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한은법 개정 '0건'…'비은행 감독·임금 결정권' 숙원 언제쯤

2024-04-10 05:00
21대 국회 한은법 개정안 27건 통째로 자동 폐기
설립목적 '고용안정' 추가 등 논의 후 장기간 계류
총재 임기 후반기도 시작…중장기적 과제 산적

[사진=아주경제DB]
코로나 팬데믹 위기를 겪으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역할을 강화하며 경제구조 개혁의 첨병으로 나서고 있는 사이 한국은행만 답보를 거듭 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4·10 총선을 통해 새로 구성될 22대 국회에서는 한은의 비은행 감독권 강화, 기획재정부에 예속된 임금 결정권 이관 등 숙원 해소를 위한 법 개정이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0년 6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발의된 한은법 개정안 27건(철회 포함)이 21대 국회 종료와 더불어 모두 폐기된다. 지난 4년간 단 한 건도 주무 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고용 안정·정부 견제 등 법안 먼지만 쌓이다 폐기 
발의된 개정안 상당 수는 한은의 책임과 권한을 확대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한은 설립 목적에 '고용 안정'을 추가하는 법안이 대표적이다. 연준처럼 실물경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양적 완화 등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과감하게 펼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취지다. 연준은 고용 극대화와 물가 안정이라는 법적 책무를 가지고 있다.

이런 내용의 개정안은 5건으로 지난 2011년 한은 설립 목적에 '금융 안정'이 들어간 후 약 10년 만의 개정 논의였지만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원회 캐비닛에서 3년간 먼지만 덮어 썼다. 정책 목표 상충 가능성, 고용 안정을 달성할 통화정책 수단 미비 등의 지적에 한은조차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법 개정 동력을 잃었다.

이 밖에 한은이 정부로부터 국채를 직접 인수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내용의 개정안도 3건 발의됐다. 정부의 무분별한 지출로 국가채무 급증을 야기하고 시장금리 왜곡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한은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거나, 한은 임직원에 대한 임금 결정권을 기재부에서 금융통화위원회로 이관하는 내용 등의 개정안도 발의된 바 있다.
퇴직자 73%가 MZ 세대...격무·낮은 임금에 등져 
22대 국회 임기는 오는 6월부터다. 마침 이창용 한은 총재의 4년 임기도 이달 하순에 반환점을 돌게 된다. 이 총재 임기 후반기는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과 함께 잠재성장률의 추세적 하락을 막기 위한 구조적 개혁 방안 마련 등 중장기적인 과제를 풀어가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새 국회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은은 정부 부처와 달리 법안 발의권이 없어 숙원 사업이 있어도 의원 입법을 통해야 하는 한계를 갖는다.

우선 한은의 비은행 감독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 추진이 거론된다. 한은이 비은행에 대한 유동성 공급 수단을 확충해야 통화신용정책 수행 시 금융 안정 임무에 더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총재도 지난해 6월 창립 73주년 기념사에서 "비은행의 중요도와 시스템 복잡성이 증대됐기 때문에 은행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국민경제 전체의 금융 안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법 개정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한은 노조에선 지난 국회에서 매조지 하지 못한 임금 관련 법 개정을 재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건비 승인 권한을 기재부에서 금통위로 이관하는 게 핵심이다. 

2022년 기준 한은 직원의 1인당 평균 보수액은 1억331만원, 신입 직원 평균 보수액은 5176만원이다. 시중은행보다 낮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임금 인상률이 매년 0~2%대에 머문 탓이다. 한때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던 위상과 거리가 멀다. 

임금 정상화는 중앙은행인 한은의 경쟁력 유지를 위한 필요 조건이다. 한은 내 중도 퇴직자 중 20~30대 직원 비율은 2019년 60%에서 2022년 73.0%로 대폭 올랐다. 격무에 지치고 낮은 임금에 실망한 젊은 인재들이 한은을 등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유희준 한은 노조위원장은 "선진국 중 중앙은행 예산을 정부에서 통제하는 곳은 없다"며 "기재부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원하며 다음 국회에서도 입법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