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성 없는 '밸류업' 성공하려면… 4대 연기금 역할 더 커진다

2024-03-05 06:00
주주환원·기업가치 제고 유도하는
국민연금 등 주주권 적극 행사 담긴
스튜어드십 가이드라인 개정 나서

[그래픽=아주경제]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방안 일환으로 올 상반기 4대 연기금의 수탁자 책임을 담은 '스튜어드십 코드' 관련 가이드라인 개정에 나선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권고하는 주주환원, 기업가치 제고 유도 방안 일환으로 국내 증시에서 4대 연기금의 역할이 더 커질 전망이다.

4일 정부는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으로 '연기금 등이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고려해 투자판단을 하도록 지침화'하기 위해 올 상반기 안에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을 개정할 방침이다. 이로써 기업에 대한 장기적 가치 제고와 경영 참여에 소극적인 기관투자자가 주주로서 기업가치 제고에 필요한 경영진과 대화에 나서거나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더 적극적으로 행사할 여지가 생길 전망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타인 자산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행해야 하는 행동지침이다. 이미 4대 연기금으로 묶이는 국민연금공단,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공무원연금공단, 우정사업본부가 이에 참여하고 있다. 기금 운용 규모는 2023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약 1036조원, 사학연금은 26조원, 공무원연금공단은 5조원, 우정사업본부(예금·보험)는 148조원이다.

이미 스튜어드십 코드 제3원칙으로 '기관투자자는 투자 대상 회사의 중장기적인 가치를 제고해 투자자산의 가치를 보존하고 높일 수 있도록 투자 대상 회사를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다만 기관투자자의 기존 투자 활동은 장기적 가치 제고보다 수익률 달성에 집중하는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 왔다. 정부는 기관투자자의 투자 판단에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활용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KB증권은 "국민연금 역시 국내 주식 투자 141조원 중 72조원을 외부 전문 기관투자자 위탁 운용 형태로 관리 중인데, 연기금과 같은 대형 자산소유자들이 해당 안을 채택하면 이들에게서 자산을 위탁받는 기관투자자들이 기업 밸류업 관련 사항을 적극 이행할 것"이라면서 "일본 기관투자자들이 기업과 기업가치 제고 관련 대화를 중심으로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 국내도 연기금 역할론이 부각 중"이라고 봤다.

일본판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4년부터 수차례 제·개정 되면서 2022년 본격화한 일본판 밸류업 프로그램의 기반 역할을 했다. 2014년 2월 제정 당시 기관투자자더러 기업 의사 결정에 적절한 의결권 행사를 요구했고, 2017년 5월 1차 개정을 통해 기관투자자 이해 상충 방지를 위해 운용기관 책임을 강조했다. 2020년 3월 2차 개정을 통해서는 의결권 행사와 수탁자 책임 활동 결과 공개에 대한 사항을 보완했다.

일본판 밸류업 프로그램에 특화해 개발된 지수인 'JPX 프라임 150'은 2023년 7월 공개됐고, 이 지수를 산출하기 위한 사전 단계였던 도쿄증권거래소의 시장구조 개편은 2022년 4월에 진행됐다. 일본 정부는 그에 앞서 2021년 6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강화 기조에 맞춰 중장기 기업가치 제고 관점에서 기업의 ESG 경영 책무를 강조한 '기업지배구조 코드' 개정을 단행했다.

일본이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한 흐름을 볼 때 국내에서도 ESG 경영 참여 일환으로 상장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이고 비재무적 지표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기관투자자들의 의사 결정과 주주권 행사가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주주 행동주의사모펀드와 소액주주 단체 중심으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거버넌스 개선 요구가 증가하는 추세다.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 요구에 부응하고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를 계기 삼아 주주권 존중과 주주환원 강화 기조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 기업에 숙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