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發 전기차 부진에 SK온·에코프로 등 K배터리 소부장 줄줄이 속도조절

2024-04-09 18:00

미국 완성차 업체인 포드와 직간접적인 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국내 소재·부품·장비 업계가 일제히 양산 일정을 늦추고 있다. 포드가 일부 전기차 모델 생산 계획을 재검토하고, 양산 시기를 늦추는 등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재고 부담이 가중된 영향이다. 이 여파로 SK온, 에코프로비엠, SKIET 등 국내 소재·부품·장비 업계의 올 1분기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졌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포드는 최근 일부 전기차 신모델 출시를 연기하기로 했다. 지난해 전기차 사업에서 47억 달러(약 6조3628억원)가량의 손실을 보면서다. 포드는 내년부터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크빌 공장에서 양산할 계획이었던 좌석 3열짜리 전기 스포츠실용차(SUV)의 생산 시기를 2027년으로 미루기로 했고, 테네시주에 건설 중인 신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이던 전기 픽업트럭의 출시도 내년 말에서 2026년으로 늦췄다.

이런 결정에 포드향 물량이 약속됐던 배터리셀, 양극재 등 국내 업체의 신공장 양산 계획은 줄줄이 미뤄지게 됐다. SK온과 포드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는 켄터키 2공장의 양산 시점을 늦췄는데, 당초 이 공장은 2026년부터 연간 45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셀을 생산할 예정이었다.

베터리의 주요 소재인 양극재도 타격을 입게 됐다. 에코프로비엠은 첫 북미 공장의 자금 집행을 늦추기로 했다. 이곳에서 만든 양극재는 블루오벌SK에 납품하기로 했지만, 켄터키 2공장이 양산을 늦추면서 속도 조절이 불가피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앞서 에코프로비엠은 지난해 8월 포드, SK온과 함께 캐나다 퀘벡에 4만5000톤(t)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포드의 전기차 전략 수정에 재고가 쌓인 국내 공급사는 올 1분기 악화한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실제로 SK온의 재고는 최고 생산능력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로 쌓이고 있다. SK온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최대 생산능력은 71.5GWh였는데, 같은 기간 SK온의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 물량은 34.4GWh에 그쳤다.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 규모를 역대 최소치(186억원)로 줄였던 SK온은 올 1분기 2000억원 안팎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적자 폭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에코프로비엠은 1분기 매출 1조1188억원, 영업이익 17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년 동기 2조원을 웃돌던 매출은 약 44%, 영업이익은 98% 줄어든 수준이다.

분리막 업체인 SKIET는 올 1분기 직전 분기에서 적자 전환한 3억원의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보인다. 삼성증권은 SKIET의 올 1분기 출하량이 전 분기 대비 24%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캡티브 고객사인 SK온의 생산 감소 영향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현재 SKIET의 캡티브 매출 비중은 90%에 육박해 SK온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SK온은 자구책을 마련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미국에 있는 조지아 2공장 라인 일부를 개조해 현대자동차용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연산 11.7GWh 규모를 갖춘 2공장 배터리 물량은 전량 포드에 공급하기로 돼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업계는 보통 장기 공급 계약을 맺어 라인 개조가 쉽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든다"면서 "배터리 유통기한은 최대 1년이기 때문에 SK온이 물량 전환 등 재고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블루오벌SK 켄터키 공장 조감도 [사진=블루오벌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