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달라진 주총, 기업-주주 윈윈해 'K-기업 르네상스' 열길
2024-03-27 18:26
"관계 개선의 첫 단추는 자기 반성입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 발전할 리 없잖아요? 주주들은 빚 독촉꾼이 아닙니다. CEO가 앞장서서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갖고, 저평가 원인을 분석한 뒤 개선책을 발표하는 건 분명 과거와 달라진 분위기죠. '밸류업'을 통해 기업과 주주 모두 윈윈한다면 부국강병(富國強兵)의 길이 열리는 거 아니겠어요?"
A기업 주총장에서 만난 70대 노신사는 "막말과 고성, 대답 회피하기 등으로 얼룩졌던 주총장 분위기가 달라졌다"면서 "요즘 같아선 주총장 올 맛이 난다"고 했다. 1997년 IMF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등으로 인생에서 세 차례 크게 넘어졌다는 그는 "앞으로는 새로운 세대인 MZ주주들이 더 활발한 주주참여 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며 웃었다.
이른 아침부터 쏟아진 장대비에도 A기업 주총에는 성별과 연령을 불문하고 약 200명의 주주들이 참석했다. 반도체 소재를 만드는 A기업은 최근 2년간 주가가 50% 이상 빠져 주주들의 원성이 자자했는데, 막상 주총을 끝낸 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한 30대 주주는 "나름대로 분석한 기업의 저평가 원인과 CEO의 시각을 비교해보고 싶었는데 오늘 해결했다"면서 "궁금증도 풀고 미래 방향도 들을 수 있어서 불안이 확신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주가는 기업의 피를 돌게 하는 혈류다.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 기업은 비싼 금융비용을 들이지 않고 투자를 지속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세상을 바꾸는 기술 탄생의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이런 기업과 원천 기술이 늘어날 때 국가 경쟁력의 선순환이 가능하다. 세계의 자본이 몰리는 미국 기업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국 기업에게 주가 부양은 필수적 과제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한국증시=저평가의 늪'이라는 공식을 깨기 위해 정부, 기업이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물론 아직 갈길이 멀다. 세제상 인센티브 강화 등 보완할 점이 많다. 기업들은 주주환원 증가액에 따라 법인세 완화, 대주주에 대한 증여 및 상속세 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고, 주주들은 체감 혜택을 위한 배당소득세 완화 등을 주장한다. 정부는 이 같은 의견을 수렴해 5월께 밸류업 최종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반기부터는 밸류업 준비 기업을 의무 공시하고, 밸류업 기업 지수를 개발해 다양한 금융상품을 출시한다. 이 자금들이 기업에 유입되면 한국 기업들은 한층 더 밸류업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