉의원을 방문한 일화가 소개됐다.
선우 원장이 그해 열린 13회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 삼성전자 경영기획실로부터 이 회장이 요셉의원을 후원할 생각이 있어 방문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요셉의원 직원이 보낸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받고 이 회장이 직접 찾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이 회장은 선우 원장의 안내로 병원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주방과 목욕실, 세탁실, 이발실을 둘러보며 병원 안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걸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그때 선우 원장은 "혹시 쪽방촌이라는 데를 가보셨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회장은 "제가 사회 경험이 많지 않고 회사에 주로 있다 보니 쪽방촌에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회장이 흔쾌히 동의하면서 요셉의원 근처의 쪽방촌 가정을 찾게 됐다고 한다.
쪽방촌 골목 일대를 돌아본 뒤 요셉의원으로 돌아온 이 회장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선우 원장이 "빈곤과 고통으로 가득한 삶의 현장을 보셨는데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라고 묻자 이 회장은 "솔직히 이렇게 사는 분들을 처음 본 터라 충격이 커서 지금도 머릿속이 하얗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이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우 원장에게 준비해온 10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회사 공금이 아닌 사비였다. 그때부터 이 회장은 매달 월급의 일정액을 요셉의원에 기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이후로도 양복이 아닌 티셔츠 등의 평상복 차림으로 요셉의원을 찾았다.
또 사회공헌 사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선우 원장과 노숙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밥집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철도청 소유 공유지에 들어설 건물 설계도까지 준비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근처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삼성전자 본관으로 찾아가 반대 시위를 벌였다. 노숙자들을 끌어들인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프로젝트는 무산됐다.
이외에도 이 회장은 20년 넘는 기간동안 외국인 근로자 무료진료소와 어린이 보육시설 등 사회 사각지대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돌봐왔다. 이들 시설에 매년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 외부에 알리지 않도록 당부해 이같은 선행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요셉의원의 설립자 선우 원장은 '쪽방촌의 성자'이자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다. 1945년 평양에서 태어나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했다. 미국에서 내과 전문의로 일하기도 했지만, 돈 잘 버는 미국 의사의 삶을 거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교수 생활을 하며 1980년대 초부터 서울 신림동 달동네의 무료 주말 진료소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1987년 8월 신림동에 요셉의원을 개원한 후 21년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의료 활동을 펼쳤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독신으로 지내며 평생 무료 진료를 해온 그는 급성 뇌경색과 위암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오로지 환자들을 위해 노력하다 2008년 4월 뇌출혈로 쓰러져 6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한편 책 '의사 선우경식'은 전기 문학 작가 이충렬 작가가 각종 자료를 검토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 인터뷰해 써낸 선우 원장에 관한 유일한 전기다. 책의 인세는 전액 요셉나눔재단법인 요셉의원에 기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